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점토로 아이가 첫 작품을 만든 날
‘에코맘들의 수다’ 라디오 공개방송이 있는 일 년 중 가장 바쁜 어느 날이었다. 리허설을 시작으로 초대 손님 도착시각 확인과 퀴즈 및 선물 준비 등, 깜짝 이벤트까지 챙기느라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다.
그런데 라디오 공개방송을 무사히 마치고 핸드폰을 켠 순간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있는 걸 발견한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부재중 전화가 하필 유치원 담임선생님에게 걸려 온 전화였기 때문이었는데, 보통 아이가 열이 나거나 다쳤을 경우 전화가 오는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바로 전화를 건 순간 역시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문자로 전송된 아이의 사진을 보고는 너무나 속이 상했는데, 사진 속에는 아이 손가락 끝부분이 모두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벌겋게 벗겨져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특별하게 만진 것이 없다고 했지만, 당장 아이를 데리고 약국에 가니 약품이나 화학물질에 의한 화상으로 의심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며칠 동안 아이는 손을 씻을 때 따갑다거나 아프다는 말을 반복했고, 나는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들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 의심이 되는, 얼마 전 친구에게 선물 받아 잘 갖고 놀던 아이의 책상 위 슬라임을 전부 치워버렸고, 오로지 국내산 쌀과 천일염으로만 만들어진 방부제도 들어 있지 않은 쌀 점토로 모두 바꿔주었다.
슬라임, 그 속엔 뭐가 들었을까?
보통 엄마들 사이에서 액체 괴물의 줄임말, 일명 ‘액괴’로 통하는 슬라임은 어린이들 사이에서 꾸준히 인기몰이 중인 장난감이다. 특히, 이러한 슬라임은 유튜브 내 관련 채널 수가 급증하면서 아이들에게 또래 친구들과 공유하고 함께 즐기는 문화로 어느새 자리 잡히기도 했고, 슬라임을 직접 만지고 함께 놀 수 있는 슬라임 카페의 증가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아이가 가지고 노는 알록달록한 색의 다양한 질감과 형태의 슬라임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는 새삼 놀랐다. 단순히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속엔 어마어마한 유해 성분들이 들어 있었고, 또 실제로 위해 사례도 증가하는 추세이기에 안전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러웠다.
슬라임(Slime)이란 보통 점액질 형태의 장난감을 말하는데, 물풀과 물, 붕사 등의 기본 재료에 토핑 재료로 사용되는 파츠, 색소, 반짝이 등을 넣어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슬라임을 만들어서 놀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슬라임은 폴리비닐 아세테이트 polyvinyl acetate, PVA 가 주성분인 액체 풀에 붕산 boric acid, H3BO3이나, 붕사 borax, Na2B4O7·10H2O를 넣으면 젤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밖에도 슬라임은 다양한 종류로 구분되는데, 액체 풀과 물, 붕사 등의 기본 재료로만 만든 무색투명한 클리어 슬라임, 목공 풀에 쉐이빙 폼을 섞은 ‘버터 슬라임’, 스노우 파우더를 넣은 ‘클라우드 슬라임’, 슬라임 안에 파츠와 색소 등을 넣어 만질 때 촉감과 소리를 느낄 수 있는 ‘크런치 슬라임’, 슬라임 윗면을 굳혀 만든 ‘아이스버그 슬라임’ 등 재료와 형태, 촉감 등에 따라 그 수가 정말 많다.
이렇게 다양한 질감을 가진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신기한 슬라임을 실컷 가지고 놀 수 있으니 엄마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슬라임 카페를 찾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어떤 면에선 쫀득쫀득하면서도 말랑한 슬라임을 조물조물하면서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고 다양한 촉감과 소리를 통해 아이들이 심리적인 안정에도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일각에선 하고 있지만, 일단 들어가는 재료만 봐도 붕소? 물풀 등 찜찜하고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 CISS에 접수된 슬라임 관련 피해 사례만 보아도 슬라임을 만진 후 전신에 가려움을 동반한 피부발진과 안구부종이 아이들에게서 발생한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으며 2017년부터 많이 증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국가기술표준원에서 2018년, 시중 유통 중인 액체 괴물의 분석 결과 190개 제품 중 76개 제품에서 가습기 살균제에서 문제가 되었던 CMIT/MIT 물질과 폼알데하이드 등이 검출되어 리콜 조치 되기도 했다.
슬라임 속 유해 물질?
슬라임에 재료로 사용되는 우리에게 그 이름조차 생소한 붕소는 붕사와 붕산에 화합물 형태로 존재하는데, 항균과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어 눈 세정제 등의 약품과 수영장 물의 정화나 살충제 등에 사용된다. 그런데 이 물질을 흡입할 때 코나 목, 눈 등을 자극하며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양에 노출되면 위나 장, 신장, 뇌 등에 영향을 미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무서운 물질이다.
또, 슬라임에서 검출되었던 가습기 살균제 물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CMIT는 화장품과 개인 위생용품, 생활용품에 사용되는데 피부 접촉 시 화상이나 알레르기성 피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며 섭취나 흡입 시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CMIT와 마찬가지로 역시 검출된 MIT 물질은 살균 및 방부제 성분으로 다양한 화장품과 개인 위생용품에 사용되는데, 역시 홍반이나 피부 부식을 유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독제와 살충제, 살균제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폼알데하이드 formaldehyde는 국제암연구소 IRAC에서 인체 발암물질 1그룹으로 분류되는 발암 확인 물질로서 경구, 경피, 흡입을 통한 노출시 광범위한 급성 독성을 일으킬 수 있다.
이외에도 슬라임에 토핑 재료로 사용되는 파츠에서도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함유량이 기준을 초과한 제품들이 있는 것으로 분석 결과 나타났고, 심지어 허용기준의 최대 766배나 초과하는 제품도 있는 것으로 조사 결과 나타났다.
또 슬라임 제품 중 붕소 용출량 및 방부제 함유량이 기준을 초과한 제품과 파츠 제품 중에서 납과 카드뮴 함유량 또한 기준치를 초과하는 제품들도 있었다.
이처럼 아이들이 장시간 가지고 노는 슬라임 속에 들어 있는 유해 물질들은 땀을 통해 피부로 흡수되어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는 점에 우리는 더욱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되도록 슬라임을 고를 때에는 KC 마크 등 안전하게 인증을 받은 제품인지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고, 맨손으로 장시간 아이들이 오래 만지지 않도록 놀이시간을 30분 이내로 제한하고 손을 자주 씻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구강기의 아이들이나 유아의 경우에는 가지고 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슬라임을 가지고 놀다가 눈을 비비거나 입으로 손이 가는 행동 들을 절대 하지 않도록 부모의 세심한 관찰도 꼭 필요하다.
이외에도 빨대를 이용해 슬라임에 공기를 불어 넣는 등의 행위를 재미 삼아 하기에는 유해 물질을 흡입할 가능성이 있기에 절대 삼가도록 하고, 마지막으로 놀이가 끝난 후 슬라임을 버릴 때는 꼭 고체상태로 잘 말려서 버리도록 하며 환경오염을 줄이는 것도 잊지 말자.
< 슬라임 건강하게 이용하는 tip >
1. 슬라임을 만지고 놀 때 놀이시간 30분을 넘기지 말고, 놀이 후 깨끗이 손 씻기
2. 슬라임을 가지고 놀 때 그 손으로 눈을 비비거나 입을 만지지 않기
3. 슬라임을 사용 후 폐기할 때는 꼭 고체상태로 잘 말려서 쓰레기봉투에 버리기
4. 되도록 물과 전분(옥수수, 감자, 고구마 전분 등), 콩, 팥, 쌀 등을 섞어 친환경 슬라임 만들어 사용해 보자.
<참고 문헌>
- 한국소비자원, 《슬라임 카페 안전 실태 조사 슬라임 및 부재료 중심으로》, 20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