71. 무례함에 대하여
―학식으로도, 연륜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무례
언젠가부터 무도(無道)한 사람들이 저지른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내가 보지 않는다고 없었던 일이 되거나 줄어들진 않겠지만 언젠가부터 뉴스 면을 보지 않게 됐다. 일을 그만둬서 좋은 일이라면 뉴스를 보지 않을 자유를 얻은 것일 테다. 그렇게 귀 막고 눈 가리며 생활해 왔으나 이미 내 일상에도 이전과 달리 무례한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 내 귀를 의심하는 일은 지난봄 시 수업 시간에 일어났다. 수업이 3회차쯤 됐을 때였다. 시를 생전 처음 써본다는 60대 중반 여성 수강생의 시를 다룰 때였다. 그녀는 그리스 여행에서 느낀 감정을 시로 풀어썼다고 했다. 시의 첫 연엔 그녀가 다녀온 그리스의 신전 6곳이 모두 나열돼 있었다. 뭘 하던 A신전, 뭘 뜻하는 B신전, 어떻게 생긴 C신전, ~D신전, … 이런 식이었다.
그녀처럼 나 또한 시 공부는 처음이었지만 신전 6곳을 모두 나열한 건 좀 지나쳐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교수님도 그 부분에 대해 아주 조심스럽게 조언을 하셨다. 아주 인상적인 신전 2곳 정도로 압축하면 더 좋겠다는 교수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어진 그녀의 말.
“6곳 모두 내 발로 다녀왔고요. 한 곳도 뺄 생각은 없어요.” 너무나 강렬한 거부 의사에 교수님의 얼굴은 당황함과 무안함으로 벌겋게 달아올랐고, 다른 수강생들도 호흡 일시 정지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대학에서 정년을 마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수업을 진행하던 교수님에 대한 그녀의 무례함은 교실을 적막으로 몰아넣었다.
그날의 상황은 교수님뿐만 아니라 내게도 충격이었다. 그녀는 첫 수업 때 다 늦게 시를 배우고 싶어 왔다며 잘 가르쳐주십사 했던 사람이었다. 교수님의 조언에 대한 그녀의 대응은 ‘나름 공들여 쓴 내 시에 어디 감히 빼라 마라야!’ 하는 수준이었다. 평생 대학에서 20대 학생들만 가르치다 정년을 마친 교수님에게 그날의 무례는 난생처음 겪는 어이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사건(?) 이후 교수님은 수강생들의 시 첨삭은 하지 않고 장점만 짚어주었고, 수업은 시 이론 강의와 기성 시인의 시 분석으로만 진행됐다. 나는 애가 탔다. 시 이론 강의만큼이나 내가 쓴 시 첨삭에서 배우는 게 더 많았기 때문이다. 초보들이 쓴 시에도 물론 장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겨우 10회 수업에서 칭찬만 듣는다면 무슨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1980년대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이뤄지던 수업에 비해 내가 자발적으로 찾아 듣는 강의에서 얻는 희열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 그런데 그녀는 참 눈 밝은 사람이었다. 다른 수강생의 시에 대해선 장점보다 단점을 더 잘 찾았다. 교수님이 첫 수업 때 수강생끼리는 비평 말고 좋은 점만 얘기하라고 당부했는데도 그랬다.
그렇게 봄날의 시 수업은 안타깝게 끝이 났고 몇 주를 기다려 여름 학기가 개강했다. 난 재등록을 했고 새로운 수강생들과 좋은 케미를 기대하며 첫 수업을 들으러 갔다. 그런데 또 다른 강적이 나타났다!
자기소개 시간 때 벌써 느낌이 왔다. 이번엔 60대 중반 남성이었다.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할 때부터 뒷덜미가 서늘했다. 뒤늦게 법학을 공부한다는 그는 다음 시간에도, 그다음 시간에도 전혀 법학도답지 않은 방식으로 샛길로 빠졌다. 시에 대한 느낌이 아니라 자기가 꽂혀 있는 어떤 것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아, 쉽지 않은 시의 길. 시를 배우는 길은 열아홉 그때처럼 순탄치 않아 보인다. 그가 어쩌다 결석한 날이면 수강생들 표정이 밝아질 정도였다.
그런데 빌런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영어권 유학파인 60대 여성은 각자 쓴 시를 발표하는 시간에 자기가 쓴 시가 아닌, 좋아하는 시를 가져왔다. 우리나라 시도 아닌 영시(英詩)였다. 외국시는 번역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 데다 길기까지 했다. 알토란 같은 수업 시간이 뭉툭 잘려나갔다. 말꼬리를 물고 놓지 않는 그녀에게 수강생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무렵 교수님이 영시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로 넘어가려는 순간, 그녀는 다시 말끝을 낚아채 영시로 돌아갔다. 마치 ‘결론은 영시, 누가 뭐래도 나는 영시가 좋아!’ 그런 막무가내 떼쓰기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
아침 요가 수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니 다른 달에 비해 낯선 얼굴들이 꽤 여럿 보였다. 신규 비율이 높아지면 첫 수업은 어수선해지기 쉽다. 노련한 요가강사는 엎드린 자세로 수업을 시작했다. 이마를 바닥에 대고 의식의 하강을 유도했다. 나는 짧은 시간에 꽤 깊이 아래로 침잠해 들어가던 중 갑자기 울린 요란한 휴대전화 알람음에 온몸이 들썩여질 만큼 놀랐다. 바로 옆 나이 든 여인의 가방에서 울린 소리였다. 교실 뒤쪽에 선반이 있는데도 보물이라도 들었는지 요가 매트 옆에 모셔둔 가방이었다. 1분도 안 돼 다시 울리는 알람음. 결국 강사가 진동으로 바꿔 달라고 하니 마지못해 가방을 뒤적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울리는 알람음. 다시 강사가 요청하자 ‘바꿨는데도 그렇네’라고 혼잣말을 하며 마지못해 가방을 뒤쪽에 가져다 놓았다.
칼 들고 설치는 사람이 이곳저곳 출몰하는 세상이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걸까. 정말 그렇게 여기며 살아야 하는 걸까. 갈수록 일상의 시스템은 좋아지는데 왜 사람들은 이토록 무례해지는 걸까. 적은 비용으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는 지금의 세상이 나는 참 좋다. 마스크에서 벗어나니 세상이 새삼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일상 곳곳에서 무례한 사람들을 마주치면 금세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그런 무례한 사람들의 출몰이 코로나 때문이면 좋겠다. 3년을 끌어온 그 몹쓸 역병이 사람들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까지 침투해 일시적으로 무례함을 전염시킨 거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코로나가 완전히 힘을 잃은 뒤엔 사람들의 마음도 건강해져서 염치를 알고 타인의 마음도 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돌아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