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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n 27. 2024

로언-시대를 초월하고 온화하고 매력적인 마을의 섬

1. 어쩌다 마주친 '로언

⌘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주말 밤, 노트북 앞에 앉아 이것저것 뒤적이다  뜬금없이 '영국 웨일스 시골여행기'를 브런치북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앞뒤 없이 연재하겠노라 소개까지 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내 생각이 짧았구나  싶습니다. 발행을 눈앞에 두고 이걸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처음 연재를 시작하며 '프롤로그'정도는 작성해야지 하는 생각조차도 못했습니다. 해서 급하게 이렇게 짧게 시작글을 올립니다. 우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영국 '웨일스' 시골마을 여행을 시작으로 잉글랜드 또는 주변국의 소도시 여행기를 하나하나 올리렵니다.




첫 '브런치북'이라 미미하지만 저와 함께 휴식 같은 여행 떠나 보실까요?


영국 웨일스 카마던남쪽 해안에 자리 잡고 있는 로언(한)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다. 이곳은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시인 딜런 토마스가 미국으로 독서・시낭송 여행(여행 중 미국서 사망)을 떠나기 전까지(1949년-1953년) 살며 주옥같은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로언은 시대를 초월하고 온화하며 매혹적인 마을의 섬"이라 묘사했다. 고향이 아닌 이곳에 시인의 무덤과 그가 마지막까지 살았던 아담한 보트하우스가 있다.

영국인들은 이곳을 '딜런 토마스의 성지'라 부른다.

한적하고 고요한 이 작은 마을이 세상에 알려진 건 할리우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브랜드박사가 우주로 떠나는 팀원들을 향해 읊었던 한 편의 시 때문이다.

"딜런토마스가'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다시 일어나길 바라며 쓴 시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Rage, rage agaimst the dying of the light.

좋은 밤에 조용히 들어가지 마십시오.

노년은 낯이 끝날 때 불타고 열광해야 합니다.

분노하세요, 죽어가는 빛에 맞서 분노하세요.

..... 중략.....


↘︎ 주차장에서 바라본 로언성, 성벽 아래 '딜런 토마스'길을 따라  산책 중인 이들이 보인다.

;

'로언' 마을 첫 방문은 작년 겨울이었다. 사실 그날 일정에 로언 방문 계획은 없었다.

로언에서 10분 거리, 카마던 베이(Carmarthen bay) 남쪽 끝에 있는'펜다인'이란 바닷가 마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로언성'을 발견했다. 안개비에 젖어있는 성채에 매료되어 마치 그 성을 찾아 나선 사람처럼 차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날 그 순간 느꼈던 그 알 수 없는 강한 끌림은 아마 나만 느꼈던 게 아닌 듯싶다.

조각가 사이먼 해저가 만든 토마스 조각상

주차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주차장 건너편 작은 공원에 독특한 조각상이 있어  다가가보니 '딜런토마스'라는 소개와 조각가의 이력이 적혀 있다. 시인은 분명 스완지 태생인데? 왜 이곳에 조각상이 있지? 궁금증을 잠시 누르고 성벽 둘레 바닷가로 난 길로 향했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길목에  딜런을 추억하는 많은 텍스트를 보고 궁금증이 풀렸지만, 로언에 대한 호기심이 꼬물 거리며 생겨나기 시작했다.


↘︎ 딜런 토마스 길, 초입에 만난 안내문

우리는 서둘러 마을 어귀에  바다를 향해 우람하게 서 있는 로언성(성체는 수많은 전쟁으로 여기저기 난 포탄자국으로 상처 투성이다.) 앞으로 난 해안길을 향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둘러 걸어 나갔다.


⇲ 어쩜 이렇게 작은 개울 위에 이런 예쁜 다리를 얹을 생각을 했을까?

마을과 해안길 사이, 경계선처럼 작은 시냇물이 강바닥을 간지럽히며 흐르고 있다. 유년시절 집 앞 맑은 개울가 같다. 그곳에서 가제랑 민물고동을 잡던 소녀들이 까르르 거리며 물장구를 치며 개울 여가 저기 뛰어다닌다.  시냇물 위엔 우리 집으로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고 귀여운 아치형 다리가 놓여였다.  이 다리가 꼭 우릴 다른 세상으로 이어 줄 것만 같다.


↘︎ 이 다리를 건너면 '딜런 토마스의 길'<카마던셔만 해안길>이다.

⇱ 작년 겨울 모습                                                                            ⇱    2024년 6월

다리를 건너자 성벽아래 산책로를 사이에 두고 잔디밭이 드넓게 펼쳐져있고, 그 위로 군데군데 벤치가 놓여 있다. 누구든 앉아 멋진 대자연과 사랑에 빠져보라는 듯,  잔디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갈대밭 너머엔 벌이 끝없이 펼쳐진다. 겨울이라 갈대밭은 허허로워 보이지만, 물기 머금은 성채와 넓은 갯벌과 푸른 잔디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거대한 한 폭의 수채화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

자연은 예쁘게 다듬고 꾸미지 않아도 이렇게 아름답다. 난 이런 자연스러움이 너무나 좋다. 애써 다듬지 않고, 무심하게 방치해 둔 듯한 이 자연스러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남편은 꼭 한마디 한다.

"영국의 토목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몰라? 영국 모든 하천이나 강, 바닷가는  토목(기반) 공사가 된 거라고 봐야지..."

"하도 많이 들어 대충은 알아, 최대한 자연을 살리고, 공사 흔적이 드러나지 않게 했다는 게 좋다는 거지 난."

"......"

다리를 건너 성벽아래  시인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인의 집필창고와 집이 저만치 보인다.
로언마을을 관통해 나온 작은 시냇물줄기가 바라로 향하고 있다.

 '딜런 토마스의 길'이라 명명된 해안 길을 걷다 '카마던 베이'에서 풍겨온 친근한 냄새에 흠칫 놀랐다. 오랜만에 맞는 갯내음이다. 그동안 다녔던 영국의 바다에서는 갯내음이 나질 않았다. 어떤 이의 블로그에서도 영국 바다는 갯내음이 나지 않는다는 글을 읽기도 했었고, 내가 직접 느끼기도 했지만 이곳에선 고향 냄새처럼 진하진 않았지만 분명 갯내음이 난다.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묘했다. 한국에 살 땐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갯내음이 이곳에선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한참 동안 공기를 흡입하며 '갯내음 난다.'를 연발하는 내게 남편이 그만 돌아가잔다.

"저기 보트하우스에서 따뜻한 블랙티 한잔 마시다 비 그치고 가면 안 될까?"

"비가 굵어졌어..., 가자... 날 좋은 날 다시 오자..."

"그래? 다음에 꼭!"

잠깐 사이 안개비가 굵은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되돌아가던 중, 해안길 중간쯤 성벽을 통해 마을로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이 보여, 그곳으로 올라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면 안 될까? 하며 간곡히(?) 부탁하고는 다시 한번 킁킁거리며, 바닷물이 빠져 텅 빈 바다를 바라보니 바닷물인지 안개인지 모를 뿌연 것들이 저 멀리서 천천히 허물어진 성벽을 향해 진격해 들어오고 있다.


↘︎ 마을로 통하는 오솔길 끝에서 내려다본 '카마던 베이'


↘︎ 로언성 내부 : 내부는 봄부터 가을까지 개방한다.


많은 웨일스 성들은 영국이라는 한 나라가 만들어지기까지 격동의 시기를 보내며, 상처 가득한 로언성과 비슷한 모습으로  어느 마을 어귀, 언덕 위, 해안가에 저렇게 서있다. 어찌 보면 흉물스럽다 할 수 있겠지만, 성마다 독특한 외관으로 주변환경과 어우러져 나름 운치 있고, 현 상태만 유지하며 관리되고 있다.



로언성은 1116년 성으로 건설되었지만, 브리튼 섬에서 일어난 수많은 전쟁 중 소실되고 파괴되고 다시 재건되기를 반복하며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세월이 흘러 1584년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이 성을 <요새를 튜터 저택(튜터 왕족들의 저택)으로 renovation 했던> 존 페로 경에게 넘겨준다, 1644년 내전 중 성은 다시 한번 대포사격으로 파괴되었다. 왕실에서는 그 후 더 이상 성으로 사용할 수 없게 했고, 1730년경 로언성 옆에 캐슬하우스(Castle House) <아래 핑크색 건물>가 지어졌다. 


로언성을 포함한 웨일스의 모든 성들은 이렇게 낭만적인 폐허로 남겨져, 텅 빈 모습으로 지나가는 객을 홀려 끌어들이고, 다시 오라 유혹 하고 있다.



마을 골목길 양편으로 늘어선 오래된 건축물들과 길 노면은 지난 세월 아프고, 고단했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곳 해안엔 선사시대 인간의 거주 흔적이 남아있는 천연동굴이 있단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의 인간이 여전히 이 한 곳을 정착지 삼아 살아가고 있다는 이 작은 마을은(고고학자의 말), 사진처럼 부서지고 깨져 군데군데 벽돌이 빠져있다.  골목안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하다.


한때 문학소녀・소년이었을 듯한 이들, 딜런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시인의 집을 드문 드문 방문 한다지만, 그들과 무관하게 이 마을 사람들은 주자창 근처 펍에 나와 맥주 한잔 시켜놓고 해 질 녘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다 그것도 지루해지면 성벽아래  잔디밭 벤치로 나가 당신들 방식으로 바다를 보고, 푸르거나 흐린 하늘, 노을 진 하늘을 보며 한가롭고 고요하게 살아가겠지...,


↘︎ 마을을 관통하는 시냇물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모습이 우리 옛 시골 모습이다.


↘︎ 로언  타운홀(시청) 성 뒤쪽으로난 골목을 빠져나오면 바로 보이는 건물

    이탈리아풍으로 지었다는 타운홀은 1747년에 건축되어 현재까지 건제하다.

    다소 후줄근한 모습이지만, 로언성을 포함 마을의 렌트마크 중 하나란다.


↘︎ 캐슬 하우스 :  로언에서 유난히 반짝반짝 빛나는 핑크 건축물

영국의 작가 리처드 휴즈(Richard Hughes)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캐슬하우스를 임대해 살면서 시인 딜런토마스와 교류하며 지냈던 곳이다. 딜런을 이곳으로 이주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고, 그들은 타푸강 하구가 내려다 보이는 정자에 앉아 작업하며, 휴즈는 소설 In-Hazard(1938년)을 썼고, 딜런은 어느 개로서의 예술가의 초상(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Dog) 산문 모음집을 썼다.

이들 덕에 로언은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머물며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예술적 영감을 끌어 모아 올리는 곳으로 알려져 지금도 예술하는 이들이 한두 달 머물다 간다는 후문이다.

- 난 글 쓰는 건 소질이 없으니, 한 두 주 이곳 핑크 하우스에 머물며 새벽마다 딜런의 시창고까지 걸어가 바다에서 밀려들어오는 안개도 보고, 조류 서식지에서 새들을 관찰하다가 따뜻한 오후가 되면, 주차장 옆 펍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면서 해 질 녘  노을을 보며 지독한 고독을 느껴보고 싶다.


'로언'을 1화로 마무리하려 했지만 중언부언 말이 많았습니다.

너무 길어질 거 같아 다음화에 이어 소개할 예정입니다.

다음화는'로언' 마지막 부분과 펜다인 마을을 소개하고,

두 곳으로 가는 여정도소개할 예정입니다.

#유럽여행 #영국시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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