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신입사원 친구와의 수다
이름: PS
사기업 신입사원 (경영기획 직무)
고3 시절 목표: 방송 PD
Y대 체대 졸업(경영학과 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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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어때? 다닐만해?
PS
회사는 아직 분위기 정도만 느낄 수 있지. 내 일이랍시고 한 게 대단한 게 아니니까.
3주 정도 됐지?
PS
그렇지 보름 됐지. 분위기 좋은 것 같고, 분위기가 좋아진 것 같아.
크게 불만족스러운 건 없는 거야?
PS
불만이 생길 단계도 아니고
아직 뭐가 뭔지도 모를 단계니까.
PS
두 개 정도 업무를 했는데, 그런 일 계속할 것 같아.
엑셀 보고 자료복사하고 자료 만드는 그런 일.
직무는 뭐야?
PS
스태프, 경영 기획이라고, 다른 회사에서 경영 관리라고 하는 거.
그럼 기업을 준비할 때 그쪽 직무만 준비를 한 거야?
PS
거기하고... 나는 근데 경영학과를 밀수밖에 없었어.
체대로 밥을 먹고 살 수 없으니까.
회사 지원할 때. 직무도 그쪽만 지원을 한 거고?
PS
그렇지. 너도, 너는 잘 모르겠다. 너는 아무래도 신방(신문방송)이니까 전공하고 직무를 일치시킬 수가 있잖아.
예를 들어, 기업이라고 치면 홍보 직무를 쓴다거나.
PS
요즘 일반 회사들 요구 이력서를 보면, 다 위에 기계공학, 화학공학, 컴공 이런 이과 친구들 한 7~80% 뽑고 맨 밑에 스태프, 상경 우대해주는 거 약간 뽑으니까, 그거로 밖엔 지원을 못하는 거지.
선택지 자체가 제한적이니까.
PS
그래서 내가 지원한 곳이, 기획하는 경영 쪽하고 노무 인사, 결국 이 두 개를 지원한거지. 경영학과 공부하면서 제일 낫겠다 싶었던 거고.
그럼 직무도 취준하면서 준비를 하게 됐던 거네.
PS
나는 회사가 사람을 어떻게 뽑는지도 몰랐으니까. 이력서보면 이런 거 하는구나 하고... 조금씩 윤곽이 잡혀갔지.
서류 떨어진 데가 10군데가 넘을 걸? 이것저것 다 써봤고 지금 너무 많이 써서... 문제 비슷하면 복붙하고... 매번 어떻게 경험을 만드냐. 어차피 이 경험이 이 회사에도 맞는다 싶으면 갖다가 쓰는 거지.
어쨌든 네가 고등학교 때 준비했던 거는 신방(신문방송)이잖아?
그땐 그게 진지했어? 고등학교 때.
PS
나는 중학교 때부터도 음악 좋아했고, 방송부 활동 이런 건 안 했지만 그래도 방송 쪽에 관심이 많았지. 그래서 어떻게 보면 pd도 기획하는 거잖아? 그런 쪽에 항상 관심이 있었어.
처음에는 좀 아나운서나 캐스터보면서, 아무래도 노출이 된 직업이니까 ‘그런 거 괜찮다 멋있겠다’했는데 뒤로 갈수록 ‘내가 그런 인싸들의 직업이 어울리지 않는다. 서포터가 어울린다’, ‘나는 인싸보다는 옆에서 지원해주는 역할이 더 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을 해서 pd를 하고 싶었지.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그런 방송 쪽을 생각하고 있었어. 문제는 대학교에 오면서 이제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거지. 바늘구멍인데다가 엄청 어렵고, 경력직도 많고, 경쟁이 무엇보다 엄청 치열하고 네가 신방을 나와서 알겠지만...
근데 이 꿈을 접는 꿈이라고 할 것도 없지. 간절하게 바란 건 아니니까. 그런 거를 접는 데는 이제 너의 영향도 컸어. 신방의 현실을 알려줬잖아ㅋㅋㅋ
그럼 내가 뭐가 돼ㅋㅋㅋ
PS
아니 근데 너가 말해준 거하고 내 주변에서도 복전 준비를 했으니까. 우리 학교 언론 홍보학과 있으니까. 그쪽 준비하면서 알아봤던 거하고 그게 다 매치가 되는 거야. 정작 유명한 pd나 그런 방송 작가나 이런 사람들이 굳이 신방이나 언론학과를 안 나와. 오히려 경력이나 관련 업계 일을 해야 하는데, 내가 복전을 할 때는 이미 그런 것도 없고 너무 늦었던 것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경영학과가 잡과니까, 아무거나 다 하니까 그냥 경영 복전을 했지.
복전을 선택할 때까지는 그래도 그 목표가 어느 정도 있었던 거였네.
PS
복전을 선택하기 전까지는... 그치. 나도 언론 하고 싶었고 지금도 방송국 기회가 되면은... 실제로도 sbs 같은 방송국도 경영 쪽도 공고가 나서 거기도 지원했어. 서류 떨어지긴 했는데 다른 제조업보다는 오히려 그런 데 가고 싶었지. 지금은 너무 제조업으로 와버려서...
근데 네가 대학교 학과를 지원한 거는 체대 쪽을 진학을 했잖아
그때 당시에 체대를 지원한 이유는 뭐야?
PS
점수 맞춰서, 간판 따러 간 거지.
우리가 지원할 당시는 다 그랬던 것 같아. 간판 보고 과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약간 전체적인 그 연도 분위기 자체가...
PS
그것도 맞아. 재수할 때도 그랬고.
사교육 강사들도 많이 그랬지. 무조건 대학 간판 높혀서 쓰라고. 과는 낮추더라도 이런 식으로 얘기했으니까.
PS
우리가 주변 접하는 게 다 문과라서 그런 것도 있을걸.
이과였으면 조금 한 단계 낮춰도 과를 보고 갔지.
그럼 만약에 지금 다시 대학을 지원한다면 다시 같은 선택을 할 거야?
PS
연대 체대 간다? 갈 거야. 왜냐하면 내가 체대에서 얻은 경험도 되게 많고 체대가 아니었으면 못했을 경험들을 많이 했어. 사람들도 그렇고. 지금 하는 운동이 야구하고 스키밖에 없는데 그것도 다 대학교 가서 배운 거고 그런 거 하면서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게 있지.
되게 재밌었고 일상에 활력이 되는 그런 느낌을 얻었으니까 체대 간 거는 잘했다고 생각해. 다만 복전 준비를 좀 더 빨리 할 거야. 체대는 뭔가 좀 난 사람들이 있고 운동으로 성공하는 건 좀 어려운 것 같아. 물론 내가 운동에 그게 재능이 있는 편도 아니고.
대학하고 과를 비교했을 때. 지금 다시 지원해도 과가 우선이 되는 거네.
PS
문과나 예체능이라면 간판을 무조건 보지.
어쨌든. 그럼 네가 지금 시작한 일은 어쨌든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일들은 아니잖아?
PS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그나마 가장 적성이 맞는 서포터 부서고, 앞으로 좀 먼 중장기를 볼 수 있는? 그러니까 숫자에서부터 근거 같은 게 나오는 거니까.
그러니까 좀 막연하게 대학교 조별 과제 하듯이 ‘이런 제품을 출시해 보는 건 어떨까요?’ 하는거 처럼 기발하기만 하면 A+ 받고, 이런 거는 말이 안 되는 거야. 물론 기발한 게 필요한데 너무 현실성이 없는 것들이 많단 말이지.
숫자적인 근거들이 있어야 되니까.
PS
나중에 내가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내가 나중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숫자를 보는 능력이 필요하단 말이야.
성공 확률이라든지 기획에 그런 디테일이 생기는 거니까. 그래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은 고등학교 때 목표하곤 달라. 근데 나쁘진 않다? 오래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쁘지 않다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어.
일이 어쨌든 적성에도 맞는 거고 불만족스럽지도 않고.
지난 10년간 좀 진로가 왔다 갔다 하면서 바뀌긴 했지만...
PS
내 재능과는 연결을 못 짓더라도 맨날 어디 영업직이라서 맨날 모르는 사람들 만나고 그러면 스트레스일텐데 그런 것보다는 확실히 낫다.
꿈꾸던 pd가 아니여도 뭐... 약간 아쉬울 수 있지만
PS
방송에서도 pd가 기획을 하거나 작가가 세세한 대본 같은 거를 서포터를 해주는 거잖아.
지금 하는 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 방송이 아닌 것뿐이지.
직업군은 달라졌어도 맡은 역할 자체를 비슷하게 가는거네
PS
여러 가지 썼던 곳 중에서는 제일 만족스럽지.
그러면 10년 전에는 이런 일을 할 줄 몰랐던거네
PS
전혀 몰랐지
그럼 반대로 10년 후에도 이 쪽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아?
PS
하고 있지 않을까? 할 것 같아. 그러니까 10년 후에도 엑셀을? ㅋㅋㅋ
그런 건 아니지만. 이쪽 계통에서 계속 일을 한다든지.
PS
근데 이쪽에 있을 것 같아. 경영 관리든 경영 기획이든 숫자에서 뭔가를 이끌어내서, 한 발짝 중장기 미래를 보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지.
결국 10년 후라고 해봤자 마흔도 안 됐잖아. 그러면 아직 숫자만 보고 있을 수도 있어. 근데 그쪽 그 맥락에 있을 것 같아. 무엇보다 적성이 맞아. 그냥 나는 서포터 해야 해.
큰 장기적인 목표라든가 이런 건 아직 없고?
PS
사실 주변에서 이직 얘기를 되게 많이 하거든. 직장 내에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이직 얘기를 해. 나도 물론 여기 죽을 때까지 뼈를 묻어야지라고 생각은 안 해. 근데 나는 지금 일단 우리 팀에서 1인분을 해야 될 거 아니야. 회사에서 1인분을 하고, 나는 사실 그 생각이 먼저거든. 일단 내가 여기 적응을 잘 해야 눈을 돌리지. 요즘은 사회를 배우는 그런 시기인 것 같아.
이 질문을 한 이유가, 그냥 커리어 패스를 계속 쭉 계획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냥 나는 몇 년 일하고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겠다 이런 사람들도 있으니까 혹시나 그런 게 있나 해서 물어봤어.
PS
근데 지금 멀리 보기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그니까 좀 미래를 보기에는 약간 좀
PS
좀 이르다? 3개월만 지나도,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겠다, 나가서 어떻게 해야겠다, 3개월만 있어도 생길 텐데 지금 당장은 한 달도 안됐으니까.
그러면 성인 막 됐을 때나 20 초반 이럴 때하고 지금을 비교해봤을 때 어떤 것 같아?
더 희망적이게 된 것 같아? 현실이나 미래나 이런 거에 대해서
PS
그때에 비하면 지금이 전혀 희망적이진 않지. 그때는 20대 초반이잖아. 그때는 진짜 아무거나 다 생각할 수 있었던 그런 거?
걱정도 없고 군대 갔다 와서 좀 더 내가 현실이나 이런 거에 눈을 빨리 뜨고 좀 더 부지런하고 그랬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있지. 아무래도 뭐랄까, 교환 학생이라든지 외국 경험을 한다든지 아니면 내가 조금 더 정보에 밝았더라면 잡을 수 있었던 기회들? 그런 것들... 누가 이제 주변에서 뭐를 어디 갔다, 어디 프로그램에 참여를 했다 그런 것들 보면, 나중에 뒤늦게 보면 되게 괜찮은 기회였는데 막상 보면 공고 기간 지나있고... 이제 내가 A4 한 줄. A4 한 장이라도, 미리 지원서 같은 거 잘 써놨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기회들,.. 그런 것들을 다 하고서 열심히 살았으면...
20대 초반에 그런 걸 상상했거든. 공모전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그런 거 생각했는데 그냥 좀 너무 생각보다 수동적으로 산 거? 자소서에 쓸 말이 있을 정도로는 살았는데 그 이상은 살지 못했더라고...
그 정도가 어디야. 쓸 말 있는게
PS
내가 취준하면서 자소서 개많이 썼잖아. 내가 자소서 쓰면서 느낀 게, 자소서에 쓸 만한 내용들은 내가 진짜 그 기간 동안 미쳐가지고 뭔가 좀 살짝 헷가닥해서 몰입한 것들 있잖아. 그런 것들이 나중에 배우는 것도 많고 그런 경험을 써야 좀 진솔하고 와닿게 쓸 수 있더라고
정작 스펙을 쌓기 위해서 한 것들보다는,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어서 했던 것들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됐던거네
PS
그래서 경영학과 오면, 신입생 1학년 1, 2학년 듣는 수업 듣잖아. 들으면 항상 교수들이 그래. 경제 신문을 하루에 얼마씩 읽어라 하더라고. 그래서 나 영어도 못 하는데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그런 거 구독해가지고 기사 같은 거나 자료 보고 그랬거든. 남는 거 한 개도 없어. 그냥 나 오히려 체대에서 연고전 준비하고 야구대회 준비, 이런 거는 진짜 미쳐가지고 했거든. 진짜 그런 거 열심히 했는데 오히려 그런 게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더 도움이 됐지. 그 당시에 예산이 없어서 아 공 조금이라도 싸게 사야 되는데? 그런 고민에서부터 사장님이랑 연락해서 공값, 심판값 아끼고 그런 경험들이 오히려 갖다 쓰기 좋은 거야.
그러니까 공모전도 좀 순수한 마음으로 뭐 어디 홍보 회사 이런 데, 외국계 홍보 광고 마케팅 회사 가야지가 아니고 진짜 이거 어떻게 하면 좀 더 소비자한테 어필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해가지고 공모전에 나가서 입상을 하든 못하든... 그런 경험이 적은 게 아쉬운 거지. 그런 게 아예 없지는 않지만 좀 더 풍부했으면은, 내가 좀 더 선택지가 있고 너가 말했던 스무살, 19살에 내가 꿈꿨던 그런 20대 초반을 보내지 않았을까?
그래도 뭐 돌아봤을 때 후회한다거나 이런 건 없잖아.
PS
후회는 안 하지. 그냥 후회는 안 해.
그래도 그 상황에서 내가 공모전 같은 걸 안 하면서도 충분히 재미있게 살았고 생각 없이 살았으니까 재미있는 거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재미있는 사람 만나서 재미있게 놀았고...
후회는 안해. 후회는 안 하고 다만 그것까지 했으면, 그것까지 했으면, 조금 더 좀 눈에 튀어 있었으면 그런 아쉬움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