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을 굿을 아시나요?
"아휴, 힘들어."
"한 끼도 못 드셨죠?"
이른 점심 상이 들어오자 물었다.
"사장님, 저 오늘 작두 타야 하는데 무서워요. 다치면 바로 119 불러줘요." 라며 선생님은 엷게 웃었다. 하지만 그 미소 속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젓가락을 든 손끝이 가늘게 흔들렸다.
진적굿 날이었다.
선생님은 3년 차 애동에서 이제 막 제자로서 발돋움했다고 해서 솟을 굿이라고 했다. 솟을 굿은 초심자가 드리는 첫 번째 굿으로, 정식 제자로 인정받는 의식이었다. 이 굿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신을 본격적으로 모실 수 있었다. 이후부터는 진적굿이라 불렀다. 무당은 도제식으로 가르침을 내린다. 신 부모 밑에서 모든 수발을 들어가며 몇 년을 배운다고 한다. 만신 김금화 선생도 몇 해를 그렇게 배웠다고 전해진다. 굿을 주관할 수 있어야 무당이라고 한다. 여느 전문 직업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많은 굿판을 돌아서 어깨너머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열두 신명에게 드리는 굿이니만큼 한 거리마다 두 시간 정도 걸렸다. 굿은 인간과 신들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무당이 자기를 위해 드리는 굿은 차리는 상이 크다.
모시는 선생님들도 많았다. 장구며 태평소며 제금 등 악사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선생님의 손님들, 즉 재가집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배움은 그야말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더위에도 강추위와 폭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신령님이 시키면 해야 하는 것이 제자의 삶이었다. 불평과 불만이 어찌 없을까. 그럼에도 제자는 기도하고 또 배우고 신령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런 제자가 드리는 감사 의식, 감사 예배, 즉 감사 잔치는 진적굿이었다.
황해도 이북굿은 굉장히 역동적이다.
무복이라 불리는 의대 역시 색감이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의대를 보고 있으면 눈을 뗄 수 없었다. 까랑하게 울리는 방울소리와 장단에 펄럭이는 무복 속 무녀는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내 시선과 다르게 선생님은 춤사위가 틀리지 않는지, 다음에는 어떤 동작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의대를 갈아입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이 오갔다고 했다. 그러다 신령님이 오시면 자기도 모르게 뛰고 공수를 나린 다고 하였다.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리는 것도 있고, 어떤 때는 이런 말, 저런 말을 전달하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잔칫날답게 이틀 동안 진행되었다. 신령님들이 오실 때마다 말씀하셨다. "잘 놀고 가요, 우리 제자 잘 부탁합니다." "내 새끼, 고생이 많구나. 할미가 지켜주고 잘 불리게 해 주마." 모시는 조상과 신령들이 모두 와서는 이런 말, 저런 말을 하고 갔다.
내가 무속 신앙에 매료된 것도 이러한 인간적인 문화, 곧 우리만의 정서 때문이었다. 한의 민족이라 불리는 우리는 이 한을 풀어줄 존재들이 무당이었다. 그런 문화에서 파생된 것들이 마당놀이가 아닌가 싶다. 마을 단위의 대동굿이나 바닷가에 있는 풍어제 등, 민의 속에는 언제나 굿이 존재했다. 가까운 이들을 만나면 괜한 소리를 하며 푸념하는 것을 우리는 넋두리라고 부른다. 그만큼 한은 우리의 특징이나 다름없었다. 황해도, 즉 이북은 전쟁 중에 험하게 돌아간 분들이 많다고 하였다. 역동적인 굿은 지역적인 특색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한양으로 내려오면서 한 편의 마당놀이처럼 희로애락을 담은 문화로 변형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황해도 이북 굿 전통이 보여주는 힘찬 연희는 팔도 어느 굿 보다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신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작두는 그 위엄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별상장군의 의대를 입은 무당은 예리한 날 위에 힘껏 달려가 오른다. 자신의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별상장군님이었다.
"내가 누구시냐? 별상 장군, 천신 장군, 하늘에서 내려온 장군님이 아니시더냐!"
손이 발이 되도록 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작두 위에 서 있는 가녀린 여자는 더 이상 선생님이 아니었다. 말 탄 장군처럼 작두 위에서 포효하고 있었다. 눈빛이 변했고, 목소리는 울림을 가졌다. 장구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군중은 숨을 죽였고, 불어오는 바람마저 일순 멈춘 듯했다. 공기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오늘 네 정성을 봐서라도 부정한 모든 것 싹 다 거둬 가주마!"
무당의 목소리가 공기를 찢듯 울려 퍼졌다.
일전에 선생님은 그랬다.
"아무리 무당이라지만, 신이 반, 내가 반인 상태인 거예요."
하지만 산에 기도하러 가는 날이면 기도하는 순간 추위를 잊는다고 말했다. 아주 캄캄한 새벽이라도 말이다. 이는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속은 오랫동안 우리 문화였다. 나라에서 주관하기도 했었고, 마을 단위에서도 관리했었다. 전라도의 당골레 문화는 각자의 동네를 맡아서 마을 업무를 봐주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그런 우리의 문화는 구한말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핍박을 받게 된다. 이제 모든 것이 변화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조선 왕조의 무병이 있었다. 정조의 어진을 그린 김홍도, 그가 알고 있던 비밀. 이성계로부터 이어져 온 무병의 계보.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자들이 억눌러야 했던 운명. 그 운명이, 지금 내 눈앞에서 춤추고 있었다.
굿이 끝난 후,
한동안 모두가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방금까지 공기를 찢을 듯 울리던 무당의 목소리도, 장구 소리도 사라지고 난 뒤의 적막함은 묘한 기운을 남겼다. 이 순간을 목격한 사람들은 각자의 감정에 잠겨 있었다. 선생님은 아직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땀에 젖은 이마를 닦으며 나를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 보셨죠? 저도 아직은 이게 신기해요. 내가 아니었던 것 같은 기분."
나는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반, 내가 반이라는 말이 이제야 실감이 갔다.
"선생님, 아까 그 순간, 정말 신령님이 오신 거죠?"
선생님은 물끄러미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신령님은 항상 와 계셨죠. 조선의 왕들도 이런 신령님을 모셨다니까요."
나는 순간적으로 귀가 솔깃해졌다.
"조선 왕들도요?"
선생님은 자리에서 몸을 반쯤 일으키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사도세자 말이에요. 그는 무병을 앓았어요. 아니, 신병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신내림을 받았는데, 그걸 감당하지 못한 거죠."
나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신내림을 받았다고요? 왕자가?"
"그렇죠. 조선의 왕들은 계속해서 이 신병을 겪었어요. 하지만 왕이 무당이 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무당을 통해 풀고 눌러야 했던 거예요. 그런데 사도세자는… 못 견뎠어요."
나는 선생님의 말에 깊이 빠져들었다. 조선 왕조에서 신병을 앓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그것이 무속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럼 정조는요? 그는 사도세자의 아들이었잖아요."
"정조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할머니 덕분이죠. 길 씨 할머니가 있었어요. 그분이 정조를 위해 엄청나게 빌고 굿을 했어요. 정조가 대왕이 된 것은 그저 정치적 수완 때문만이 아니었어요. 그 뒤에는 무속이 있었던 거예요."
나는 무심코 손에 쥐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길 씨… 길선주라는 사람도 있었잖아요? 기독교 목사였던…"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선주는 박수무당이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인물이었다.
"그렇죠. 무속과 기독교는 원래 상반된 것 같지만, 사실 닿아 있어요. 무당 길선주는 단순히 기독교를 받아들인 게 아니라, 어쩌면 우리 전통적인 신앙과 기독교를 접목하려 했던 걸지도 몰라요."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무속과 조선의 왕조, 그리고 기독교까지. 지금까지 무속은 그저 신비로운 세계라고만 여겼지만, 그 영향력은 생각보다 더 깊고 넓게 뻗어 있었다.
"그러면… 김홍도는요? 정조의 어진을 그렸던 김홍도는 뭔가 알고 있었을까요?"
선생님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김홍도요? 그 사람, 왕의 얼굴에 뭔가를 남겼을지도 몰라요. 정조의 초상화에서 왕의 눈빛을 보면, 이상하게도 그 안에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 같아요. 평범한 어진과는 다르게, 김홍도는 그 안에 어떤 암시를 남겼을지도 몰라요."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제 모든 것이 연결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도세자의 비극, 정조의 왕권, 무속과 기독교의 기묘한 연결고리. 그리고 김홍도의 어진까지.
선생님은 빙긋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사장님, 이제 진짜 깊이 들어가 버린 거 아니에요?"
나는 피식 웃었다.
"이미 빠져들었죠. 이제 더 알고 싶어 졌어요. 그 신의 흔적들에 대해서."
밖에서는 장구 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 아래, 굿당의 촛불이 여전히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오늘의 굿이 끝났지만, 나는 새로운 시작을 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