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06
CA526. 정창화, 〈장희빈〉(1961)
한국영화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해학이나 유머가 아닐(니었을)까. 이 유머와 해학의 정신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를 천격(!)의 코미디가 차지하고 든 것은 아닐까. / (암행 중의 임금―숙종―은, 장죽을 빨며 쉬고 있는 남루한 지게꾼한테 묻는다.) / 너 어느 곳에서 왔느냐. / 네, 양주땅에 삽죠. / 음. 그래, 나무를 내다 팔면 처자 거느리고 조반 석죽은 되느냐? / 웬걸입쇼.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삽죠. / 그래? / 이만큼 지내는 것도 다 어지신 상감님 모신 덕분입죠만……. / 상감님 덕이라니? 상감이 그렇게 착하시더냐? / 그러문입쇼. 글 잘하시고, 백성 아끼시고. 그저 단 한 가지……. / 단 한 가지라니? / 그 말하자면, 난봉기가 좀 심하다나요? / (이때 옆에 있던 신하가 무엄하다며 지게꾼의 멱살을 잡고 든다. 그 신하를 점잖게 만류하는 임금.) / 이 사람은 가끔 지랄병을 하는 사람이니 과히 노여워 마라. / 허, 그 양반. 거 지랄병 빨리 고쳐야겠수다. / 하하. 그래, 상감이 난봉기가 있다고? / 저야 뭐 압니까? 그저 동네방네 사람 모인 곳에만 가면, 그 듣고 하는 소리가, 그 영악한 장희빈에게 홀딱 넘어가서 착하고 어지신 민중전을 억울하게 내쫓으셨다굽쇼. 아, 그래 온통 이 세상에서는 예, 원성이 자자합죠. / (이때 옆에 있던 신하가 다시 끼어든다. 이놈, 그 주둥이를 삼가지 못하겠느냐고 하며. 이에 지게꾼이 답한다.) / 허허, 또 지랄병이 도졌나보군. 거 아무리 양반님네라도 이런 병신 데리고 다니다가는 큰 봉변을 하시겠어요. / (이에 상감이 지게꾼에게 돈푼을 건네주며 말한다.) / 옛다. 어디 가서 요기라도 해라. / (황송해하는 지게꾼. 이때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지나간다.) /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이라……. / (물론 여기서 장다리는 장희빈을, 미나리는 민중전을 가리킨다.)
CA527. 정창화, 〈위험한 청춘〉(1966)
신성일은 제 누나를 욕보인 허장강에게 복수하고자 허장강의 누이동생 문희를 유혹하여 욕보인다. 하지만 문희는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도 신성일에 대한 일편단심의 사랑을 거두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는 스스로 신성일의 정부나 첩으로 살아도 좋으니, 자신을 버리지만 말아달라며, 매정하게 돌아서 가는 신성일의 등에 대고 애걸하기까지 한다. 60년대 한국은 그런 인물형들이 살았던 시대다. 아니, 그런 인물형이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던 시절이었다. 적어도 그런 인물형의 리얼리티 여부를 놓고 딴지를 걸지는 않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바뀐’ 것이다.
CA528. 이반 라이트먼, 〈에볼루션〉(2001)
인간은 왜 누군가가, 또는 무엇인가가 쳐들어와서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해야만 즐거워하는가. 아니, 왜 누군가가, 또는 무엇인가가 쳐들어오는 이야기를 즐기는가. 이것도 피학 심리의 일종일까. 이게 본능일까. 아니, 본능의 하나일까.
CA529. 앤드루 애덤슨 & 비키 젠슨, 〈슈렉〉(2001)
아무리 봐도 슈렉은 못생기지 않았다. 귀여울 뿐이다. 마법에서 풀린 피오나 공주의 모습도 추하지 않다. 나름대로 귀여울 따름이다. 다만 파과드만이 끔찍한데, 그것은 그의 외모 탓이 아니라 불쌍해서다. 그의 외모도 그냥 하나의 외모일 뿐이다. 다만 슈렉 역시 남다른 능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영웅의 한 계열에 속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한계다. 기존의 동화에 흠집을 내는, 정확히는 기존의 동화가 우리에게 심어놓은 고정관념이나 근원적인 기억에 손상을 가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를 확인시켜 주는 애니메이션. 그러니,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옛날 동화는 우리가 의심 없이 간직하고 있는 고정관념의 ‘폐해’를 지속해서 조장하는 구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애니메이션은 그 폐해의 영향권 안에 지금의 어린이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의미 있는’ 경종을 울리는 서사로 읽히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CA530. 안현철, 〈인목대비〉(1962)
선악 양분 구도가 선혈처럼 분명한 이야기 구조. 하지만 이것이 거의 전부인 영화. 덕분에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쉬워진 것은 사실이다. 이 영화의 대중적인 호소력은 여기에서 나온다. 더욱이 이것은 사극이다. 광해군에 대한 시각이 수정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라는 사실의 새삼스러운 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