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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어디세요?

참 난감한 질문...

“고향이 어디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난감하다.

딱히 내세울 지명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경북 안동 출신이시다. 옛날에, 여기저기에 기재할 일이 많아서, 남자라면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했던 <본적>도 ‘경북 안동시 명륜동 ***번지’였다.


태어나기는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선친께서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의 법원공무원이셨기 때문이다. 수 십 년 흐른 후 당시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녔던 형과 어머니께서 경주 시절 얘기를 하는 때가 있었는데 내게는 먼 나라 얘기였다.


태어나기는 경주에서 태어났지만 첫 돌이 되기 전에 경북 영주로 옮겨졌다. 선친께서 법원공무원을 그만두고 영주에 사법서사(지금의 법무사) 사무실을 열었기 때문이다. 영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유치원에 입학했고 다음 해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국민학교 1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보내졌다. 서울에는 미리 유학 간 형이 하숙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침 외할머니께서 우리를 돌보실 수 있게 되어 서울에서 방 한 칸을 얻어 형, 누나, 나 이렇게 삼 남매 밥을 해주시면서 지내시기로 된 것이다.


국민학교 2학년부터 시작된 서울살이는 학교를 모두 마치고 결혼을 하고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물론 방학이면 아버지 계시던 영주로 갔다. 결혼 후에는 명절과 제삿날에 ‘본가’가 있는 영주로 갔다.


아버지는 사법서사 개업 후 돌아가실 때까지 30년을 영주에서 사셨다. 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신 후 몇 년을 더 영주에서 지내시다가 대구에 있는 막내아들 근처의 아파트에서 지내셨다. 말년에는 영주의 요양원에서 지내셨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화장을 해서 외가가 있었던 안동 상아동의 할아버지 산소 부근에 뿌렸다. 그나마도 그 산에 외곽도로가 나게 되어 파묘하며 할아버지 또한 화장하였기에 이제는 산소가 없다.




고향에 관한 그 질문을 다시 생각해본다.


부모님이 사셨던 곳 - 안동.

태어난 곳 - 경주.

태어난 해부터 국민학교 1학년까지 있었던 곳이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방학이면 가고는 했던 아버지 계시던 곳 - 영주.

국민학교 2학년 이후부터 마흔 넘을 때까지 살았던 곳 - 서울.


어디가 고향인 것일까?




국민학교 2학년 때 서울로 보내졌더라도 아버지 어머니께서 영주에서 사셨으니까 ‘영주가 고향’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 일응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선뜻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은 영주에는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친구가 한 사람도 없는 곳을 고향으로 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사람들이 고향을 물어오면 그냥 <서울>이라고 말한다. 조금 길게 말할 기회가 있으면 <영주에서 살다가 국민학교 2학년부터 서울에서 살았고, 아버지 어머니는 계속 영주에서 사셨다>로 말해준다. 그렇게 조금 길게 말해주면 듣는 사람은 '아니 무슨 고향이 그렇게 복잡...'하냐고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할 수 없다. 그게 나로서는 최선의 차선책이니까. 




고향(故鄕)이 무엇을 말하는지 찾아보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 또는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장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된 곳


나무위키

-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출생장소/출생등록지/성장기 연고지/부계 선대의 고향/본적지)

-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된 곳




태평양 너머 남의 땅에 살면서도 여전히 '내게 고향이란 무엇인가'라고 생각해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면서도, 남의 땅에 살기 때문에 '고향'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답도 없으면서 끊임없이 해오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과 이미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남은 날이 적을 것이라는 조바심이 겹치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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