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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

by 윤경환 Feb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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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익-"

마치 휘파람 소리를 내듯이 해녀는 바다 위로 올라와 숨을 몰아쉬며 소리를 내었다.

바다와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해녀는 고된 숨을 몰아쉬며 자신도 모르게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하나의 음악을 완성하고 있었다.


내가 지난여름 혼자 제주도를 찾았을 때 해녀와 지역 청년이 함께 운영하는 공연과 다이닝이 어우러진 프로그램을 찾았을 때 해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숨비소리를 처음 듣게 되었다. 숨비소리라는 단어를 얼핏 듣기는 했어도 이게 해녀들이 바다 위로 떠올라 숨을 내뱉는 것을 일컫는 말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숨비소리 하나에는 가족을 위해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 헌신의 마음이 알게 모르게 오랜 시간 바다와 함께 지내며 바다를 깊이 애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 숨비소리가 가벼운 휘파람 소리처럼만은 들리지 않았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15미터 정도를 잠수해야 하는 해녀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궂은 날씨와 거센 파도보다도 해산물 하나를 더 따겠다는 욕심이라는 것이었다. 하나를 더 따려는 욕심 때문에 숨을 쉬어야 하는 타미밍을 놓쳐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해녀가 하나의 숨을 내뱉기까지 마음에 솟아오르는 욕망을 절제하는 인고와 깊은 수심의 압력을 버티기 위해 불러일으키는 가족에 대한 헌신과 주변의 파도와 조화를 이루는 일련의 과정들은 수도사가 평생을 신에게 삶을 의탁하며 이루는 수도 과정처럼 느껴졌다.


나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한가.

깊은 바닷속 감춰진 보물을 손에 쥐기보다 마음을 탁 내려놓고 숨을 쉬기 위해 바다 위로 기꺼이 올라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질문들이 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왠지 마음이 무거워지려 하고 있을 때 상영 중인 영상에서 불을 피우고 잡아온 해산물을 구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해녀들의 모습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올까 말까한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마주하며 싱싱한 해산물을 구워 먹으며 바닷속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게 사람 마음이라더니 금세 여행자의 면모로 바뀐 내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나오자 소감을 적는 공간이 있어 짧게 소감을 남기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소감에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적기 보다 대충 환경 쓰레기와 플라스틱으로 인해 꼬리가 잘린 돌고래에 대한 인상을 적었던 것 같다.


남은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해녀들의 이야기와 영상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고 여행자로써 충실했다. 다시금 해녀들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제주 위를 활보할 때였다.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대자연을 최대한 눈에 담아 간직하려고 할 때 문뜩 숨비소리가 떠올랐다.


휘파람을 불 듯 휘이익- 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휘이익- 휘이익- "


숨비소리는 잠이 드는 순간까지 계속 내 주변을 멤돌며 그저 스쳐가는 하나의 바람 소리처럼 여기지 말아 달라는 듯 그렇게 내게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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