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08
CA536.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세계의 시초로의 여행〉(1997)
‘시초’란 ‘탄생’을 의미하는가? 그가 자신이 태어난 곳, 자신의 탄생지, 또는 아버지의 탄생지, 또는 자기 ‘핏줄’의 기원을 찾아가는 이 여정은 속절없이 〈율리시즈의 시선〉(1995,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그 가슴 시린 여정을 떠올리게 한다. 모국어를 배우지 못한 그는 이 여정의 끝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고모를 만나 자신의 정체에 대한 끈질긴 추궁을 당한다. 그 추궁의 끝에서 확인된 혈육의 정이 소중하다.
CA537. 페드로 코스타, 〈피〉(1989)
성장기의 고통, 아버지 상실, 모친 부재, 연애, 형제……. 이 모든 관계들을 새로운 체제로 바꾸기를 요구하는 외부 세력으로서 삼촌이라는 존재. 그리고 완전한 이방인들. 이 복마전의 한가운데에서 주인공은 갈 바를 모르고 방황한다. 왜? 그는 아직 성장 중이므로.
CA538. 유현목, 〈김약국의 딸들〉(1963)
딸만으로 이루어진 한 일가의 붕괴는 그들이 딸, 곧 여자들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의 대응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 영화의 원작소설은 따라서 시대의 흐름을 슬기롭게 탄 셈이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한 사회의 붕괴나 파멸이 이 영화의 진정한 주제였다면 유일한 대학생인 둘째 딸 엄앵란의 비중이 조금 더 컸어야 하지 않을까.
CA539. 석래명, 〈고교 얄개〉(1977)
이 영화를 ‘꿈꾸던 것을 형상화한 하나의 판타지’로 규정하는 태도는 전적으로 옳다. 영화가 리얼리티만이 목적인 예술이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꿈의 허구스러운 실현은 일면 위험하지만, 이런 실현의 경험 없이 인간은 삶의 고충을 배겨낼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도 명약관화한 진실이다.
CA540. 정진우,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앵무새는 제 언어로 말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몸으로 울 수밖에 없다. 말을 못 하는 정윤희가 피가 섞이지 않은 홀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역시 피가 섞이지 않은 제 오빠와 밀애를 나누는 것은 따라서 몸으로 우는 반항의 행위,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아버지로 대변되는 인생과 운명에 저항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항의 몸짓은 한갓 언어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기에 현실의 즉물적인 힘 앞에서 굴복할 수밖에 없다. 그녀의 죽음이라는 귀결은 따라서 필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