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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inema Aphorism_44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44

by 김정수

CA216. 이타미 주조, 〈담뽀뽀(ダンポポ)〉(1985)

어떻게 하면 라면을 맛있게 만들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라면 가게를 열어 성공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라면을 맛있게 만드는 데 달인이 될 수 있는가. 한 여인이 라면의 장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이야기. 하지만 왜 야쿠자(야쿠쇼 코지)가 등장했을까. 이 이야기가 영화임을 애써, 굳이 알려 주는 신호일까? 그는 죽어가면서까지 먹는 이야기를 한다. 멧돼지, 고구마, 순대…….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문제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상한 방식의 스토리텔링.


CA217. 구도 에이이치, 〈대살진(大殺陳)〉(1964)

막부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 마지막 결전 장면은 〈7인의 사무라이〉(1954, 구로사와 아키라)를 방불케 하는 박진감 넘치는 아수라장으로,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요인에 대한 시해의 행위는 그렇게 이루어진다는 것. 또는 그렇게 실패한다는 것. 그들은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지만, 엉뚱한 인물이 그 임무를 대신 수행하게 된다는 아이러니. 시대극의 리얼하고 잔혹한 진경(眞景).


CA218. 타셈 싱, 〈더 셀(The Cell)〉(2000)

그 ‘셀’은 40시간 만에 물이 가득 차올라 그 속에 갇혀 있는 희생자를 익사시키는 장치를 가리킨다. 꿈속으로 들어가기. 범행 일체를 자백하지 않는 범죄자의 꿈속으로 들어가 그의 무의식 속에서 희생자의 소재를 파악해 낸다는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아이디어. 그러나 결국 사건의 해결은 내가 그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를 내 꿈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실현된다. 요컨대, 범인의 진심을, 그것이 악이든 선이든, 오롯이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다. 여기서 ‘나’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제니퍼 로페즈)이며, 게다가 이 과정에서 이 여자 박사는 이 작업이 한 범죄인의 정신적 외상을 결정적으로 치유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 작업은 끔찍하다. 악몽보다 더욱. 그런데도 이 작업을 그녀가 해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범인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CA219. 임경수, 〈도둑맞곤 못살아〉(2002)

기이한 몬스터 가족과 집념의 민완 도둑 사이에 벌어지는 한 판 대결, 또는 담합. 그들은 왜 끝까지 대결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 담합하고 마는가? 어딘가 모르게 유령처럼 겉도는 느낌의 특수효과, 또는 CG. 잔재주에 대한 지나친 몰입의 와중에 속절없이 흩어져버린 사회적 맥락에 대한 안타까움.


CA220. 오시마 나기사, 〈도쿄전쟁전후비화(東京戰爭戰後秘話)〉(1970)

‘도쿄전쟁’이란 1969년 가을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을 저지하려는 학생들의 시위를 가리킨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청년이 카메라를 들고 무엇인가를 찍으려고 하다가 돌연 높은 건물 옥상에서 투신한다. 도대체 그는 무엇을 찍으려고 했던 것일까. 그리고 왜 몸을 던졌을까. 이 도저한 투신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핵심 이미지다. 일찍이 〈바보선언〉(1984)에서 이장호 감독 자신이 용감히 시연해 보인 투신의 이미지―. 학생운동을 하는 그들은 기어코 분열의 숙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가 무엇을 찍으려고 했는지를 알려면 결국 그가 했던 것처럼 몸소 투신해 보는 수밖에 없다. 아마 그는 마지막 순간 ‘무엇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깨달음은 다른 사람들한테 투신 이외의 방법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깨달음이다. 전공투 세대의 서글픈 잔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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