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43
CA211. 팀 밀란츠, 〈이처럼 사소한 것들〉(2024)
“그분이 날 돕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레미제라블》(빅토르 위고)의 테마는 계속된다. 단 한 번의 진심 어린 도움이 또 다른 도움, 어쩌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을 무릅쓴 또 다른 도움을 낳고야 만다는 이 지극히 인간적인 진리. 도움과 은혜와 용기의 이 기적 같은 상동성. 도움은 은혜처럼, 용기처럼 퍼져나가는 것이고, 전염되는 것이다. 무지무지 사소한 것이라도. 한 알의 밀이 빚어내는 신비. 〈막달레나 시스터즈〉(2004, 피터 뮬란) 이후 ‘막달레나’가 뒤집어쓴 또 한 번의 오명(汚名). 하지만 이런 오명의 사례는 다다익선, 많을수록 좋다. 오명이라는 지적과 깨우침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은 인간성을 지키기 어렵다. 대개 오명을 한사코 피하기만 하려는 사람들이 무도한 만행을 저지른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지만, 천사는 사소한 것들에 숨어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CA212. 신연식, 〈1승〉(2024)
사실 그들은 최후의 1승을 거두기 전에 이미 넉넉한 승리를 맛보았다고 해야 옳다. 승리는 스코어의 차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가 우리에게 강제한, 또는 부여한 가장 치명적인 오해가 바로 승리와 패배의 이데올로기다. 스코어의 격차는 승리의 겉치레일 뿐이다. 이 겉치레에 속으면 누구나 패자가 되게 마련이다. 무엇이 진정한 승리인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이걸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사람들이 세상을 망쳐서 지옥으로 만든다.
CA213. 이준익, 〈박열〉(2017)
손익의 관점 또는 의지, 그리고 정의의 관점 또는 의지, 이 둘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이기는 쪽은 언제나 물리적인 힘이 센 쪽이다. 물론 이 승리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힘에는 시효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리적인 힘의 편에 자기 존재 근거를 둔 사람은 뒷날 악명 또는 오명의 주체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이것은 전적으로 선택의 결과요 대가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경우 나머지 한쪽은 포기해야 한다. 그러니까 결국 이는 포기의 문제다. 어느 쪽을 기꺼이 포기할 줄 아는가, 하는 것. 그러니까 그 사람의 어떠함, 또는 됨됨이의 정체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느 것을 포기하느냐를 보면 된다. 그게 더 정확하다.
CA214. 유현목, 〈다 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1979)
이야기는 술집 작부가 감옥에 갔다 옴으로써 개과천선하는 대목을 기점으로 확연하게 그 성격이 달라진다. 모든 갈등과 문제가 등장인물 전원의 개과천선을 매개로 일제히 봉합되며, 흩어진 가족도 복원되고, 경제적 어려움도 극복되는 완전한 해피엔딩으로 치닫는다. 10·26 직전의 상황, 곧 긴급조치의 가공할 만한 상황에서 영화가 어떻게 그 자신의 리얼리티를 잃고 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전반부는 리얼리즘, 후반부는 판타지 또는 프로퍼갠더.
CA215. 기따 쉬프테르, 〈달의 얼굴들〉(2001)
여성들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어떻게 자기들만의 영토를 확보해 나가는가. 이 확보의 과정이야말로 실은 인류의 역사다. 남성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