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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 수 없는 밤

by 윤경환 Feb 05. 2025

잠이 오질 않았다.

간만에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간만에 찾아든 오한과 속울렁증이 낯설게 느껴졌다.

늦은 밤부터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 터라 급히 서랍에 있던 타이레놀 한 알을 삼키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속이 거북하게 느껴지고 머리가 지끈거려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거렸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경계를 헤매일쯤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후 정도가 되어서야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나는 겨울이면 꼭 한차례 잔병치레를 한다.

면역이 떨어진 탓도 있을 것이고 몸 소중한 줄 모르고 여러 이유로 몸을 혹독하게 다룬 댓가를 연말이 되어서야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역시나 반성할 줄 모르는 나는 이튿날 저녁 몸이 거의 회복되자 하루 업무의 노고를 핑계로 하이볼 한 잔과 안주거리를 두고 조그만 파티를 벌였다. 몸이 낫자마자 이렇게 술을 입에 대도 되는 건가 하는 일말의 생각도 잠시 하이볼 한 잔이 온 몸에 퍼져나가면서 경직된 몸을 마사지 하듯이 어루만져주자 잠깐 들었던 건강에 대한 경각심도 행복감에 금새 녹아들어 버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뉴스속보가 떴다.

대통령이 긴급하게 연 뉴스속보에는 계엄령이라는 단어가 언급이 됐다.

계엄령이라, 내가 아는 계엄령은 1980년 서울의 봄을 떠올리게 하는 계엄령과 유신시대에 선포된 계엄령 두 가지다. 그 두가지도 역사 다큐나 현대사 교과서에서나 마주했던 것들이다. 최근에는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서 생생하게 느끼긴 했다. 그런데 전설에서만 마주할 것 같은 그 계엄령을 2024년 12월의 한 밤중 듣게 되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인들에게서 끊임없이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게엄령 뜬 거 봤어? 실화지?"

"지금 이 시대에에 말이 돼? 어이가 없네."


나와 지인들 모두는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앞에서 어안이 벙벙하다는 말이 실감으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국회는 그 시간 깨어있던 국민들에게는 실시간으로 방송되었다. 나와 지인들은 손에 땀을 쥐어가면서 군인들과 군인들을 막는 사람들 간에 벌어진 몸싸움을 지켜보았다.


누군가는 국회 내부로 진입하려는 군인들과 국회로 들어가려는 국회의원을 막는 경찰들을 향해 비난을 쏟아 부었고 누군가는 군인들을 거세게 밀치고 때리는 일부 사람들의 행동을 저지하면서 이들도 다같은 국민이니 너무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했다.


국회는 혼돈 그 자체였지만 어떻게든 책임있게 질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군인들은 본회의장 내부로 진입하려는 목적으로 끊임없이 밀고 들어가려 했고 보좌관들과 시민들은 그들을 막아서며 팽팽하게 대치했다. 느닷없이 발령된 계엄령을 해제하기 위해선 빨리 안건이 국회의장에게로 올라가야만 했다.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며 계속 졸이던 마음은 계엄령 해제 의결이 되고 나서야 풀렸다.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고서야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전날 새벽 침대에 드러누워 끙끙 앓으며 꿈인지 현실인지 몽롱한 의식으로 버티던 것이 생각이 났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도 큰 틀에서는 꿈이고 환영일지도 모른다는 잡생각을 하며 한동안 라이브 방송을 계속 켜놓았다.


저기 있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계엄령이라는 상황을 주도한 사람은 없었다. 경찰들과 군인들은 체스플레이어에 따라 움직이는 체스판의 말처럼 명령을 따를 뿐이고 그들을 저지하려는 보좌관들과 광장에 모인 시민들도 헌법질서의 유린을 막고자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들은 정작 뒤에서 말한마디로 지시를 하고 어쩌면 우리의 청년이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들이 모여 힘겨운 투쟁을 벌인다는게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아졌던 두통과 몸살기운이 다시 몰려오는 것 같아 TV를 황급히 껐다. 다시 내 방은 고요와 침묵이 흘렀다. 아픈 건 괴롭지만 건강의 중요성을 생각케 한다. 기억속에만 남아 역사의 잔재로 묻어두었던 10월 유신과 10.26 사태가 다시 우리의 현실 속에 불쑥 끼어 들면서 또 한번 생채기를 내었지만 우리는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의 중요성을 다시금 새기게 되었다.


잔병치레를 하면 몸이 불편하고 괴롭다.

하지만 이미 잔병치레를 했다면 몸과 건강의 소중함을 되새겨야 한다. 헌정질서의 위기를 한낱 잔병치레와 비교할 수 있게는가만은 우리는 이번 기회를 통해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되었고 그래야만 한다.


시간이 한참 늦은 새벽이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아무래도 오늘은 제때 잠자리에 들기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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