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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inema Aphorism_174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74

by 김정수

CA866. 이와이 슌지, 〈4월 이야기〉(1998)

그녀(마츠 다카코)에게 4월이 잔인한 달이 아니라 아름다운 달인 까닭은 순전히 사랑의 기적을 상징하는 그 찢어진 빨간 우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산이 된다. 67분의 러닝 타임에서 이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몰염치가 아닌지.


CA867. 이황림, 〈깜보〉(1986)

일종의 로드 무비이자,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극의 전개 속도가 지나치게 느린 탓에 이 영화가 담지하고 있는, 또는 겨냥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의식이 얼마간 희석된 느낌인 것도 부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느리다’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금’의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에서 속도는 어디까지나 ‘그 시대’ 정서의 속도를 반영하게 마련이다.


CA868. 이두용,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4)

제목의 ‘여인 잔혹사’라는 단서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한 여인의 기구한 인생 역정을 대변하는 말이지만, 역사적으로 억압당해 온 성(性)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억압이 조금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쌍방향의 것임을 놓친 것은 아무래도 한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CA869. 이두용, 〈내시(內侍)〉(1986)

내시는 성(性) 정체성을 잃어버린 존재다. 따라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니다. 그들이 죽기까지 복종으로 일관해야만 하는 것은 그 탓이다. 그런 그들의 반란이 인간 회복의, 또는 인간 회복을 위한 반란이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며, 따라서 처음부터 실패로 끝날 운명인 셈이다. 권력의 정점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멀리 있는 그들의 비극은 그들 자신이 세상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여기서 소속될 수 없다는 것은 보호받을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CA870. 송영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

베트남전에서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외상을 입은 남자와 가난 때문에 술집 작부로 전락한 여자는 우리 사회의 무분별한 산업화 과정이 낳은 비극적인 존재들이다. 따라서 이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 존재들인 그들이 이 사회에 발붙이고 살아가려면 그들끼리 연대할 수밖에 없다. 그 연대가 바로 사랑이라는 전언의 절절함, 또는 새로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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