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06
CA26. 이정재, 〈헌트〉(2022)
허구의 스토리를 만들 때 실화나 역사가 소재일 경우, 과정에는 재량껏 손을 댈 수 있어도 결말을 바꿀 수는 없다는 점이 늘 한계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이런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감독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릴 것이냐, 아니면, 설득력 ‘없게’ 그릴 것이냐―. 왜냐하면 설득력 있게 그린다면 그 결말을 인정한다는 뜻이 되고, 설득력 없게 그린다면 그 결말을 부정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감독의 ‘어떤’ 스탠스가 결정된다. 배우 이정재는 감독 이정재가 되어서 이 점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했을까?
CA27. 최국희, 〈인생은 아름다워〉(2022)
인생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인생은 인생일 뿐, 인생 이상도 인생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인생이 아름답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그 부부의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그들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그들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인생이 어떠한가를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그들의 노력이 갸륵한 것은 이 때문이다.
CA28. 주세페 토르나토레,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2023)
귀가 너무나 행복한 영화. 아니, 귀를 너무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영화. 단,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을 좋아한다면. 한데, 싫어할 턱이 없지 않나? 여기서 애정 고백을 더 이어간다면, 나머지는 모조리 군더더기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넘친다.
CA29. 이일형, 〈리멤버〉(2022)
제목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리멤버(Remember)’는 ‘기억하다’라는 동사다. ‘리멤브런스(Remembrance)’, 곧 ‘기억’이라는 명사가 아니다. 따라서 ‘리멤버’가 단독으로 쓰이면 명령형이 되어 ‘기억하라’라고 해석해야 맞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제목으로 관객한테 “기억하라!”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Don’t forget!”, 곧 “잊지 말라!”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성민이 반민족 친일파 인사들을 차례로 처단하는 것은 “기억하라!”라는 명령형 외침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관객으로서 이 메시지를 놓쳤다면 그는 이 영화에서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이다.
CA30. 스티븐 스필버그, 〈파벨만스〉(2023)
애정과 열정도, 아니 애정과 열정이야말로 진정한 재능이라는 것을 존 포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앳된 청년 스필버그에게 긴말 없이 그저 ‘지평선’만을 이야기해 준 것은 자신의 성격 탓이 아니라, 바로 그 애정과 열정을 스필버그에게서 퍼뜩 엿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존 포드 자신이 그런 애정과 열정이라는 재능으로 거기까지 온 감독이었으니까. 따라서 구차하게 덧붙일 것 없이, 하나의 트리거(trigger:방아쇠)로서 ‘지평선’만 알려주면 스필버그는 자신의 애정과 열정이라는 재능의 도움을 받아 감독으로서 스스로 무한히 발전해 가리라는 것을 존 포드는 자신의 혜안과 안목으로 단박에 알아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