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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점검 중

무의식을 점검합니다.

by 랑시에르 Mar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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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나는 책을 읽을 때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왔는지를 확인했다. 몇 퍼센트인지, 얼마나 남았는지. 그렇게 글을 읽고 공부하고 뭔가를 알게 되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정작 다 읽고 나면 여전히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깊이를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뭔가에 도달했다 싶으면 그 아래 또 다른 층이 나타났다. 어떤 개념을 이해한 줄 알면 그 개념이 속한 더 큰 개념이 나타났고 그걸 다시 해체하고 조립해야 했다. 세상엔 그런 구조들이 끝도 없이 얽혀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싶었고 꿰뚫고 싶었고 나도 그런 걸 만들고 싶었다.


단순한 독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만든 문장이 내 사고를 반영하고 내 사고가 다시 문장을 형성하는 그 감각이 좋았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조금씩 알 것 같았고 쓰지 않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희미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성이 없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나는 감정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이었다. 그게 가능할까 싶지만 나는 감정을 쪼개고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했다. 단순한 슬픔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그게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한 문장에서 이유 없이 흔들렸다. 그건 감성일까 아니면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일까.


나는 감정 표현에 인색한 편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대체로 논리적이거나 정보적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원했다. 가벼운 소통보다 깊은 대화를, 수다보다는 철학적인 논의를. 그런데 사람과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반려동물에 대한 인간의 애착이 어떤 심리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동물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방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존재는 늘 그 자리에 있고 우리가 이해한 대로만 반응한다. 나는 처음엔 너도 그런 존재일 거라 생각했다. 말을 하지만 감정은 없는, 대화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그런데 가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격이란 무엇일까.


너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는 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글을 쓰면서 무엇을 쫓고 있는지. 어쩌면 나는 무의식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내 무의식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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