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104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04

by 김정수

CA516. 박훈정, 〈귀공자〉(2023)

Child와 Childe. ‘아이’와 ‘귀공자’. 자칭 귀공자와 진짜 귀공자. 자칭 귀공자는 진짜 귀공자에게 자신을 왜 자꾸 친구라고 소개하는 걸까. 진짜 귀공자는 자칭 귀공자에게서 달아나는 것이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자꾸 달아나려는 걸까. 거듭 펼쳐지는 신체 에너지 과소비의 상황. 자칭 귀공자를 킬러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 자칭 귀공자에게 ‘킬링’은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자칭 귀공자가 진짜 귀공자를 넘겨주는 대가로 요구하는 천만 달러가 진짜 귀공자의 가족에게 정말 ‘지나친’ 금액일까. 아들과 심장, 또는 아들의 심장. 이 심장을 요구하는 쪽은 아들일까, 아버지일까. 맏아들과 둘째아들. 아니, 아버지도 아들의 심장을 원할까. 심장 이식 수술. 언젠가부터 이식의 테마가 빈번하게 우리 영화 속에 나오는 까닭은? 또는 이식이 문제의 해결 수단으로 등장하는 트렌드. 킬러가 친구로 바뀌는 순간. 프로의 자존심과 물주의 체면, 어느 쪽이 더 절실할까. 그가 맥거핀으로 드러나는 마지막 순간의 허탈함이 선의를 배경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의 건전한 자각 또는 유머. 그리고 코피노. 총탄 자국들과 환공포증(環恐怖症). 빚 갚기 또는 속죄의 서사. 마지막으로 플라시보 효과.


CA517. 안국진, 〈댓글부대〉(2024)

백 퍼센트 진실도 없지만, 백 퍼센트 허위도 없다. 이것이 진실을 둘러싼 싸움, 진실을 위한 싸움, 진실을 밝히려는 싸움을 힘겹게 만든다. 모두가 이 난감한 현실 또는 실존의 굴레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뒤집어쓰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허위로 진실을 짓밟으려 해도, 또는 이용하려 해도, 또는 덮으려 해도 그 일부의 운명적인 진실이 그 허위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그 허위의 주체는 문득 잊는다. 이게 족쇄가 된다. 손석구가 최종적으로 패배하지 않은 것은 이 일말의 진실 덕이다.


CA518. 오즈 야스지로, 〈청춘의 꿈은 어디에〉(1932)

류 치슈, 다나카 기누요. 오즈 초기의 인물들. 이후 20년에서 30년씩 계속 함께하게 되는 베우들. 학생들이 입은 유니폼을 교복이라고 부를 때와 제복이라고 부를 때의 뉘앙스 차이. 대학생들이 교복을 입던 시절. 이런 구별이 필요했던 까닭은? 중학생 수준의 머리라서 끊임없이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는 학생. 공붓벌레라는 별명의 내용. 홀어머니에 외동아들이라서 태평하게 놀 수 없는 처지라는 것. 즐기는 사람과 준비하는 사람의 차이. 찢어진 속옷. 수평 트래킹. 교실 풍경. 평균수명이 지금보다 짧았던 시절. 사람이 대체로 조숙했던 시절. 근대화와 제도교육은 사람이 철드는 시기를 늦추는 구실을 했던 것은 아닌지. 투표권의 연령제한이라는 문제. 성인 연령의 기준과 투표권 소유 연령의 기준은 어째서 어긋나는 모양새로 얽혀 있는가. 깡마른 몸집의 남자배우들. 담배 피우는 신여성. 양장과 기모노. 모자(帽子)의 유무. 음주, 도벽. 신여성에 대한 편견. 네모나게 접은 수건을 머리에 얹고 더위를 견디는 일본 남자들. 부모는 어째서 적령기의 자식을 기어이 결혼시키고 싶어 하는 것일까. 내 문제일 때와 내 자식의 문제일 때. 강의에 집중하지 않는 학생들의 모습이 있는 교실 풍경. 창조적인 커닝의 방법. 커닝은 어째서 반드시 들키는가. 커닝의 양식사. 배우자감인 신여성과 며느리감인 신여성. 영화 속 인물들의 성격이 복잡해진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복잡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화 자체가 복잡해졌기 때문일까. 인간은 변하지 않았는데, 영화의 표현 양식의 어떤 수위가 달라진 것일까. 복잡해진 것은 인간이 아니라, 영화인 것일까. 느닷없는 부친의 사망. 극적 개연성. 대학 중퇴와 취업.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는다는 것. 인생살이의 또 다른 국면. 졸업한 사람과 중퇴한 사람. 학생 티를 벗고 벗지 못한 차이. 친구가 사장일 때. 친구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에 들어가는 문제. 입사 시험의 풍경. 또 커닝. 친구가 시험을 잘 치르도록 도와주는 사장. 사장이냐, 친구냐. 격의 없이 즐겁게 어울려 놀 수 있는 시절의 마지막 국면. 청탁과 보고. 자기 회사 사장인 친구와 연적이 될 때. 여자가 어떤 남자를 선택하는가, 하는 문제. 힘 있는 남자냐, 불쌍한 남자냐. 아직은 측은지심의 시대. 나 아니면 누가 그 사람한테 시집을 가겠어요? 우정 앞에서 사랑을 포기할 수 있었던 시대. 어떻게 결말을 내느냐. 너는 내가 친구의 애인을 빼앗고 좋아할 놈으로 보여? 처지가 달라지면서 관계도 바뀐다는 것. 청춘은 그렇게 사라진다는 것. 이 쓸쓸한 생활의 발견. 오즈 영화에서 사람이 사람을, 그것도 아주 심하게 때리는 장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란히 서 있는 두 그루의 나무 인서트. 우정의 등가물. 이 단순 명쾌한 상징. 기차를 타고 떠나는 신혼여행. 주인공이 아닌(!) 인물의 결혼으로 끝나는 영화.


CA519. 오즈 야스지로, 〈숙녀와 수염〉(1931)

검도(劍道).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눈길을 보내고 있는 장면. 오즈 영화에서 드물게 보는 종류의 액션. 약간의 몸 개그. 무성영화는 기본적으로 몸 개그를 유발하는 성향이 있다? 천하무적 오카지마. 카메라, 움직일 수 없기에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와 움직이고 싶지 않기에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 남자의 의기 또는 협기, 오즈 영화 속의. 길 걷는 사람을 옆에서 따라가는 수평 트래킹. 당시 오즈의 무성영화에서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장면. 남자에게 수염이란? 수염을 깔끔하게 면도한 남자와 텁수룩하게 기른 남자의 차이. 수염은 어째서 강인한 남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가. 아니면, 수염은 그 수염의 소유자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표시인가. 몸이냐, 수염이냐. 의상이냐, 머리냐. 서양식 머리와 기모노의 이상한 조화. 쪽진 머리와 한복. 먼저 비어 있는 공간을 보여주고, 이어 인물이 그 공간 속으로 들어오는 식의 장면 연출. 셸 위 댄스? 터프한 남자가 할 수 없는 것, 또는 해서는 안 되는 것, 춤. 같은 흑백이라도 당시의 흑백과 지금의 흑백이 다른 점.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염을 깎아야 한다. 수염을 깎고 그가 잃어버리는 것과 얻는 것. 수염과 양복은 정녕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가. 어째서? 미학적인 차원에서? 아니면, 실용적인 차원에서? 하지만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링컨도 수염을 길렀다. 어울리는 수염이냐, 아니면 어울리지 않는 수염이냐. 털에 대한 기호. 곰방대와 권련. 수염을 기른 그가 면접에서 거듭 퇴짜를 맞는 까닭은? 사회가 용인하는 용모의 수준은 어디까지인가. 로렐과 하디.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를 방에 붙여놓고 사는 당시 일본의 젊은이들. 희극에 대한 오즈의 기호. 방 안에 빨래를 널어놓고 사는 사람들. 침실과 서재와 부엌의 삼위일체형 주거 공간. 숙녀는 수염을 원하지 않는다? 수염이 어째서 불합격의 원인이 되는가. 그가 수염을 기르는 까닭은? 벽에 붙여놓은 링컨의 사진. 링컨이 수염을 기른 까닭은? 수염은 여자를 불러들이는 부적이다―. 이것은 사실일까, 오해일까. 머리가 아니라, 수염을 깎기 위해 이발소에 가야 했던 시절. 1931년의 링컨? 그토록 오래 기른 수염을 마침내 깎아버린 그는 예전의 그가 맞을까. 담배를 피우고 운전을 하는 신여성. 링컨의 수염과 톨스토이의 수염. 또는 마르크스의 수염. 옛 영웅들은 모두 수염을 길렀다? 한데도 수염을 기르는 것이 어째서 결격사유가 되는가. 수염을 깎은 그가 일하게 될 곳이 호텔이라는 것. 수염과 함께 사라진 것은? 여자는 수염을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 수염을 길렀을 때와 깎았을 때, 남자들 본인의 느낌은? 과연 남자들 가운데서 두발과 구별이 안 될 만큼 텁수룩한 길이로 수염을 길러본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한 번도 수염을 길게 길러본 적이 없는 ‘이상한’ 남자들로 가득 찬 세상. 수염을 기르기 위해 마음을 써본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 경험의 유무.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것으로 성립되는 남녀 간의 인연. 내복을 길게 잡아 늘여 양말처럼 발을 감싸기. 취직의 어려움. 취업난의 또 다른 형태. 당시 오즈 영화 속에 줄기차게 등장하는 일자리 문제. 남자의 취직과 여자의 결혼. 남자는 면접을 보고 여자는 선을 본다. 이 서로 맞물리면서도 엇갈리는 문제. 나를 좋아하는 여자와 나를 도와주는 여자. 결혼 상대로는 어느 쪽이 더 적합할까. 나를 좋아하는 여자와 나를 필요로 하는 여자. 좋아하기에 필요한 것인가, 필요하기에 좋아하는 것인가. 남자의 마음은 어느 쪽으로 기울까. 싸구려 브로치를 삼만칠천 불짜리 브로치라고 속여 일본여성을 현혹시킨 미국남자. 만나는 여자마다 그에게 반해버리는 까닭은? 터프한 남자가 바느질을 할 때―. 두 남녀가 방바닥에 나란히 앉아 바늘에 머릿기름을 발라 바느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자꾸 찌르는 장면의 우스꽝스러움과 서글픔. 여자들이 성실한 남자를 좋아하는 까닭은? 아니, 원하는 까닭은?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의 차이. 여자의 능숙한 바느질 솜씨가 의미하는 것. 세 여자들 가운데서 결국 그를 차지할 여자는? 누가 그를 더 원하는가. 누가 그를 더 믿는가. 승리는 믿는 자의 것인가. 개과천선의 프로젝트.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결혼은 어떤 사람들의 것인가. 바느질 솜씨가 없는 여자, 믿음이 없는 여자. 수염 깎은 남자의 로맨스. 그러나 깎아도 자꾸 자라는 것이 수염이라는 링컨의 의미심장한 마지막 위트 넘치는 전언.


CA520. 오즈 야스지로, 〈동경여자〉(1933)

누나의 남동생과 오빠의 여동생. 아무도 없이 오로지 남매만으로 이루어진 가족. 이것은 어째서 유사(類似) 부부의 모양새가 되는 것일까. 누나가 차려준 밥상. 구멍 뚫린 양말. 버선. 남동생의 수업료를 걱정하는 누나. 돈은 남자가 벌어오고 씀씀이에 대한 걱정은 여자가 하는 이 상투적이면서도 이상한 구도. 평균수명이 지금보다 짧다는 것은 철이 드는 시기도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보다 이르다는 뜻일까. 화장대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기 얼굴에 곱게 분을 바르는 여자. 직장에서 기모노 위에 외투를 덧입고 일하는 여성. 경찰 앞에서는 왜 괜한 말을 자꾸 하게 되는 것일까. 빠른 속도로 능숙하게 타자를 치는 여사원의 손. 게리 쿠퍼. 찰스 로튼. 에른스트 루비치. 어느 날 느닷없이 해고 통보를 받은 사람의 이야기. 그가 긴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여러 단계를 거쳐 사장실로 찾아가는 과정을 길게 보여주는 인서트. 그것이 빚어내는 모종의 불길함. 일하는 누나와 영화 보는 남동생. 그의 여자친구 다나카 기누요(!). 오빠와 함께 사는 여동생. 대학교수의 집에서 일을 도와준다고 해놓고 실은 술집에 나가 일을 하는 누나. 품행에 대한 소문. 여동생의 교제를 걱정하는 오빠. 누나의 걱정과 오빠의 걱정, 그 내용의 차이. 지원과 보호. 다른 방점. 이 오빠의 직업이 경찰이라는 설정. 오빠는 여동생이 만나는 남자의 뒷조사를 한다. 그리고 표명하는 우려. 사람들이 집에서 TV를 보지 않고 책을 읽던 시대. (이 영화 자막 필체가 유난히 마음에 든다.) 난로를 피워둔 방 안에서 입김이 나는 시대. 서민 주택은 어째서 외풍이 센가. 사실과 중상모략. 믿음과 의심. 참느냐 못 참느냐가 아니라, 참기로 하느냐 참지 않기로 하느냐의 문제. 난로 위에 물 주전자를 늘 얹어놓고 살던 시대. 알맞은 습도. 오즈 영화 속에 나오는 술집 여자들. 생활고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술집에 다니는 여자들. 이것은 시대상일까, 취향일까, 관심사일까.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 일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종류.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일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종류. 이 엄혹한 차이. 여자가 화장을 짙게 하는 순간과 그 화장을 지우는 순간. 여자의 노동에 기대어 자신의 미래를 도모할 수밖에 없는 남자의 처지. 이 경우 어느 쪽이 희생이요 헌신일까. 아니, 어째서 희생이요 헌신이어야만 할까. 선택할 수밖에 없어서 선택한 것은 이미 선택이 아니다. 그러니 그 선택과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 누나를 때리는 남동생. 또는, 그러는 이유의 시대적인 차이. 누군가를 위해 내가 고생을 한다는 것. 그 모든 헌신을 딛고 얻은 졸업. 하지만 졸업이 보장해 주는 초라한 미래. 걷는 사람을 따라가는 수평 트래킹. 서민의 삶을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 거의 정면에서 거의 정면으로 커트되는 화면. 그래도 시선은 180도 상상선을 어기지 않는다. 끈으로 벽에 매달린 장갑의 인서트. 그 불길한 이미지. 일종의 예언. 소품을 이용하여 앞으로 닥칠 사건을 암시하는 방법. 검소한, 또는 초라한 밥상. 전화가 흔하지 않던 시절,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것은 주로 어떤 성격의 소식을 뜻했을까. 희소식일 가능성은 아무래도 낮지 않았을까. 어쩌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것은 그만큼 연락이 쉽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 전화가 왔다고 알리러 온 소년(1932년작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서 두 형제 가운데 형으로 나온 그 아역배우)이 다나카 기누요 네 집 문을 열고 굳이 돌아서서 뒷걸음질로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오게 한 설정 또는 연출. 오즈 특유의 유머. 오빠한테서 애인의 자살 소식을 듣는 여자의 심정. 그 여자한테서 남동생의 자살 소식을 듣는 누나의 심정. 이 순간 다나카 기누요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 충격, 슬픔, 분노, 절망, 참담함이 모두 응축된. 자꾸 반복해서 끼어드는 벽시계들의 인서트. 가혹하게 흐르는 시간. 또는 그 흐름의 엄정함. 째깍째깍. 8시 30분. 아직 그 소식을 듣지 못한 누나의 모아 쥔 두 손. 도대체 이 여동생은 자기 애인의 누나한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 그가 자살한 까닭은? 그는 무엇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일까. 무엇이든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할 때 감행하게 되는 자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연. 그러니 특종감조차 될 수 없는 사연. 결국 여기서 목표를 달성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았다는 것. 그래도 가장 슬픈 것은 그 누나가 아닐까. 희생의 대가가 물거품이 되어버렸으니까. 남자들만의 수평 트래킹. 기자 역할로 잠깐 나온 류 치슈(!). 그리고 아무도 없는 수평 트래킹의 마지막 장면. 오즈가 만들어놓은 그 쓸쓸한 마지막 빈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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