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시인의 수업을 등록했다. 시 쓰기가 아닌 ‘나를 위한 글쓰기’ 수업이었다. 등록한 후 개강을 열흘가량 앞둔 시점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장례가 끝나고 정신없는 와중에 수업을 포기하려 했는데 남편이 말렸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건 슬픔을 달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슬픔은 너무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실제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작 몸무게 2kg 줄어든 게 전부였다.
첫 수업의 긴장감은 축 처져 있던 세포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우는 느낌이었다. 매주 주제에 맞는 글을 분량에 맞게 써내느라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글쓰기 전 개요를 쓰고 그에 맞게 문장을 배열하고 단락을 적절히 나누는 일은 새로운 일이 아닌데도 낯설었다. 5월 그땐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만 하자고 주문처럼 되뇌었다.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면 글 한 편을 제출해야 했다. 그렇게 8주 수업이 끝나고 7편의 글이 내 손에 남았다. 매주 컴퓨터 앞에서 썼다 지웠다 반복하던 그 시간이 쌓여 글이 되었다. 손으로 쓴 글이 마음에 위로를 건네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엄마를 떠난 보낸 슬픔은 아직 오래되지 않았다. 49재가 지나고 3주 후 여동생 부부와 함께 엄마를 모신 사찰에 갔다. 천창과 길게 세로로 난 창에서 햇살이 비쳐 엄마가 머무는 곳은 밝고 아늑했다.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이곳이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기도 하면서 엄마가 머무는 방의 작고 단단한 유리문을 쓰다듬었다. 말이 없어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엄마와 딸 사이란 그런 거니까. 엄마와 우리 자매는 그런 모녀간이었다. 나는 그 슬픔을 오래 만지고 오래 느낄 것이다. 남들보다 서둘러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오래 되새기고 매만져서 언젠가는 우리 자매의 힘이 되도록 할 것이다.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