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전, 〈방김거사야거〉_1
H03. 가을, 벗을 찾아가는 이의 마음 / 鄭道傳(정도전), 〈訪金居士野居(방김거사야거)〉_1
예, 맞습니다. 바로 그 정도전입니다.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세우고, 나아가 조선이라는 새 나라의 기틀을 일군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그의 시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글 좀 한다는 사람치고 시인 아닌 사람이 없었지만, 그래도 정도전과 시는 어쩐지 잘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지요? 정도전은 역시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정치가로 각인되어 있는 인물인 탓일 겁니다.
조선 전체를 통틀어 살펴보면 이런 경우가 꽤 됩니다.
비록 폭군으로 폐위된 탓에 죄다 묻히기는 했지만, 연산군(燕山君)도 시를 아주 좋아했고, 나아가 잘 지었던 임금이었습니다.
《홍길동전》의 허균이 자신의 저서인 《惺叟詩話(성수시화)》라는 시비평서에 ‘廢主雖荒亂亦喜詞藻(폐주수황란역희사조)’라는 문장을 대놓고 쓴 것도 그래서입니다.
폐할 폐, 주인·임금 주, 비록 수, 거칠 황, 어지러울 란, 또한 역, 좋아할·기쁠 희, 말씀 사, 바닷말·무늬 조―.
‘폐주/수/황란/역히/사조’ 정도로 끊어 읽으면 되겠는데, 여기서 ‘廢主(폐주: 폐하여진 임금)’가 바로 연산군을 가리킵니다. 또, ‘詞藻(사조)’는 시가나 문장을 뜻하는 단어이니, 저는 이 문장 전체를 이렇게 번역하겠습니다.
‘폐주는 비록 거칠고 어지러웠을지라도 또한 시문을 좋아하였다.’
그러니 연산군은 비극적인 가족사를 겪지 않고 시절을 잘 만났더라면 성군까지는 몰라도 꽤 괜찮은 임금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제 추측이자 상상입니다.
엊그제 종영한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는 조선시대의 연산군으로 추정되는 임금의 캐릭터가 남자 주인공으로 나왔지요. 물론 음식과 관련이 깊은 드라마인 탓에 시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없었지만, 그가 요리에 매우 관심이 많은 미식가이면서 감정 기복이 심한 인물인 것도 이런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설정이었습니다. 그게 다 시적 감수성이 예민한 그의 성정을 반영한 결과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역시 폭군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여 연산군과 시 또한 정도전의 경우처럼 아무래도 서로 잘 어울리는 느낌의 조합은 아니지요?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서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도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입했을 때 적장(敵將) 우중문(于仲文)에게 그 유명한 〈與隋將于仲文詩(여수장우중문시)〉라는 명시(名詩)를 써 보내어 상대를 격동시키지 않았습니까.
장군과 시, 역시 잘 어울리는 짝은 아니지요? 그러나 사실입니다.
정도전과 같은 정치가가 이토록 감수성이 풍부한 멋진 시를 썼다는 사실 또한 얼른 믿기지는 않지만, 예, 분명한 사실입니다.
게다가 이 시는 조선을 대표하는 한시들 가운데서도 명편((名篇)의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지요.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이 글의 후반부에서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입니다.
이 시는 전체가 네 구(句), 곧 네 줄로 되어 있고, 각 줄은 일곱 글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한시 형태를 ‘칠언절구(七言絶句)’라고 일컫지요.
우선, 제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訪金居士野居(방김거사야거).
‘찾을·방문할 방(訪)’, ‘성(姓) 김(金)’, ‘있을·집 거(居)’, ‘선비 사’, ‘들 야(野)’, ‘있을·집 거(居)’―.
특별히 어려운 글자는 없는데, 다음 두 가지 정도만 주의하면 되겠습니다.
우선, ‘金居士(김거사)’입니다. 물론 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문제는 ‘居士(거사)’인데, 이는 고유명사, 곧 이름이 아니라, ‘벼슬을 하지 않고 재야에 묻혀 사는 사대부 선비’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입니다.
그러니까 ‘김거사’라고 하면 ‘김 씨 성의 재야 선비’ 정도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번역도 번거롭게 풀지 않고, 보통 그냥 ‘김거사’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居(거) 자입니다.
앞의 居(거) 자는 ‘있다, 살다, 거하다’라는 의미의 동사로 쓰였고, 뒤의 居(거) 자는 ‘집’이라는 뜻의 명사로 쓰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앞의 居(거) 자는 동사지만, 뒤의 士(사) 자를 꾸며주는 관형어 구실을 합니다. 그래서 ‘居士(거사)’는 ‘(시골에) 거하는 선비’라는 뜻의 명사가 되는 거지요.
끊어 읽기는 ‘방/김거사/야거’로 하면 되겠네요.
그러니까 제목 전체는 뒤의 ‘김거사야거’가 목적어이고 맨 앞의 ‘방’이 동사, 곧 술어인 ‘술목구조’의 문장입니다.
간단하게 풀이하면 ‘김거사야거를 방문하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한데, 주어가 없네요? 물론 여기서 생략되어 있는 주어는 ‘시의 화자’겠지요.
문제는 ‘金居士野居(김거사야거)’의 ‘野居(야거)’입니다.
대표훈에 근거하여 그대로 풀이하면 ‘들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대개는 ‘시골집’ 정도로 번역합니다. 그냥 ‘들집’이라고 하면 아무것도 없는 넓은 들 한가운데 오도카니 자리 잡고 있는 집의 모양새가 연상되기도 하여, 아무래도 재야에 은거하는 선비의 이미지하고 잘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거든요.
野(야) 자에는 ‘시골, 마을, 성 밖, 교외’라는 뜻도 있으니, 저도 역시 ‘시골집’ 정도가 더 잘 어울린다는 쪽입니다.
따라서 ‘김거사야거’의 풀이는 ‘김거사의 야거’ 정도로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전체를 번역하면 ‘김거사의 시골집을 방문하다’가 되겠지요.
이쯤에 오니, 벌써 궁금해집니다.
김거사는 누구이며, 김거사를 찾아가는 이는 또 누구일까요? 그리고 무슨 일로 찾아가는 것일까요?
게다가 시골집이라니요?
시골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이 시 속 화자의 거주지가 시골에서 멀리 떨어진 도회지임을 뜻한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먼 길을 떠났으니 당연히 이 시의 화자는 지금 바야흐로 나그네 신세일 테고요.
정도전 당시라면 14세기 무렵이니, 교통수단이 여의치 않았던 그 시대에 사람이 먼 길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요즘처럼 시간(時) 단위가 아니라, 마땅히 날(日) 단위로 셈해야 했을 것이고요.
따라서 이 시의 화자한테 김거사를 만나야 할 아주 중요한 용무가 있거나, 이 시의 화자가 김거사라는 사람을 너무너무 그리워해서라거나, 하는 정도의 무겁고 간절한 사정이 아니라면 선뜻 길을 나서기 어렵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이 시의 화자와 김거사는, 서로 벗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아주 가까운 지인(知人) 사이임에는 틀림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또, 꼭 동년배가 아니더라도 나이를 초월하여 얼마든지 벗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냥 벗이라고 해도 하등 무리는 없지 않겠나,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예, 이로써 이 시(詩) 속에는 그런 지인(知人), 벗들끼리 만나는 이야기, 또는 만나기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어렵지 않게 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서두가 길었네요.
이제 시(詩)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겠습니다.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