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 작가의 '터널', 이사와 굉음 그리고 빛

by 김진수

지난 23일 <한겨레>에 김세희 작가가 쓴 <터널>이라는 손가락 소설이 실렸다. 단편보다 훨씬 분량이 적은 ‘초단편’소설이다. 지면 한 면이 채 안 된다. 아침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이 파도처럼 요동쳤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작가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인가 싶다가도 소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안도했다. 좋은 소설은 읽으면서 이미지를 상상하게 되고 문맥에 쓰인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아침에 이 소설을 읽고 짧은 감상평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 소설은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941880.html)에서 읽을 수 있다.




김세희 작가의 <터널>을 읽고 좋은 집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가족이란 무엇인지도 새삼스럽게 떠올려본다. 육아 중인 서른세 살 한 여성의 시선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여성의 생일날, 남편이 "내가 어제 놀라운 집을 찾았어"라고 말한다. 아이가 막 어린이집에 적응한 상태라 새로운 어린이집을 가는 일은 절대 안 된다는 여성. 하지만 조건을 보자 생각은 조금 달라진다.


방 세 개에 화장실이 무려 두 개. 한 동짜리 아파트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름이 아파트였고, 리모델링을 했다고 쓰여 있었다.
이 가격으로 얻을 수 없는 집
게다가 엘리베이터도 있어!


6층짜리 아파트. 이들 부부가 찾은 곳은 2층이었다. 단점이 한 가지 있었다. 1층이 주차장이었는데 주차장 입구에 있는 네모난 철문이 위로 열리고 닫힐 때 엄청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철문 위에 붙은 베란다가 주인공이 보는 집이었다. 하지만 좋은 집을 만났다는 기쁨에 계약을 하기로 한다.


그날 오후 우리는 행복했다. 살면서 만나는, 얼마 되지 않는 완벽하게 행복한 순간이었는데, 뜻밖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다시, 좋은 집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지 생각해본다. 방이 세 개 있고 화장실이 두 개 있는 집. 엘리베이터도 있는 집. 21세기에 좋은 집을 좋은 가격에 얻는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어떤 것도 제치고도 가장 1순위인 게 집. 혹은 아파트일 것이다. 큰 소리가 나는 치명적인 단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아파트를 나오면서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산뜻한 색으로 칠해진 건물 앞면이 석양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이 가족에게는 불안이 엄습한다. 가족이 분리되면 서다. 남편은 췌장의 낭종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고 주인공은 야근 때문에 새벽에 들어오게 된다. 결국 아이를 고향의 부모님에게 보내기로 한다. 고향길을 가면서 마주하는 길. 길은 어두웠지만 터널이 나오는 순간에 아이는 좋아했다. 터널 빛 때문이었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긴 어둠처럼 불안하다. 반면 아이의 환호성은 그저 호기심처럼 보이는 모습.


가족이 없는 이사는 더 이상 황홀한 것이 아니다. 힘든 노동의 현장이 된다. 소설의 분위기는 급격히 반전된다. 차갑고 깊숙하게. 홀로 이사를 마치고 털썩 앉은 여성. 이때 들리는 주차장 입구의 철문의 소리.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들었던 굉음은 이제 그냥 좋은 집을 구했다고 넘길 수 없는 소리가 된다.


그 소리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들렸다
나는 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이 소설의 끝이 불행했다면 나는 신문을 읽은 아침부터 기분이 축 처졌을 것이다. 이사 후 가족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인 시간. 아이가 큰 소리에 놀라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는 여성.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아이가 소리친다.


우와! 터널이야


이 부분에서 감탄했다. 이렇게 독자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다니. 소리가 끔찍하게 들렸던 굉음의 철문은 이제 어둠 속을 밝힌 터널의 빛이 된다. 굉음을 터널의 빛으로 따뜻하게 마무리짓는 이 짧은 소설의 마지막을 쉽게 잊진 못할 것 같다. 그리고 터널에서 쏟아지는 빛처럼 이 가족에게도 온통 봄의 따뜻한 기운이 쏟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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