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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inema Aphorism_45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45

by 김정수

CA221. 우민호, 〈하얼빈〉(2024)

김훈의 장편소설 《하얼빈》과는 그 주인공이 역사상 실존 인물 안중근이라는 점만 빼고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의 당혹스러움. 지금까지 나온 안중근 관련 영화들 가운데서 아마도 가장 남다른 캐릭터가 아닌지. 적어도 서사적으로 손을 많이 댄 스토리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듯. 따라서 굳이 평가를 한다면 이 계열로는 맨 앞자리에 놓인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는 밀정 소재를 깊숙이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구현할 수 있었던 특장일 것이다. 물론 동지가 배신하여 적을 위해 일하는 밀정이 되는 과정의 고전적인 서글픔은 낯선 것이 아니지만, 그 배신자인 밀정을 믿어주는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안중근의 휴머니즘이 진면목을 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인간적인 안중근이라고 하면 될까. 심지어 어머니가 등장하지 않는데도. 독립투사나 사상가로서의 안중근이 아닌, 인간 안중근. 인간이었기에 순교자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CA222. 스탠 브래키지, 〈독 스타 맨(Dog Star Man)〉(1961-1964)

종잡을 수 없는 이미지들의 연속. 배경음악도 없는 완전한 무성 영화. ‘필름’ 자체에 감행한 실험. 영화를 필름이라는 ‘물질’로 간주하는 사고의 결과물. ‘영화는 무엇보다도 필름이다.’ 그렇다면 그 필름 자체에 대한 실험이 곧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실험일 수 있는가. 하지만 필름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장차 도래할(!) 디지털 만능의 시대에는? 유감스럽게도 스탠 브래키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더욱이 그 죽음은 실험의 일환으로 그가 필름 위에 채색이라는 물리적이자 동시에 수공업적인 작업을 감행할 때 즐겨 사용했던 ‘콜타르’라는 염료가 원인이 되어 걸린 암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CA223. 가스파 노에, 〈돌이킬 수 없는〉(2002)

영화의 마지막 자막.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타임머신이란 말인가. 파괴를 미연에 막는 방법으로서의? 힌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고 인내하고 온유하고 배려하면 된다. 모든 것은 고작 한순간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결과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그렇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모든 것을 자초했고, 나아가 방조했다. 그리고 어리석었다. 위험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아니라 방종이다. 그러니 운명은 어쩌면 시간과는 무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CA224. 김형경,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

조폭이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데도 그 조폭에 대한 성찰이 없음은 결국 묻지 말라는 것. 그냥 보고 즐기라는 것. 그리고 잊어버리라는 것. 하지만 이런 식의 태도에 거듭 노출되다 보면 옳고 그름에 대한 윤리 도덕적 감각은 무뎌지기 마련 아닐까. 조폭 아버지를 둔 문제아 고등학생의 집은 왜 그토록 부유하며, 게다가 아무 문제 없이 잘 유지되기까지 하는가.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성찰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CA225. 허우 샤오시엔, 〈동년왕사(童年往事)〉(1985)

아름다운 남성(男聲) 내레이션. 이 목소리의 주인은 허우 샤오시엔 감독 자신이다. 그래서인지, 어조는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통한다’. 추억을 되새겨보는 사람의 아련하고 애틋한 정서가 물씬 풍겨 나는 영화. 자신의 유년에서 청소년기에 이르는 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회상. 또는 그런 아름다움에 대한 아픈 회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저 세월을 뛰어넘는 질기디 질긴 애환. 본토에 대한 그들의 끝없는 지향이 그들 삶의 이면을, 또 그들의 삶이 삽입되어 있는 ‘역사’를 설명해 준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통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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