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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스톤 Apr 04. 2023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벚꽃데이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몇 년 전 언양 작천정에서 만개한 벚꽃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는데, 이 말은 들은 친구는 갱년기 증상이라고 했다. 친한 지인은 남성 호르몬이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자연 현상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정년퇴직 후의 버킷리스트에 계절별 꽃구경 전국투어를 추가했고, 작년에는 봄을 알리는 홍매화부터 시작해서 겨울 눈꽃산행을 끝으로 해를 잘 마무리하였다. 올해는 꽃 피는 시기가 조금 당겨져서 투어 일정을 조금씩 조정 중인데, 꽃이 피는 길을 따라가며 꽃을 닮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삼락공원 둑길)

  부산 삼락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일곱 살까지의 기억이 모두 살아있는 곳이다. 거의 매일 뛰어놀았던 그 강둑에 언제부턴가 벚꽃길이 조성되어 봄이면 더 자주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구포대교에서 삼락공원부근까지 약 3km를 왕복으로 걸으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벚꽃길 걷는 사람들 표정이 밝았다. 걷는 사람들이 심심할 때쯤이면 바람이 슬며시 다가와 꽃잎을 재즈 선율처럼 날려 보내곤 했다.

(낙동강 건너편에도 ‘강서 30리 벚꽃길’이 조성되어 있다)                                                             


(언양 작천정)

  울산 주변에서는 최고의 벚꽃 명소이다. 100년이 넘은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구경할 거리는 짧으나 화끈하고 특유의 향이 있다. (중간쯤에 있는) 카페에 앉아 쇼팽의 녹턴을 들으며 비엔나커피 향기와 창밖 경치를 함께하는 행복함도 가질 수 있다. 여기만 오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는데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이다. 영화 ‘ 봄날은 간다 ’를 보고 얼마나 놀랬던지. (시나리오 작가가 00년도 내 일기를 훔쳐본 게 틀림없다)            


(경주 불국사, 보문정)

  울산과 가까워서 매년 벚꽃철에 가는 곳이다. 경주 여기저기 다녀보다가 최근에는 불국사 옆 공원 (자리 펴고 앉아있기가 좋다)과 보문정(밤 분위기가 좋다) 두 곳에만 간다. 공원 벚꽃 아래에서 어린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뛰어다니고 있다. 푸른 별 위에서 초록향기가 흩날리고 있는 순간들.            


(울산 선암호수공원)

  집에서 가깝고 호수를 따라 데크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매주 두세 번씩 걷는 곳이다.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 수선화도 볼 수 있다. 공원 곳곳에 벚나무가 있고 한 바퀴 걷는데 50분쯤 걸린다 (약 4km). 오늘따라 동백꽃 뺨이 유난히 붉다. 누굴 사랑하게 되었나 보다.          


(울산 무거천)

  청계천과 비슷한 하천에 진해 여좌천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는데 여좌천 보다는 자연미가 있다. 하천변을 따라 걷기에 좋아 울산에서는 나름 명소에 속한다. 여기도 낮보다 밤 분위기가 더 좋은 곳이다. 밤 벚꽃 보며 아내랑 걷고 있었는데 아내가 슬며시 내 손을 잡았다. 대낮이면 손을 빼는데 밤이라서 가만히 있었다. 언제쯤이면 내가 먼저 손을 잡을 건지...         

(진해 여좌천)

  5년째 친구 부부와 가는 곳인데 올해는 코로나로 못했던 행사를 4년 만에 열어서 그런지 벚꽃과 인공 설치물과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주중인데도). 사람들 표정과 목소리가 벚꽃엔딩이다.  여좌천은 밤에 가면 더 예쁘다. 유의할 점은 주차하다가 밤새도록 도는 수가 있다. 말 그대로 복불복인데 빙빙 돌다가 얻어걸리든지, 좀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걸어가든지 (이 날은 운 좋게 5분 만에 얻어걸렸다). 중간쯤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 루프탑에 올라가서 커피 마시고 재즈에 심취해 밤 벚꽃 보는 재미가 특별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입사 초기 (20대 후반) 어느 봄날에, 퇴근하다가 사원 숙소에 피어있는 밤 벚꽃을 보고 견디지 못해 근처 포장마차로 달려간 적이 있었다. 눈물 쏟아질뻔한 게 갱년기 증상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했는데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그리운 요즘이다.


표지 그림 : 헤비스톤이 그려보았습니다 (제주 전농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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