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날씨가 정확히 어떤 건지 잘 모를 정도로 정체성이 애매한 계절이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곧 헤어진다고 하면 아쉬워지는 인간 심리에 충실한 모양인데, 마음 같아서는 해먹에 누워서 선선한 바람에 낮잠이라도 자는 여유를 누리고 싶지만 한창 달리고 분주할 때라 나중으로 미뤄두었다.
라디오 안 듣고 지낸지 오래 됐는데, 10월 말부터 은근히 자주 손이 가서 가끔 좋은 목소리와 공감가는 사연들, 진짜 이 음악 좋다! 싶은 곡들로 가을을 더 풍성하게 채우고 있다.
친구와 약속을 잡고 만나거나 별 용건 없이 일상 안부 묻는 이야기 전화를 하는 건 엄두도 못내고, 뭐가 그렇게 바빠야하는지 서두르고 쫒기고 뛰면서 진짜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만 하며 사는 중이다.
그러니 마음에는 아쉬움이 쌓이고,글을 찬찬히 읽을 틈이 거의 안나서 브런치스토리도 이웃 작가님글도 제대로 못봐서 '하고 싶은 것도 미루고 사는구나,이게 제대로 사는 건가.' 잠시 멈출 수 있을 때마다 생각해 보곤 한다. 어떻게든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어쩔 수 없이 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히 생긴다는 의미니 늘 그렇듯이 지금은 일단 그 생각은 넘어가고, 또 해내야할 것들에 대해 생각을 집중한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 사는 일상들도 귀를 열어 듣고, 사연과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몸은 멀어도 마음으로나마 연결되는 기분과 인간미는 느끼고 싶으니까, 라디오에 접속하고서는 허전한 마음이 약간은 채워지는 틈이라도 만들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좋아하는 사람, 내 느낌과 생각들을 또 생각하기 그 안에 내내 머물며 11월을 맞이했다.
하루 종일 편안하게 흔들의자에 앉아 흔들 흔들 낮잠도 자고, 읽고 싶은 책 잔뜩 쌓아두고 읽고 싶은 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바라는 나의 로망이다.
더 이상 애써가며 치열한 생각을 그렇게까지절실하게 안 해도 된다고 마음을 탁 놓을 수 있으면 가능한 여유일까?싶기도 한데, 대체로 책을 볼 때 적극적으로 작가와 대화하듯 혼자 푹 빠져서 작가가 꺼낸 생각들에 연결되느라 생각이 치열하지 않았던 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쩌겠나.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성향인 걸, 나답게 사는 한 치열함이 그저 당연한 기본값인걸로 하자. 사실 내가 유별나서 나만 이런 것도 아니다.
혼자보기 아쉬운 가을, 가을이다.
가을 햇살이 좋아서,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어서, 바람도 그저 좋고, 그 덕에 낙엽이 춤을 추며 날아서, 따스했던 2023년의 어느 가을 날을 사진으로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