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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와 볼펜'으로 복귀하다

조금은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어떤 생각이 떠올라서 이 생각을 글감으로 삼아야지 하는 마음먹을 때가 있다. 문제는 그 ‘어떤 생각’이 곧 잊혀진다는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아… 그게 뭐였더라… 전에도 생각나서 이번에는 잊지 말아야지 했는데… 그게 뭐였더라…’하는 아쉬움이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잊혀지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그러나 실망하지는 않는다. 우리 인류는 오래전부터 기억을 장기간 보존하기 위한 도구들 써왔으니까. 뼛조각, 거북이 등껍질, 돌판, 진흙판에 새기기도 하고 나무껍질, 대나무 조각에 적기도 하다가 종이에 적어왔다. 그러다 소리를 담는 녹음기와 전축판 그리고 영상을 담는 영사기가 나타났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은 개인용 종합판 기억 보존 도구이다. 영상을 촬영할 수 있고, 소리를 녹음할 수 있고, 문자를 입력할 수도 있다. 자판을 통 문자를 입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자를 화면에 직접 적어서 보존할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이후에는 생각나는 것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에 글감들을 기록해 두었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이고 별도의 추가 장치가 필요하지 않았기에 촬영, 녹음 그리고 문자 입력 모두를 사용했다. 그런데 문자 입력에 불편함이 생겼다. 뭔가 생각이 난 후 ‘아 이거 기록해 둬야지.’라고 결심한 후 전화기를 꺼내서 전화기를 켜고 관련되는 앱을 켜는 사이에 조금 전에 생각했던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늘 그런 문제가 있었는데, 문자 입력은 손으로 적는 것보다 느려서 답답하다. 컴퓨터 앞에서는’ 독수리타법은 아니기에, 키보드를 사용하면 손으로 적는 것보다 훨씬 빠르지만 스마트폰에 문자를 입력하는 것은 손으로 적는 것보다 느리다.


결국 문자 기록에 대한 방법은 바꾸었다.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종이와 볼펜’이라는 기초적이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일하면서 접하는 그래서 구하기 쉽고 크기도 작은 종이 한 조각에 한 꼭지씩 몇 글자를 적었다. 며칠 동안 적어보았더니 양이 퍽 된다. 스마트폰으로 했더라면 이 정도로 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하이고 언제 이걸 다 글로 전환하지?...’할 정도로 모였다.


그동안 적어온 종이를 들여다보며 ‘아하… 이거야 말로 꼰대의 증거가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이 좋은 세상에 아직도 ‘종이와 볼펜’으로 끄적이고 있다니… 하지만 뭐 꼰대라고 한대도 할 수 없다. 글을 쓰고 싶고, 글감이 생각날 때 그것을 기록해두고 싶은데 그 기록의 방법이 오늘날 사람들이 널리 쓰는 방법이 아닌 것뿐이니까. 뭐 사람이 다 똑같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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