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고 싶니? 돈을 벌고 싶니?
요리사 2년 차 때의 일이다.
다니던 교회 청년부에서 MT를 갔다.
가평. 바람 좋고 공기 좋고, 다 좋았는데 점심은 더 좋았다. 닭갈비. 유명한 집이라길래 기대도 안 하고 먹었는데, 첫 입에 눈이 번쩍 뜨였다.
"닭갈비가 이렇게 맛있었나?" 젓가락을 멈춘 채 생각했다. "오빠, 이거 어떻게 만드는 거야? 우리 동네 김씨네 닭갈비랑 정말 다른데?!" 수진이 흥분해서 물었다. TV에서 보던 식당들을 떠올렸다. 비밀 재료. 묘하게 감칠맛을 더하는 그 무언가. 나도 그런 걸 배우고 싶어 요리책을 뒤적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주방에서는 시키는 것도 제대로 못 해 혼나기 바빴다. 그때는 누구나 다 그랬다. 배워도 모르겠고, 몰라서 또 혼나고, 부지런히 외워도 자꾸 잊고, 그래서 또 깨지고. 그래도 괜찮았다. 뭔가 대단한 걸 배우는 중이라고 믿었으니까.
닭갈비 맛을 두고 청년들이 설왕설래하고 있는데, 우리를 데려간 부장 집사님이 사장님을 불렀다. "사장님, 여기에 들어가는 레시피 좀 알 수 있어요?" 사장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웬 미친놈이 남의 집 영업 비밀을 대놓고 물어보나 하는 표정. 하지만 부장 집사님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분이라 그런지 달랐다.
"아니, 여기 우리 청년 애가 요리사예요.
닭갈비에서 나는 불맛이 너무 궁금하다네요.
아무리 해도 이런 맛이 안 난다고."
사장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요리사예요? 그럼 알려줘야지!"
이제야 숨겨진 비법이 밝혀지나 싶었다. 장작을 태운 숯을 곱게 갈아 넣는 걸까? 아니면 진짜 숯불에서 몇 시간을 구워야 하나? 온갖 상상을 하는데, 사장님이 단 한마디로 모든 기대를 무너뜨렸다.
"오뚜기 바몬드 카레 매운맛."
……네?
그랬다. 닭갈비의 불맛은 카레에서 나왔다. 흔해빠진 그 카레. 몇 백 원 더 비싼 바몬드 골드 카레 매운맛. 훗날 요리사 생활을 오래 하면서 닭과 카레가 왜 궁합이 좋은지, 불맛이 왜 나는지 알게 됐다. 아니, 이제는 레시피를 직접 만들기도 하니 어떻게 맛을 내는지도 다 안다. 이쯤 되면 어지간한 맛은 안대를 끼고도 알아낼 수준이다. 심지어 팔짱을 끼고 이렇게 외칠 수도 있겠다.
"사바용? 이거 싸바용 아녀요?"
후배들이 어느 날 전화를 했다.
"형, 나 '생활의 달인'에서 섭외 들어왔어. 나가도 될까?" 고민할 게 뭐 있냐, 나가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왔다. "형, 나 이거 못하겠어. 들어가지도 않는 재료를 넣으래. 없는 과정도 꾸며서 만들라 하고…" 결국 촬영을 마치고 몇 주 뒤 방송이 나왔다. 뻔히 아는 요리인데도, 불필요한 재료와 과정이 잔뜩 추가돼 있었다. 그날 이후 '생활의 달인'은 절대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단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 믿는다. 도전조차 못 하게 만드는 장벽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이 그런 게 아니라, 사회가 그런 것이다. 진입 장벽이 너무 낮기 때문에 거짓 정보를 흘려 자기들만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기득권이라 부른다. 닭갈비의 핵심 맛이 카레였다. 그 흔해빠진 카레. 그게 차별화의 비밀이었다. 직접 해보니, 오히려 그 집보다 더 맛있는 레시피가 나왔다. 어쩌면 1%의 비밀은 너무 쉽거나 간단해서 생긴 역정보가 아닐까.
살아보니 또 그랬다. 내가 가게를 운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에도 나오고 유명해지니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얼마나 대단한 기술이길래 손님들이 바글바글한지, 그 비밀을 배우고 싶어 했다.
"10억입니다."
기술 이전비 10억. 진심을 담아 말했더니 상대가 황당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되냐"며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깎아달라, 조정할 수 없냐는 소리만 들려왔다.
"사장님, 저는 돈 안 받고도 이 기술을 알려드릴 수 있어요."
상대가 반색하며 물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되나요?"
"단, 제가 묻는 질문에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여기 젓가락 보이시죠? 한 쌍에 얼마인지 아세요?" 당황하는 게 보였다.
"그럼 이 숟가락 하나는요? 냅킨 통은요? 의자, 테이블, 조명, 간판 하나하나 가격을 아시나요?" 아무도 몰랐다. 나는 차근차근 가게를 시작하는 타임라인을 읊어줬다. 그리고 몇 군데 방문해서 느낀 점 3가지, 장단점 3가지씩 적어오라고 했다. 방문 시간까지 정해서 보냈다. 5명이 와서 상담했는데, 결국 숙제를 해온 사람은 단 한 명. 나머지는 나를 미친놈이라고 욕했었다.
최근 우연히 본 자기계발 책에서 0.1%의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가 든 예시와 똑같은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그건 쌀로 밥 짓는 이야기다’ vs ‘진짜 비밀이다’
나는 생각했다.
닭갈비에 카레가 들어간다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처럼, 중요한 건 언제나 너무 쉬운 데 있었다. 그러나 쉬운 것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한다면 어떨까? 어렵지 않을까? 휴가도 없이 쉬는 날도 없이 그 쉬운 것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하는 1%, 그것보다 더 하는 0.1%들이 성공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일상을 무시한 채 우리는 진짜를 찾고 있는 게 아닐까? 어디엔가 있을 진품을 기다리면서.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진짜는 늘 지금에 있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도 주인공 산티아고 역시 결국에는 출발점에서 그 비밀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