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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도전기

언제 적 신춘문예?!

by 랑시에르 Feb 22. 2025

작년 11월, 신춘문예 공모 소식을 접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니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마치 한동안 신경 쓰지 않았던 흰머리가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에서 반짝거리는 것처럼.


어릴 적, 신춘문예 당선작이 발표되면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새해부터 떠들썩했다. 그런 문예지에 내 글을 싣는다고? 처음엔 어림없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따져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았다. 문창과 출신이 아니어도, 글쓰기를 좋아한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어떤 분야든 진입장벽은 존재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시간이라는 게 더 소중해진다. 망설이기보다 도전하는 게 더 쉬워지는 나이. 무엇이든 해보자는 게 아주 간단해지는 나이.


11월 중순에 공모 소식을 봤으니 시간이 촉박했다. 수필 두 편, 중편 한 편, 단편 한 편을 보냈다. 동아일보는 정해진 서식을 요구했다. 정성껏 출력한 A4 용지에 출전 제목과 이름을 적고, 큰 봉투에 담아 ‘신춘문예 응모작’이라 빨간 글씨로 표기했다. 우체국에서 마감일까지 도착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며 빠른 등기로 보냈다. 다른 메이저 언론사들도 비슷했다.


써둔 소설이 없었기에 한 달 동안 두 편을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아무리 쥐어짜도 글이 안 나오면, 그땐 손목을 쥐어짜서라도 나와야 했다. 커피를 마셔도 잠만 깨고, 밤새워도 마감은 다가왔다. 결국 완성했다. 뭐든 쓰면 써지니까.


기대하지 않았다. 언제 발표하는지 기다리기만 했다. 하지만, 혹시나. 당선되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이 달라질까? 은행 잔고가 달라질까? 최소한, 세탁기에 돌려버린 양말 한 짝처럼 허무하게 사라지진 않겠지. 아내가 내 소설 일부를 발췌해 현업 절친작가에게 보냈다. 그는 머지않아 귀국할 예정이라며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하자고 운을 띄웠다. 꽤 유명한 작가이자 방송 작가였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 그 사람!’ 하고 알아볼 정도. 그러니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책만 엄청 읽는 줄 알았더니 글도 쓸 줄 몰랐다고.


“신춘문예? 진짜 오랜만에 듣는다. 아직도 해?”


이걸 우편으로 보내다니, 요즘 누가 이렇게 해? 마치 필름 카메라로 셀카 찍는 느낌인데? 여전하구나. 시대가 바뀌었어도 공모 방식은 그대로네. 신춘문예도 언론사들의 갑질이야, 나름. 심사하는 작가들은 얼마나 힘들겠어. 종이에 출력된 걸 하나하나 확인한다고? 요즘 누가 종이로 봐. 스마트폰이나 랩탑으로 다 확인하지.


그러면서도 글이 좋으면 신춘문예든 웹소설이든 어디든 환영받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도전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도 했다. 덧붙여 내 글이 꽤 괜찮다며 용기를 줬다. 종교와 철학만 다룰 줄 알았더니 단편도 잘 쓴다며. 다만 합평이 가능한 곳에서 피드백을 받아보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세상에 내놓는 글, 즉 돈이 되는 글은 여러 사람들에게 확인받는 과정이 필수라고.


그날 이후, SNS에는 아무 글도 올리지 않았다. 대신 브런치에서만 쓰고 있다. 당선자와 당선작을 확인했다. 당선평도 자세히 읽었다. 쟁쟁한 작가들이 심사를 맡고 있었다. 놀라운 건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이들이 꽤 많다는 거였다. 그리고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걸 넘어, 필력과 공력이 탄탄한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선작들을 보면 구성과 스토리가 훌륭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당선 기준도 파악할 수 있었다.


나름의 위로가 됐던 것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남긴 말이었다.

“여러분, 쓰고 또 쓰고 언제나 쓰세요. 그 사람이 작가입니다.”

어떤 사람은 20년 이상 도전하기도 했다. 당선된 작가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제는 예전만큼의 권위를 가지진 못했지만, 신춘문예는 여전히 글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야 할 무대라고 생각했다. 내 글이 돈이 되는지 아는 것도 글 쓰는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이니까. 글밥 먹고살려면 팔리는 글을 써야 한다. 그게 내 기조다.


그래서 올해도 도전하려고 한다. 주요 신문사들 상금이 천 단위라서 의욕이 솟는다. 5편의 단편, 3편의 중편, 8편의 수필, 10편의 시를 준비 중이다. 2월이다. 시간은 총알처럼 날아가고, 나는 아직 잉크도 제대로 못 갈아 끼웠다. 11월 접수라니,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글을 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밥을 먹을 것이고, 밥을 먹다 보면 또 글이 쓰기 싫어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또 마감이 코앞일 것이다. 아, 완벽한 생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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