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이마를 짚어주는 사람
― 허은실 시인의 '이마'
이마
허은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 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시 전문>
이 시를 읽은 날은 마음이 갈대처럼 서걱대던 주말 오후였다. 읽다 만 책들, 프린트물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책상 앞이었다. 마우스가 말을 듣지 않아 노트북 파일을 잘못 열었는데 이 시가 눈보다 가슴으로 먼저 들어왔다. 다행히 남편은 집에 없었다. 게다가 소리 죽여 울지 않아도 되는 대낮이었다.
생전의 엄마는 병원 신세를 지기 전, 아니 젊은 날부터 잠자리에 들면 팔을 습관처럼 이마에 얹었다. 시 속에 중년의 엄마가 누워 있었다. 열이 나는 이마를, 때로는 미열조차 없는 이마를 엄마에게 맡길 줄만 알았지, 엄마의 이마를 짚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마 양 끝의 아득한 뒤편, 엄마 생의 고독을 들여다볼 용기는 더더구나 없었다.
몇 년 전 코로나에 걸려 늘어져 누운 내 이마를 짚어준 건 남편이었다. 그게 처음은 아니었을 텐데 엄마가 더는 내 이마를 짚어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그 후로도 독감과 코로나가 경쟁하듯 번갈아 찾아왔을 때도, 간단한 시술이 필요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내 이마를 짚어준 사람은 남편이었다. 삶은 유한하고 내 앞의 생이 살아온 날의 절반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내 이마를 짚어줄 사람 또한 남편뿐이다. 남편의 이마를 짚어줄 사람도 나뿐이다. 세상 하나뿐인 아들이 꼭 결혼했으면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외동이 대부분인 2000년대생들은 젊고 건강해서 이마를 짚어줄 사람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부모가 떠나고 나면 가족의 범주에 넣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세대지만 가족을 만드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시절이다.
얼마 전 가족사진을 들고 엄마가 안식하는 곳을 찾아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곳에선 편안한지, 이마 짚을 일 따위는 없는지. 꿈길에도 오지 않는 엄마가 때론 야속하다가도 엄마 생전에 무심했던 나를 떠올리면 가슴이 바늘에 찔린 것만 같다. 다행히도 난 팔을 이마에 얹지 않는다. 이마에 얹힌 팔에, 삶의 애환이 마치 참새처럼 줄지어 앉을 것만 같아서다. 다만 이마가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어젯밤 내 옆의 사람이 팔을 이마에 얹은 채 잠들진 않는지 곁눈질했다. 나한테 이불을 뺏기지 않으려 소중하게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자는 모습에 웃음이 새 나온다. 며칠 전 새벽녘 상황이 떠올랐다. 우리는 더운 여름밤, 서로 수면을 방해하지 않으려 아주 얇은 이불 2장을 각각 쓴다. 잠들 무렵 개켜진 이불 위에서 잠든 내가 새벽녘 한기에 남편이 덮은 이불을 끌어당겨 혼자 덮은 적이 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이불이 휙 당겨지자 잠이 깬 남편은 잠시 일어나 앉더니 내 밑에 깔린 이불을 조금씩 당겨 꺼냈다. 자기 이불 낚아채기가 더 쉬웠을 텐데 내가 덮은 이불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 게 고마웠다. 잠결에도 바로 사과를 했다. “여보, 미안!” 나머지 말은 속으로만 했다. ‘나중에 당신 이마는 내가 짚어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