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술을 즐겨한다.
혼술이라는 단어를 상습적으로 내뱉을 만큼 즐겨하게 된 건 최근 2년인가, 3년 전부터 인 것 같다.
어쩌면 서른 살이 되고 혼자 독립을 했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혼술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그저 혼술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자각 못했을지도 모른다. 밤이 찾아들면 술을 연상시키는 카톡 하나, 전화 한 통으로 언제든 달려와 술잔을 부딪힐 상비군들이 있었다 그때는. 퇴근하고 나서나 주말의 시간이 지금보다 길었다 그때는.
툭 건드려 주기만 하면 언제든 술을 향해 달려들던 상비군들도 나이가 들면서 돌부처도 한 수 접고 갈 만큼 꿈쩍하지 않는 수준이 되었다. 이것저것 하기에 나름 넉넉하다고 생각했던 퇴근 이후의 시간은 밥 먹고 눈붙이기에도 짧아졌다.
그러다 보니 오롯이 나 홀로 독작(獨酌)을 하는 시간은 더욱 소중해졌다.
이제 나에게 혼술은 그저 퇴근길 편의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술을 집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퇴근 이후 펼쳐지는 메인이벤트에 가깝다. 어떤 술을 마실 지를 정하고 그에 어울리는 메뉴를 주문한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 가장 어울릴 소박한 애피타이저를 미리 준비해 둔다. 참고로 막걸리와 매운 닭발과 베리 믹스 아이스크림의 조합은 궁합도 안 본다.
그렇다고 폭음은 하지 않는다. 캔맥주 한 개, 막걸리 반 병, 와인 두 잔, 이렇게 먹을 양을 미리 정해두고 나름의 절제력을 발휘해서 저녁을 기분 좋게 만들게끔만 마신다. 이렇게 주변에 이야기했더니 가끔 하는 폭음보다 매일 조금씩 하는 소량의 음주가 더 건강에 나쁘다는 일침을 받았다. 가볍게 즐기는 취미가 건강을 해치거나 의존증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되기에 혼술의 횟수를 더 줄이기는 해야겠다.
혼술을 하는 이유를 더 면밀히 살펴보면 늙어가는 상비군들의 무거운 몸과 나날이 쇠락해 가는 나의 저질체력 때문에 바깥에서 하던 술자리를 혼자 갖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본질을 살펴보면 공허감이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로 계속 채워야 했던 내 내면에 차지하고 있던 텅 빈자리.
한때 그 자리를 레고장난감으로 채운 적이 있었다. 어릴 적 소심했던 내가 친구들과 쉽사리 어울리지 못했을 때 나는 레고장난감 속에서 말동무를 찾았고 마을과 성을 지으며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어떤 구속도 받지 않으며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내면의 상상을 펼치고 내가 구축해 놓은 말동무들에게서 존경과 위로를 받았었다. 그 모습을 보던 어머니는 내가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못할까 봐 친구들과 어울리고 온 날만 레고장난감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셨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레고장난감하고는 멀어졌고 이사를 몇 번 하면서 아얘 증발해 버렸다.
어쩌면 내가 지금도 혼술을 찾는 것은 그때 내 텅 빈자리를 강하게 차지하고 있던 레고장난감을 회상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 레고장난감은 글을 쓰는 행위가 되기도 하지만 퇴근하고 나서 글을 바로 쓰기에는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손쉽게 공허함을 매울 수 있는 혼술을 찾는 것이다.
나름 거창하게 혼술을 하는 이유를 포장해보려 했다. 어쨌거나 혼자 지내는 동안은 이 혼술이라는 취미를 줄이기는 해도 절멸할 수는 없을 듯싶다.
기사를 보면 혼술이라는 단어를 1인 사회가 보편화된 요즈음 2030 세대에서 두드러지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퇴근 후에 독작(獨酌)을 하는 것이 나만의 습관 만은 아니구나 싶다. 혼술이라는 취미를 절멸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라도 위안을 받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