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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Sep 12. 2024

웨일스 수도 카디프, St. 패건스  국립 역사박물관

2. St. 패건스 역사박물관 & 그들이 기억하는 방법

⇲ 세인트 패건스 국립 역사박물관은 실내 갤러리와 야외 박물관으로 나눠져 있다.

실내 갤러리는 고고학적 유물들과 웨일스 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생활용품, 농기구, 도자기, 가구, 전통의상 등을 전시하고, 정기적으로 특별 전시회통해 과거 조상들의 행적을 재조명해 관람객에게 화두를 던저주고 문제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실내 갤러리

↓ 특별 캠페인, 웨일스 여성들의 '평화를 위한 청원' 전시회

여성 평화호소 배경, 1920-30년대에 웨일스 국제연명(WLNU) 여성 위원회는 평화에  대한 세계적인 캠페인을 주도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수많은 생명이 죽고, 기아와 빈곤의 늪에 빠지는 전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캠페인으로 1923년 웨일스 여성들은 전례 없는 여성단체를 조직하고, 390,298명의 여성이 WLNU를 통해 청원서에 서명해 미국 여성들에게 가정에서 가정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를 촉구하는 호소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함과 동시에 미국이 새로운 국제연맹에 가입해 이끌어 줄 것을 촉구했다.

아래 커다란 참나무 상자에 미국 여성들에게 전달한 서명지를 넣어 워싱턴 스미스소니언연구소에 보관하던 중 2023년 4월 다시 웨일스로 돌아와 서명부와 함께 '평화를 위한 청원' 100주년 기념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WLNU설립 100주년을 맞는 현재도 이 캠페인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주목할 사건, '특별 전시관'

에버판 사건(Aberfan Disaster), 1966년 10월 21일, 영국 역사상 최악의 탄광 사고가 웨일스 남부의 작은 마을인 에버판에서 발생했다. 이 끔찍하고 비극적인 사고는 1916년 마을 인근 탄광 계곡에서 석탄 채굴 후 잔해를 쌓아놓던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에버판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총 7개의 탄광 퇴적물이( 반세기동안 210만 m 2) 산처럼 쌓이면서 시작되었다.

1966년 재해 발생 당일, 7번 퇴적물이 오전 7시쯤부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다 한순간, 터질듯한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면서 마을을 순식간에 덮쳤다. 퇴적물 바로 아래에 있는 농가와 별장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곧바로 마을로 내려와 주택 18채, Pantglas Junior School, 인근 카운티 중학교 일부를 파괴한 뒤 오전 9시 15분에 에버판 도로까지 진입한다.  이 검은 늪에서 살아있던 아이를 찾은 오전 11시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생존자는 없었다. 총 144명이 사망했고, 그중 116명은 7-10세 사이의 어린아이였으며, 학기 중간고사 마지막 날 교실에서 사망했다.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재난 발생 8일 후에 현장을 방문했는데, 너무 늦은 방문으로 영국인들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후에 여왕은 유감을 표하고, 수년에 걸쳐 에버판을 세 번 더 방문했다. 마지막으로 2012년 새로운 초등학교를 마을에 헌정했다.

마을과 웨일스 역사박물관의 한 구역에서는 여전히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영원히 잊지 않을게, 미안해, 사랑해, 보고 싶은 친구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 딸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추모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비슷한 참사를 수없이 겪은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지난 사건들을 대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일이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운 세월호로 잃은 귀한 우리 아이들과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불과 얼마 전의 일인데도,  걸 그만 우려먹으라고 떠벌렸던 그들의 목덜미를 끌고 와 이곳에 세워 잠시만이라도 묵도하게 하고, 이들의 기억하는 방법을 똑똑히 배워가라 말해주고 싶다.

1966년 10월 21일, 9시 15분 가까이에  멈춰버린 시간

유물 전시관, 고대부터 근현대사 역사책을 펼쳐놓은 듯한 전시관은 웨일스 인들의 삶과 생활상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다.


↓ 웨일스 전역에서 발굴된 고대, 중세 유물들

↓ 19세기 침대와 실내장식, 아이들의 장난감, 캐러벤

↓ 주방기구들

↓근대의상과 결혼 예복

↓ 각종 농기구들

↓ 장례식 의상과, 관을 실었던 마차

↓  웨일스 지역의 독특한 의상

     우리네 갓을 연상케 하는 검은 모자를 쓴 여인의 그림을 보고 놀랐다.

↓ 1940-1950년대 농업용 트랙터



⇲ 실내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아름답고 드넓은 공원에 웨일스 인들이 살며 사랑했던, 그들의 오래된 집과 건축물을 정원 곳곳에 세워뒀다. 12,000여 평 규모의  공원에는 빅토리아 시대의 학교, 중세교회, 노동자 연구소, 중세 왕자의 홀, 농장, 무두질 공장, 방앗간 등 웨일스 전역에서  철거 위기에 처했거나 기부한 건물들을 이전해 와 공원에 조화롭게 재건축해 하나의 테마파크처럼 조성해 둔 곳이다.


↓ VULCAN HOTEL

불칸 호텔은 1830년대에 카디프 애덤 스트리트에 '에일 하우스'로 등록되었고, The Vulcan Inn이라고 불렸다. 긴 역사 동안 카디프가 산업 강국으로 성장하고 국가의 수도가 되면서 큰 변화를 겪다 2012년 문을 닫는다. 철거될 위기에 처한 이 건축물은 캠페인을 통해 2012년 웨일스 박물관 연합회에 제공됐고, 그해 5월 St. Fagans의 건물 팀은 랜드마크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해체한 후 벽돌 하나하나를 모아 이곳으로 가져왔다. 완벽하게 재현된 불칸 호텔은 다시 문을 열어 손님을 받고 있다.

↓Nantwallter Cottage(낸트월터 코티지), 낸트월터는 카마던셔의 탈리아리스에 있는 농장 노동자의 별장으로 1770년경에 지어졌다. 건물 벽이 두꺼워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단다. 1990년 세인트 패건스에서 해체 후 재건했다.

↓Kennixton Farmhouse 및 건물, 스완지 가워반도에 위치해 있었고, 1610년에 이 집이 지어졌지만, 몇 번의 변화를 거쳐 1800년경의 모습으로 멈춰진 상태다. 1952년 당시 소유주였던 JB로저스가 박물관에 기부했다.

캐닉스턴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안료에는 소의 피와 라임과 석회가 포함되어 있고, 사람들은 붉은색이 악령을 몰아내주고, 집안사람들을 마녀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라 추측하고 있다.


↓ Maestir School, 1880년에 지어진 빅토리아 시대의 학교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영국 제국에 대해 배워야 했다. 웨일스어는 아이들의 모국어였지만, 수업은 영어로 진행했는데, '교육의 언어'라는 명목으로, 웨일스어를 말하는 것이 적발된 아이는 '웨일스 낫(Welsh Not)' 착용하게 했다. 아이들에게 웨일스어로 말하는 사람을 고발하도록 교육했단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웨일스 낫을 착용한 아이는 채찍질을 당했다.  학교는 1916년 문을 닫았고 1984년 세인트 패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 목침같이 생긴 웨일스의 Not은,  WN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나무조각 양쪽에 끈을 달아서 아이의 목에 걸게 했다.


↓ 성 테일로 교회

St. Teilo's Church는 원래 Pontarddulais 근처 Llandeilo에 있던 12-13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 교회다. 1850년까지 정기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후 여름철에 몇 차례의 예배에만 사용됐다. 세워졌던 당시 그 모습 그대로 재건 및 장식되었다.


↓Melin Bompren Corn Mill(물레 방앗간), 1853년에 지어진 2층짜리 물레방앗간은 웨일스에서 옥수수를 가루로 만들기 위해 지어진 수백 개의 물레방아의 전형이다.    

1970년 해체되어 세인트 패건스에 재건됐다.


↓ 조종석(닭싸움장), 17세기 원형 초가지붕 조종석은 원래 덴비의 호크 앤 버클 인 마당에 있었다. 1965년 해체되기 전까지 이 건물은 버려졌고, 1849년 닭싸움이 금지된 이후로 돼지 무게 측정 센터와 최근에는 차고를 포함한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19세기 후반에 내부 설비가 제거되어 격투의 무대와 원형극장 스타일의 계단식 좌석은 복원되었다.


↓ 돼지우리, 1800년경 폰티프리드, 미드 글래모건 근처의 헨드레르 프로서 농장에 지어졌던 것을, 1977년 박물관으로 이전했다.

↓ 양 방목장


↓애버노드위드의 농가, Powys Llangadfan에서 1678년에 지어졌으며, 300년 이상 (Rhys)가문의 집이었다. 1951년 해체되어 세인트 패건스로 이전했다.


↓Gwala Stores 매장은 원래 브리젠드 오그모어 계곡에 위치한 전형적인 웨일스 상점이었다. 1973년 슈퍼마켓이 인기를 끌면서 스토어는 마침내 문을 닫았고 1988년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오크데일 노동자 연구소, 연구소는 원래 케어필리 근처 광산 마을인 오크데일에 세워졌다.  광산지역 근로자와 그 가족들에게 여가 및 오락시설을 제공하기 위해 건축되었고, 이곳에서 합창, 밴드, 연극 등 모임과 정치집회, 콘서트, 강의, 댄스, 후에는 영화관과 당구장이 생겼다.  1989년 해체하여 세인트 패건스로 이전했다.


↓ 블레인-와운 우체국

블래인와운은 아마도 웨일스에서 가장 작은 마을의 우체국일 것이다. 이 건물은 원래 석공이었던 에반 아이작과 목수였던 그의 사촌 데이비드 윌리엄스가 휘틀랜드 근처에 1936년에 지었다. 건물은 길이가 5미터, 너비가 2.9미터다. 1992년 세인트 패건스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 톨하우스(통행료)는 원래 아베리스트위스의 펜피코에 1977년에 지어졌고, 1889년까지 운영되었다. 200년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통행료 비용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당시, 유료 도로 회사는 도로를 건설하고 유지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도로를 가장 많이 이용한 농부들은 가난했고, 토지 소유자에게 임대료를 내고 십일조도 냈다. 그들은 종종 도로를 이용하기 위해 하루에 두 번 통행료를 냈다. 결국 웨일스 서부에서 폭력과 폭동으로 이어진다.


↓ 공동 빵 오븐

Rhyd-y-car에 테라스 하우스를 지은 철광석 장인 Richard Crawshay 또는 세입자가 사용할 공동 오븐 3개를 지었다. 사암잔해로 지어졌고 입구는 석판 문이 있다. 좋은 베이킹을 보장하기 위해 점토나 소똥으로 밀봉했다. 1800년 건축되었고, 1987년 세인트 패건스에 재건했다.


↓ 세인트 패건스 박물관 내 빵가게, 하루종일 St. 패건스 성과 박물관(실내・야외)을 오가다 보니 배가 슬슬 고파왔다.  빵가게에서 풍기는 맛있는 웰시케이크 냄새를 맡으며 오늘 하루를 되짚어 본다. 가슴아리고 슬픈 공간과 찬란하고 아름다운 두 공간을 오가며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다짐을 했다.  세월호 사건 때 유난히 가슴 아파했던 모모는 저만치서 빵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서있다. 늘 밝고 긍정적인 모모가 오늘은 많이 슬퍼 보인다. 빵으로 그의 허기진 가슴을 다독여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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