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만 산다.
살아보지 못한 일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마치 이미 경험한 일처럼 생각하고, 하지도 않은 선택에 대해 후회하고,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대해 고민한다. 하지만 살아보지 않았기에 우리는 끝없이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해보지 않았기에 망설이고, 머릿속에서만 수없이 시뮬레이션한다. 결국 생각이 깊어지는 것과 많아지는 것은 다르다. 깊은 생각은 본질을 향하지만, 많은 생각은 같은 자리를 맴돌 뿐이다.
살아본 자의 고민은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것이고, 살아보지 못한 자의 고민은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다. 하지만 생각과 고민이 항상 시작 앞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끝난 후에야 떠오르는 것들이 많다. 고민은 언제나 마지막 순간 뒤편에서 고개를 내민다. 우리는 미리 고민하며 대비한다고 믿지만, 사실 고민은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도 우리를 붙잡는다.
살아보지 못한 내일이 오늘을 방해한다.
미래를 염려하는 마음이 지금의 선택을 망설이게 하고, 주저하게 만든다. 그러나 ‘오늘’이라는 시간은 오롯이 찰나로 존재한다. ‘오늘’이라고 부르는 순간이 ‘어제’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일상이 된다. 그렇게 매듭지어진 어제들이 쌓여 새로운 오늘이 온다. 그러므로 삶이란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위한 매일의 연습인지도 모른다.
라캉은 말했다.
실존하는 나는 ‘여기’가 아니라 ‘생각하는 곳’에 존재한다고. 내가 있는 곳이 아니라, 내가 욕망하는 곳에 나의 실존이 있다고. 그렇다면 나는 내일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인가? 오늘이 온전히 내 것이 되기까지, 나는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는데, 어째서 나의 존재는 욕망하는 그곳에 있다고 말하는가.
생각은 몸이 있는 곳에 있고, 욕망은 생각이 닿는 곳에 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진짜이고, 내가 욕망하는 곳은 이데아에 불과하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나 자신이 기표가 되고, 내가 좇는 이데아는 기의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도달하는 이데아는 언제나 변한다. 결국, 우리는 무엇을 좇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끝없는 이데아를 향해 걸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