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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의 침묵, 내면을 향한 질문

by 김정락

골프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침묵이다. 이른 아침 티잉 그라운드 위에 서면 세상이 잠시 숨을 멈춘 듯한 고요함이 온몸을 감싼다. 희미하게 깔린 새벽 안개는 이 정적을 한층 깊고 짙게 만들어 준다. 그 순간 눈을 감으면 풀잎 위의 작은 이슬방울조차 내 숨소리를 기다리듯 조용히 흔들린다.


그렇다고 골프장의 모든 순간이 고요하기만 한 건 아니다. 때때로 티샷 직전 분위기를 띄우겠다는 농담이나 의도치 않은 조언이 집중을 흐트러뜨린다. 물론 가벼운 농담과 대화가 누군가에겐 라운드를 즐겁게 만드는 요소일 수 있겠지만, 조용히 나만의 리듬으로 샷을 점검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달갑지 않은 방해가 되곤 한다. 연습장에서 수없이 반복해 익힌 기술을 조용히 실전에서 시험하고자 할 때, 무심히 던진 주변의 말 한마디가 오히려 마음을 흔들어놓기 때문이다. 때로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조언이 아니라 스스로 침묵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인내심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골프의 가치는 이런 침묵에서 출발한다. 침묵이란 단지 소리가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침묵은 자신과 마주하고 스스로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페어웨이를 따라 걸을 때 발밑의 잔디가 바스락거리는 미세한 소리까지도 그 고요함 속에선 놀라울 만큼 선명하게 느껴진다. 홀을 향해 퍼팅 라인을 신중히 바라볼 때면, 내 안의 숨겨진 망설임이나 설렘조차 뚜렷하게 떠오른다.

침묵의 순간은 골퍼가 스스로를 가장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작은 호흡 하나, 미묘한 근육의 움직임까지도 고요한 골프장 안에서는 더없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평소 바쁜 일상과 도시의 소음 속에 묻혀 지나쳤던 내면의 감정과 목소리가 비로소 투명하고 또렷하게 피어오르는 순간이다. 조용한 이 시간 동안 나는 나 자신과 천천히 대화하며 삶의 방향을 다시금 점검한다.


라운드를 마친 뒤 조용히 앉아 하루 동안의 경험을 글로 옮기다 보면, 처음엔 시끄럽게만 느껴졌던 순간마저도 의미 있게 되살아난다. 거슬렸던 소음마저 나를 객관적으로 성찰하도록 돕는 값진 계기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골프장을 떠나 조용히 복기하며 글로 기록할 때 비로소 깨닫는다. 침묵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더 깊고 또렷이 마주할 수 있음을 말이다.


결국, 골프장의 침묵은 조용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앞으로 내 삶의 다음 샷은 어디를 향할 것인지, 고요한 골프장은 말없이 묻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질문이야말로 골프장의 고요함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소중한 메시지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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