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107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07

by 김정수

CA531.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아브라함 계곡〉(1993)

이 영화의 형식미가 빛을 발하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슬그머니 지겨워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한 여인의 애욕에 대한, 또는 불륜의 여정에 대한 이 끈질기고 도저한 명상은 너무도 목가적이어서 관객은 흡사 책을 읽고 있는 듯한 감흥에 사로잡힌다. 이 영화는 문자 그대로 ‘읽어야’ 할 ‘책’이다.


CA532.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 〈존 웨인의 히프〉(1997)

1939년생의 감독이 이 영화의 촬영 시기인 1997년 무렵 80대 노인처럼 보이는 몬테이로는, 감독이자 배우로 스스로 출연한 이 영화에서, 제 성기를 관객을 향해 함부로 들이대며 거리낌 없이 소변을 본다. 그 신랄함에 관객은 결국 감독의 의도대로 실컷 놀림을 당한다. 하지만 이 놀림의 끝에서 관객이 자각하는 것은 각자의 인생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의 필요성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인생을 헛살았을까. 존 웨인의 히프가 율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한갓 꿈이라고 치부하는 인생을 우리는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CA533.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지배의 공허한 영광〉(1990)

조국이 식민지를 갖는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를 이 영화는 한 군인의 허망한 죽음을 통하여 생생히 ‘가르친다’. 하지만 이렇듯 가르치기 위해서 감독이 택한 것은 강의요 대화의 방식이다. 이 영화가 독특한, 또는 중요한 것은 그래서다.


CA534.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불안〉(1998)

인간이 그 자신도 의식하기 힘든 근원적인 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쳐야 할 죽음 때문이다. 그 불안을 명확하게 의식하는 순간 자살이 아주 매력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그래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감히 아버지가 아들에게 죽으라고 명령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바란 것은 ‘불멸’이다. 죽음은 그 불멸의 액땜이다. 적어도 아버지한테는 그렇다. 세상에!


CA535. 브라이언 싱어, 〈유주얼 서스펙트〉(1995)

1인칭 화자가 범인일 경우 독자는 속을 수밖에 없다는 추리소설의 저 금기에 가까운 기본 전략을 구사한 서사.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정도의 완성도와 수준을 달성할 자신이 없다면 감히 선택하기 어려운 전략. 케빈 스페이시의 명연이 빛났던 마지막의 반전이 전체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렸다고 한다면 지나치게 인색한 평가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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