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불화
19. 불화
기묘한 풍경이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삼 대다. 삼 대가 한자리에 모여 앉아 있다. 아버지, 나, 내 아들과 딸. 낯설다. 기이하다. 현실의 풍경 같지가 않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는다. 초현실스러운 풍경이다. 나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제삼자처럼 한 발짝 뒤로 물러 나와 그 풍경을 물끄러미 구경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생경한 풍경 앞에서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왕래가 하나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내가 명절이나 두 분 생신 때 아이들을 데리고 곧잘 시댁을 찾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막지 않았다. 모르는 체하지도 않았다.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간섭하지 않았다. 간섭하지 않는 것으로 내 할 도리는 다하는 것이라는 한가롭고 알량한 생각이었다. 아내가 때마다 빠짐없이 꼬박꼬박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확인한 적도 없다. 알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걱정을 한 것은 아니다. 현실의 일 같지가 않다는 느낌. 현실의 일이 아닌데, 거기에 대해서 무슨 반응을 보인다면 그건 우스운 일이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외면했다.
나는 명절이 원체 싫었다. 본능적인 거부감. 질겁할 혐오감. 명절과 관련해서는 안 좋은 기억 일색이다. 명절은 언제나 어김없이 아버지 형제들의 불화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런데도 기어이 한 자리에 모여 얼굴을 맞대고 약속된 무대에 연극을 올리듯 불화를 성실히 시연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불화의 한가운데에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할아버지는 불화에 아무런 이바지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때마다 불화의 도화선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어린 내 눈에도 그게 다 보였다. 할아버지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자식들의 불화를 부채질했다. 자식들은 고작 그것만으로도 알아서들 성급하게 잘만 타올랐다.
처음에 나는 다들 할아버지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만의 비책, 고도의 술책이 아닌가도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들 모두가 스스로 그 농간을 조장하고 있다고, 적어도 방임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아가 그걸 즐긴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회만 되면 어김없이 지칠 줄도 모르고 줄기차게 그리 할 수 있을 까닭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안방 아랫목 한가운데 앉아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말없이 고개를 깊이 수그리고 있으면 나머지는 그 자리를 기점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은 자식들이 척척 다 알아서 제 몫의 퍼포먼스를 여봐란듯 시연해 보였다. 훈련 잘 된 탁구선수들이 기계적으로 능란하게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듯, 장단 맞춰 열심히 자발적으로 행여 질세라 부지런히 서로를 비방하고 힐책하고 삿대질을 했다. 귀청 따가운 고성이 빗발치듯 어지러이 오가고, 눈의 흰자위들이 나이트클럽의 미러볼 조명처럼 현란하게 번득이는 그 광경은, 장관이었다.
결말은 똑같았다. 그렇게 싫으면 모이지 않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싶을 만치 애초 떨떠름한 표정으로 어슬렁거리며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급기야는 하나같이 벌레 씹은 상기된 표정으로 못 볼 꼴을 억지로 봤다는 듯 오만상을 찡그린 채 앗 뜨거워라 하며 앞 다투어 뿔뿔이 흩어져 갔다. 버림받듯 뒤에 남은 것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아버지였다. 어머니였다. 나였다. 내 동생들이었다. 문득 안방을 뒤돌아보면 할아버지가 아랫목에 무슨 정물처럼 그대로 앉아 있을 때도 있었고, 삽으로 떠낸 듯 말끔히 사라지고 없을 때도 있었다. 우리 가족과 함께 덩그러니 남은 할아버지, 또는 미련 없이 그들을 훌쩍 따라나선 할아버지. 어떤 때 남고, 어떤 때 떠나는지, 그 기준을 나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맏이였다. 그래서 번번이 다들 우리 집으로 모인 것이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있을 때도 있었고, 없을 때도 있었다. 언제 우리 집에 있고, 언제 우리 집에 없는지, 그 기준 또한 나는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있을 때와 없을 때, 그 자리에 모이는 아버지 형제들의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물론 내 느낌이다. 공격과 방어의 차이라고 하면 될까.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있을 때 그들은 무언가를 방어하려고 애를 쓴다는 느낌이었다.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없을 때 그들은 무언가를 공격하려고 애를 쓴다는 느낌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공격과 방어의 경계선 위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때로는 공격의 무기가 되었고, 때로는 방어의 방패막이가 되었다. 분명한 것은 모두들 저마다 할아버지를 상대방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떠넘기려 할 때 그들은 공격하는 사람으로 변했고, 떠안으려고 할 때 그들은 방어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것이 바로 빼도 박도 못할 할아버지의 엄연한 신세임을 나는 잘 알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사태는 너무도 자명했다.
문제는 아버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는 할아버지나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 맏이로서 아버지는 무언가를 해주어야 했다. 아버지만의 구실이 분명히 있다고 나는 믿었다. 그걸 하지 않음으로써 벌어지는 공격과 방어의 틈새에서 깊이 다치고 상처 입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걸 막을 힘이 나한테는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한테는 그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 힘을 도무지 행사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럴 의지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나는 풀 길 없는 깊은 의문에 사로잡혔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아랫목 한가운데 앉아 있었지만, 그곳이 할아버지의 자리는 아니었다. 어디에도 할아버지의 자리는 없었다. 어디든 누구도 넘보지 못할 할아버지만의 자리는 못되었다. 할아버지는 부평초처럼 위태로이 떠돌았다. 우리 집이 할아버지를 모실 형편이 못 된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잘 아는 것을 아버지 어머니가 모를 턱이 없었고, 할아버지가 모를 까닭이 없었다. 아버지의 동생들도 모를 리 없기는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걸 기준으로 삼으면 모든 문제가 합리적으로 풀릴 것이었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풀리고 안 풀리고는 아버지 형제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합리성이라는 기준은 그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갈 힘이 없었다. 그들은 합리성 따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나는 그걸 알았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합리성을 넘어선 곳에 있었다. 거기는 전혀 다른 기준이 작동하고 있는 세계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강제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기준. 나는 압박을 느꼈다. 너무나 강한 압박이라 감히 항의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 압박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지쳤다. 어쩌면 아버지도 심리적인 번아웃 상태에 빠졌던 것일까.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앉아만 있었던 것일까. 알 수 없다. 결국 그 덕분에 명절은 나한테 속절없는 지옥이 되고 말았다. 바늘방석, 가시방석, 살얼음판. 그걸 진득하니 견뎌낼 인내력이 나한테는 매우 부족했다.
우리 가족과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제삼자가 바라본다면 퍽이나 흥미로운 풍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웃의 불화만큼 흥미진진한 드라마도 없다. 불구경, 싸움 구경이 다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 불화의 현장에 영락없이 속해 있는 나 자신은 죽을 맛이었다. 이러려면 왜 꼬박꼬박 모이는지 알 수 없었다. 기어이 모여서 불화하느니, 아예 모이지를 말아서 그 불화를 피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어째서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불화는 기정사실이었고, 연례행사였다. 그렇다면 불화를 불화 자체로 인정하면 된다. 불화를 인정한 다음에야 기어이 모여서 불화를 시연해 보일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게 맞다. 그 편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합리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합리적인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아니, 합리적인 것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는 듯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설사 알았다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그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그 난감한 형국을 어떻게든 끝장내는 것이었다. 답은 딱 하나였다. 나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답을 그들이 모를 까닭이 없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답을 아버지, 어머니가 모를 턱이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알고 있는 답을 할아버지가 모를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 답은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스스로가 그 답이 되어야 했다. 할아버지 스스로가 그 답을 표명하고 선언해야 했다. 할아버지 스스로가 그 답을 당당히 시연해 보여야 했다. 그때 비로소 모든 것은 끝이 날 터였다. 진짜배기 대단원.
유감스럽게도 할아버지한테는 그럴 뜻도 없었고, 그럴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입 꾹 다물고 아랫목에 겨울잠 자는 곰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숫제 기대를 말 일이었다. 그러니 그 답을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면 그건 아버지의 몫이어야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 믿음조차 없다면 해마다 두 번씩 돌아오는 명절을 도저히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건 기대이기도 하였다. 언젠가는 꼭 한 번 무언가를 해주겠지, 하는 기대. 본때를 보여주겠지, 하는 희망.
헛된 기대였다. 끝내 아버지는 나를 실망시켰다. 그럴 줄 알았다. 새삼스럽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모든 것은 끝이 났다. 끝을 내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언젠가는 반드시 끝날 일이었다. 그걸, 그때까지의 시간을 그들은 견뎌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 모든 불화의 시연은 결국 어떻게든 그 시간을 견디려는 그들 나름의 발버둥이었다. 모든 것은 할아버지의 죽음과 더불어 느닷없이 막을 내렸다. 적어도 지옥 같은 명절, 명절이라는 지옥은 내 앞에서 사라졌다, 거짓말처럼. 그들은 다시는 우리 집에 모이지 않았다. 이제 불화의 풍경은 내 눈앞에 두 번 다시 펼쳐지지 않을 터였다.
한데도 명절에 대한 혐오감, 거부감, 불쾌감은 그대로 남았다. 그것은 기억이기도 하였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흉터 같은 기억. 좀처럼 떨쳐 내버릴 수 없는 질기디 질긴 기억. 악귀처럼 들러붙어 두고두고 나를 괴롭힐 몹쓸 기억. 악몽. 암담했다. 아버지가 더 늦기 전에 무언가를 해주었더라면, 그래서 사태를 조금이라도 호전시킬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얼마간이라도 사정을 회복시킨 채로 끝낼 수 있었더라면 뭐가 조금 달라지기는 했을까. 모르겠다. 이제 와서 그 문제를 따져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한가로운 신선놀음이다. 쓰잘머리 없는 사치다. 지금은 명절이 아니다. 한데도 나는 이 자리가 불편하다. 삼대가 한자리에 모여 앉아 있는 이 풍경이 거북하다. 달아나고 싶다. 이날 입때껏 달아난 채로 살아왔듯이. 하지만 피할 수 없다. 이것이 지금 내 몸의 한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