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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BM Nov 30. 2021

서른 전에는 최소한 내 앞가림은 하고 싶은데

02. RA인턴 친구와의 수다

이름: LD

컨설팅펌 RA (Research Assistant), 인턴

고3 시절 목표: 경영인

불어불문학 전공

==============


지금 하는 RA 일은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     


LD

지금 딱 절반 했지.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긴 한데. 전환이 안 되면 아예 다른 직군 알아볼 것 같아.

(*16주 근무 후 정규직 전환 평가)     


RA라는 건 언제부터 알아본 거야?     


LD

옛날부터 알아봤지. 일단 관련 학회를 하기도 했고. 그래서 한 번은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어. 원래는 컨설팅에 관심이 있었는데. 내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관심이 또 사라졌다가, 그래도 나한테 맞는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한 번은 해야겠다 싶은 생각은 있었지.     


시기적으로는 군대 갔다 와서?      


LD

컨설팅 자체에 관심이 생긴 거는 군대 끝날 때쯤에? 이거 뭔가 흥미가 가니까 학회를 해야겠다. 그래서 전역하자마자 그 까까머리 상태로 학회 지원하고, 한 1년 반 하다가 계속 입사 서류 집어넣었지.

     

고3 때는 RA라는 걸 알았어?     


LD

이런 거 있는 줄도 몰랐어.     


그때는 목표가 경영인이었잖아     


LD

그때 경영인이긴 했는데 진짜 아무 생각 없이, 경영학과를 어쨌든 쓰긴 써야 하니까. 경영학과를 지원하기 위해서 쓴 것 같아. 사실 경영인이라고 쓴 것도 기억이 안 났는데 학생부를 간만에 보니까 경영인으로 돼 있더라고.      


경영학과를 가고 싶었던 거는 어떤 직업적 목표가 있었던 거야? 아니면 그걸 공부하고 싶었던 거야?  

   

LD

꼭 그런 건 아닌데... 모르겠네. 어렸을 때는 진짜 막연하게 경영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었어. 그냥 별거 없이 문과에서 그나마 취업 잘 되는 데가 경영학과니까 썼던 것 같아. 딱히 다른 과에 비해서 경영학과에 흥미가 많진 않았지. 물론 불문학과보다 흥미가 많았겠지만.     


결국에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경영학과를 가고 싶었던 거였네.     


LD

고등학교 때 그렇게 생각 할 수밖에 없었지. 그때는 돈을 되게 빨리 벌고 싶었어.    

 

지금도 돈을 빨리 벌고 싶은 거 아니야?     


LD

이미 늦었어. 지금 당장 벌기 시작해도 빨리 버는 게 아니야ㅋㅋㅋ    

 

ㅋㅋㅋ어쨌든 이제 학과는 불문학과에 갔잖아.      


LD

불어불문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학교 네임밸류 때문에 쓴 거지.     


그럼 지금 만약에 다시 입시를 한다면. 똑같은 그때 기준으로 쓸 거 같아? 학교 네임밸류 보고 쓰거나 아니면     


LD

똑같이 할 것 같아. 과 어차피 뭐... 내가 느낀 바로는 결국에 그래도 학교 이름을 어느 정도 봐야지 않나. 어쨌든 과 같은 거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고. 그리고 메꿀 만한? 나처럼 학회를 한다거나 아니면 이중전공을 한다거나 해서 충분히 대체할 만한데. 학교를 그때 하향 지원을 하거나 학과 맞춰서 갔으면 아마 지금보다 못했을 것 같아.      


그러면 만약에 취업이나 이런 현실적인 제약이 없었으면 하고 싶었던 게 따로 있어?     


LD

하고 싶었던 거? 모르겠네. 뭔가 놀았을 것 같아.    

  

생각해보면 진짜 별 것도 아니었는데, 어린 나이였는데 부담 갖고 애매하게 놀았던 것 같아. 확 놀았으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뭔가 애매하게 놀고 확 나를 버려가면서 놀지 않았으니까.   

  

계속 불안감은 있으니까     


LD

불안감은 있고. 생각해 보면 입학할 때 스물두 살이었는데. 그때는 스물두 살이 너무 나이가 많아 보였어. 남들처럼 놀면 안 될 것 같고 그런 것 때문에... 결국 그렇게 조급해 해도 잘 풀리지도 않았고. 생각해 보면 그냥 노는 게 맞지 않았나.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그냥 차라리 확 놀고?    


LD

적어도 한 1. 2학년 때는?     


그러면 돌아가도 똑같이 지금처럼 RA를 준비를 했었을 것 같아?    

 

LD

그건 모르겠어. 지금 RA까지 이렇게 흘러온 과정이 결정이 된 지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 원래 컨설팅이라는 거 자체를 몰랐다가 컨설팅이라는 걸 알게 되고, 관련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게 진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아마 다른 걸 했을 수도 있지     


차근차근 계획적으로 왔다기보다는 그 순간   

  

LD

그 순간순간에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 그 순간순간에 이것저것 고려를 많이 해보긴 했지. 전문적 시험 같은 것도 알아본 적 있고 아니면 고시 같은 거를 볼까. 이런 생각도 한 적이 있는데 실패했을 때 그런 기회비용이 너무 커 보이기도 했고.     


그나마 평범하게 밥벌이를 서른 전에 하고 살 확률이 가장 높은 그런 길을 계속 찾았던 것 같아. 이제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서른이라는 그런 부담감? 생각? 사람들 다 별거 아니라 그러는데 나한테는 지금도 크게 느껴져. 서른이라는 숫자가 서른 전에는 무언가를 하고 싶고, 서른 전에는 최소한 내 앞가림은 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으니까. 지금 남은 기간 내에 뭔가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그런 길을 계속 찾았던 것 같아. 뭔가 취업에 제일 도움이 되는 쪽으로.     


찾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고. 그러니까 10년 전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한 거였네.     


LD

예상치 못했었지. 그때는, 진짜 고등학교 때는 마냥 잘 풀릴 줄 알았어.  

   

큰 시기를 나누자면 수능, 첫 수능을 실패하기 전과 후. 이 때 내가 달라진 것 같거든. 첫 수능 이전에는 내가 자신감도 있었고. 어떻게 해도 어떻게든 잘 흘러갔어. 뭔가 잘 풀렸어. 그래서 되게 건방지게 생각했던 것 같아.      


그래서 내 인생도 알아서 잘 굴러가겠지 생각을 했었는데, 이게 한 번 실패하고 두 번 실패하고 계속 누적이 되니까. 그때부터 확 달라진 거지. 엄청 현실적으로 변하고. 내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그때부터 많이 이루어진 것 같아. 이제 내가 주인공이 아니구나 이런 거를... 그때부터 느끼지 않았나. 진짜 그 전에는 대충 공부를 안 해도 어느 정도 그냥 대충 성적이 나오고, 사는데 이상 없고, 잘 굴러 갔으니까 모든 게.     


지금도 어찌어찌 굴러가고 있지 않아?     


LD

어찌어찌 굴러가는데, 그때만큼 유쾌하게 굴러가고 있진 않아. 진짜 꾸역꾸역 하는 거지.    


꾸역꾸역 버티면서 하루하루...

그런 건 있어? 앞으로 미래, 10년을 봤을 때 그려지는 모습이 있어?     


LD

진짜 모르겠어. 요즘에는 진짜 더더욱 모르겠어.     


그럼 어떻게 되고 싶단 있어?     


LD

목표는 항상 똑같아. 목표는 항상 좋은 사람 만나서 가정을 꾸리는 게 최상의 목표인데, 옛날에는 그게 되게 평범해 보이는 목표였는데 그 평범한 게 제일 쉽지가 않지. 점점 느끼고 있어. 그 평범한 가정을 이룬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를.     


항상 똑같았어. 진짜 어렸을 때도,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을 거고, 어느 정도 머리가 크고 나서부터는 되게 좋은 가정을 꾸리면서 살고 싶다라는 게 항상 목표였는데. 어렸을 때는 그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줄 알았거든. 근데 이게 생각해 보면 진짜 죽을똥 살똥 노력해도 쉽지가 않은 그런 목표인 것 같아.     


삶의 목표가 직업적 목표보다는 약간 그런 삶과 안정감     


LD

어떻게 보면 되게 궁극적인 목표인 것 같아. 그런 커리어적인 성공도 나한테는 부수적인 수단인거고. 결국에는 궁극적인 목표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면서 사는 거지.  

   

그게 쉽지가 않지.     


LD

쉽지가 않아. 하나하나 쉽지가 않아. 좋은 사람 만나기부터 해가지고 가정을 꾸리는 데 수반되는 그런 제반 상황들. 경제적인 거라든지. 다. 처음부터 끝까지. 집이 진짜 답도 없고. 진짜 원룸에서 살림 차릴 거 아니면.    

 

그러면은 지난 10년, 20대는 만족스러웠던 것 같아?     


LD

전혀     


좀 본인 스스로에 대해서? 아니면     


LD

그냥 전부 다? 과정과 결과 다 만족스럽진 않아.      


삼수를 했지만 시작은 나쁘진 않았잖아. 좋은 학교 들어갔고.     


LD

좋은 학교 들어갔는데. 좋은 학교 1년에 몇 천 명씩 들어가는 좋은 학교 들어가도... 들어갔는데 마냥 행복하진 않았어. 그러니까 후회가 너무 많이 남아. 그런 인간관계든 아니면 그런 객관적인 지표? 성취에 대한 지표도 그렇고. 만족스럽지 않아. 100점 만점에 20점.  

   

지금 시점에서 돌아간다면 하지 않았을 그런 행동들. 아니면 그때로 돌아간다면 했어야 되는 행동들. 이런 게 생각이 나지. 후회가 남아.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았어야 했는데. 그때마저도 될 대로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은?     


LD

지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막 닥치는 대로 살았던 것 같은데. 주어지는 대로. 근데 지금은 그래도 단기적으로는 (정규직)전환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있고. 그런 목표가 있으니까 오히려 편한 것 같아. 옛날에 고등학교 때 수능만 생각해야 돼서 편했던 것처럼.   

  

지향점이 생기니까     


LD

어느 정도. 지금 딱 목표가 한 가지 생기니까. 딱히 뭐 다른 걸 생각을 안 해도 돼가지고. 지금 인턴하기 전에는 원서 써야 되고, 어디를 써야 되며,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한 가지 지향점이 생겼으니까.     


이제 이정표라는 게 있는 거니까     


LD

목표가 생긴 게 되게 오랜만이니까   


다른 질문으로 넘어 와서 우리 세대는 어떤 세대인 것 같아

(*우리 세대 = 94년생 전후)     


LD

모르겠네.     


너무 막연한가.     


LD

막연하긴 한데 항상 주변에서 하는 것처럼 부모님만큼 살기 어려운 세대이긴 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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