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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BM Nov 29. 2021

낼모레면 서른

Prologue

처음 나만의 다큐멘터리를 찍어봐야겠다라고 마음먹은 시기는 5월쯤이었다. 우연찮은 기회로 작은 다큐 프로덕션에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후 정도였다. 굉장히 이른 시기 이긴 하지만 나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나 스스로의 힘만으로 다큐를 만들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더구나 당시 읽기 시작한 '돈키호테'는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에 추진력을 들이부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자신감이 아니라 오만함과 자만심이 아니었나 싶다.


일단 결심은 했지만 무엇을 소재로 만들어 나가야 할지 몰랐다. 그냥 단순히 내 주변인들을 찍어볼까 정도였다. 나는 언제나 그랬다. 항상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나 자신의 게으름으로부터 비롯한 편법이었다. 대학교 전공 수업 중, 직접 취재를 통해 기획기사를 써오라는 과제에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취재하기 귀찮았기 때문이다. 처음 유튜브에 올려본 영상도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나마 쉬운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도 출발은 친구들의 이야기였다.


우연히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다시 볼 일이 생겼다. 10년 전 나 자신을 담은 수많은 내용 중 눈길을 사로잡은 항목이 있었다. 장래희망을 작성한 칸이었다. '검사'라고 적혀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현실성 없었던 꿈이다. 애초에 검사라는 목표도, 드라마 보고 멋있어 보여서 정했던 꿈이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 친구들은 당시 어떤 꿈을 꿨을까. 누군가는 고등학교 시절의 목표를 향해 지금까지 달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순간 이거다 싶었다. 내 친구들의 꿈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이제 20대 후반이 된 우리들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시기였다. 누구는 안정적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고, 누구는 아직도 첫 발을 내딛지 못해 허덕이고 있었다. 누구는 어린 시절의 꿈을 향해 계속 달려가고 있었고, 누구는 현실에 타협해 꿈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 친구들을 알아간지 10년이 돼가지만, 정작 인생의 목표나 삶의 방식에 대해선 깊은 얘기를 나누지 못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취업하기 어렵다는 지금의 현실 속에 친구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성공하면 성공한 대로,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 각자의 고충, 또 그 속에서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만들고 싶은 다큐가 생기니 회사를 더 나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퇴사 의사를 밝히고 첫 직장을 네 달만에 때려치웠다.


자신만만하게 때려치웠지만 불안감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경력이 되지 못한 회사생활,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시작도 못한 다큐 촬영, 완성도 못 시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내 자신감이 자만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에 여전히 게으르기만 한 나 자신의 모습까지...


그래도 이번엔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여태까지 살면서 참 많은 장래희망을 가졌었다. 하지만 그중 무엇하나 제대로 도전해보고 끝을 봤던 꿈은 없었다. 항상 도망치기만 했었다. 이건 이래서 안돼, 저건 저래서 안돼라며...


여기서마저 도망치고 싶진 않았다. 어쨌든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는 프로젝트 아닌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추억거리 하나는 남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으로 다큐를 만들어갔다.


한 명, 두 명 인터뷰를 하러 다녔고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친구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가졌던 목표, 처한 상황, 미래에 대한 기대감 혹은 불안감,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어쩌면 우리 세대를 대변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모든 이야기를 영상 속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편집하는 과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인터뷰 내용들을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글로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소위 말하는 'MZ'세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MZ 세대의 한가운데 껴있는 94년생 우리들, 곧 있으면 스물아홉, 서른이 될 우리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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