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서울에서 다시 태극기를 올리기 까지
* 10부 말미에 수도탈환에 대해 잠깐 언급하였지만 워낙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보니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기적적인 성공은 전쟁의 모든 판도를 뒤바꿔 놓았습니다. 이제 UN군과 국군의 다음 목표는 단 하나, 북한군에 점령당한 지 90일이 된 수도 서울을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인천을 확보한 맥아더 장군은 정치적, 상징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하루빨리 서울을 탈환하라고 예하 부대를 독려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북한이 남침을 개시한 지 정확히 3개월이 되는 9월 25일까지 서울을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미 제1해병사단을 이끌던 올리버 P. 스미스(Oliver P. Smith) 소장 등 현장 지휘관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서울 외곽을 넓게 포위하여 북한군을 고립시킨 후 섬멸하는 신중한 작전을 선호했습니다. 이는 아군의 피해와 도시의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공법이라 할 수 있지요.
"서울은 단순한 지리적 목표가 아니다. 그곳은 150만 명의 시민이 갇혀 있는 거대한 도시이다. 성급한 정면 공격은 엄청난 민간인 희생과 도시 파괴를 불러올 것이다." - 올리버 P. 스미스 소장의 작전 보고서 中
그러나 맥아더의 조급함은 현장의 신중론을 압도했습니다. 결국 UN군은 서울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가장 빠르지만 가장 희생이 큰 방식을 택하게 됩니다.
맥아더의 예상과 달리 서울의 북한군 저항은 끈질기고 격렬했습니다. 인천에서 허를 찔린 북한은 약 2만여 명의 병력을 급히 서울에 집결시키고, 도시 전체를 거대한 요새로 만들었습니다. 거리마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건물마다 기관총 진지를 구축했으며, 곳곳에 지뢰를 매설하고 저항했습니다.
이때부터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시가전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울 수복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연희고지 전투: 서울로 들어서는 서쪽 관문인 연희고지와 104고지는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습니다. 미 해병대는 이 고지들을 점령하기 위해 수차례의 돌격과 백병전을 감행해야 했습니다. 고지는 수많은 장병의 피로 물들었고, 며칠간의 전투 끝에 간신히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거리의 바리케이드: 서울 시내로 진입한 해병대는 거리마다 설치된 바리케이드와 매복한 적군에 부딪혔습니다. 전차를 앞세워 바리케이드를 부수면, 건물 안에서 날아오는 대전차포와 기관총 세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전투는 한 집, 한 집을 소탕해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되었고, 진격 속도는 극도로 더뎠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군의 역할도 눈부셨습니다. 국군 해병 제1연대는 미 해병대와 함께 서부전선에서 싸웠고, 국군 제17연대는 한강을 도하하여 남쪽에서 서울로 진격하며 북한군의 측면을 압박했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던 9월 27일 새벽 6시 10분, 마침내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국군 해병 제1연대 6중대 1소대원들이 포화가 빗발치는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건물)에 침투하여, 90일 만에 다시 태극기를 게양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중앙청 건물에 다가갈수록 적의 저항은 거셌다. 총알이 빗발치는 속에서 우리는 기어코 옥상으로 올라갔다. 시커멓게 그을린 게양대에 다시 태극기를 올리는 순간, 아래에서 지켜보던 해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눈물이 쏟아졌다." - 당시 참전 국군 해병대원의 증언
다음 날인 9월 28일, UN군은 서울이 완전히 수복되었음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9월 29일, 중앙청에서는 맥아더 장군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수도 서울을 공식적으로 이양하는 환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수복의 기쁨도 잠시, 90일 만에 돌아온 서울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도시의 70% 이상이 파괴되어 완전한 폐허가 되었습니다. 인구는 150만에서 20만으로 급감했고, 시민들은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북한군 점령 기간 동안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증거들이었습니다. 북한군은 후퇴하기 직전, 수많은 군경 가족, 공무원, 지식인, 종교인들을 '반동분자'로 몰아 집단으로 학살했습니다.
서울 수복 후, 서울대 병원, 마포형무소 등지에서 수천 구의 학살된 민간인 시신이 발견되어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9.28 서울 수복은 인천상륙작전의 대미를 장식한 결정적인 군사적 승리였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패망의 위기에서 벗어나 국토의 대부분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영광은 도시의 완전한 파괴와 수많은 인명의 희생이라는 깊은 상처 위에 서 있었습니다. 폐허가 된 수도 서울의 모습은 전쟁의 참혹함을 뼈아프게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국군과 UN군은 38도선 앞에 섰습니다. 적 주력 부대는 궤멸되었고, 통일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습니다. 전쟁을 이대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38선을 넘어 북진하여 통일을 이룰 것인가.
이 운명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지도자들은 후자를 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전쟁을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