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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형

형부/제부, 처형/처제 그리고 자형/매제


1960년대 얘기니까 좀 오래되기는 했다.


할머니 몇 분이 얘기를 나누는데 한 할머니께서 다른 할머니를 ‘성’이라고 부르시는 것이었다. 여기서 ‘성’은 ‘형’을 사투리로 말하는 것이다. 국민학생(지금의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좀 의아해했다.


‘형?....

형이라고?...

형이 아니라 언니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남자들은 형이라고 부르고 여자들은 언니라고 부르는 것인데…’


예나 지금이나 혈육을 말할 때 남자는 ‘형제’라는 표현을 쓰고 여자는 ‘자매’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단어 몇 개를 살펴보면 여자들 사이에서도 ‘형제’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니 콩쥐와 동생 팥쥐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둘 모두 결혼해서 남편이 있다고 했을 때 그 남편의 호칭을 생각해보면 된다. 동생 팥쥐가 언니 콩쥐의 남편을 부를 때에는 형부(兄夫)라고 한다. 언니(兄)의 남편(夫)이라는 뜻이다. 언니 콩쥐가 동생 팥쥐의 남편을 부를 때에는 제부(弟夫)라고 한다. 동생(弟)의 남편(夫)이라는 뜻이다.

형부와 제부라는 단어를 다시 살펴보자. 형부에서 ‘형’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고 제부에서 ‘제’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 형부의 ‘형’과 제부의 ‘제’를 합하면 ‘형제’가 된다. 여자들 사이에서도 ‘형제’라는 표현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남자가 여자를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을 본다.

언니 콩쥐의 남편이 팥쥐를 부를 때에는 처제(妻弟)라고 한다. 아내(妻)의 동생(弟)이라는 뜻이다. 동생인 팥쥐의 남편이 콩쥐를 부를 때에는 처형(妻兄)이라고 한다. 아내(妻)의 형(兄)이라는 뜻이다.

처형에 '형'이 들어있고 처제에 '제'가 들어있다. 여기에서도 여자에게 '형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에는 흥부와 놀부의 경우이다. 동생인 흥부의 아내가 형인 놀부의 아내를 부르는 호칭은 무엇인가? 작은 며느리가 큰 며느리를 부를 때에는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은가. 여기에서도 여자들 사이에서 ‘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지금 현실적으로 여자들 사이에서 ‘형제’라는 표현이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콩쥐/팥쥐의 경우와 흥부/놀부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여자들 사이에서도 ‘형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덧붙이는 이야기.


‘형제’가 형부/제부와 처형/처제라는 여성의 친족 간 호칭에 사용되듯이 ‘자매(姉妹)’라는 표현도 남성의 친족 간 호칭에 사용된다. 자형(姉兄)과 매부(妹夫) 또는 매제(妹弟)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자형에서 ‘자(姉)’를 가져오고 매부 또는 매제에서 ‘매(妹)’를 가져오면 자매(姉妹)가 되는 것이다.


지금 주위를 살펴보면 ‘자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매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즉 누나의 남편을 ‘자형’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매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형’과 ‘매부’는 공통되는 글자가 없어서 각각 따로 기억해야 하는데 ‘매형’과 ‘매부’는 ‘매’라는 공통되는 글자가 있어서 거기에 ‘형’과 ‘부’만 붙이면 되기에 좀 더 편리해서인 것 같다. 하지만 글자를 들여다보자. 자형은 자매의 ‘자’가 들어있으므로 누나의 남편을 부를 때 사용하고, 매부는 자매의 ‘매’가 들어있으므로 여동생의 남편을 부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나는 누나의 남편에게는 ‘자형’이라는 표현을 쓰고 여동생의 경우에는 그 남편들이 나보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매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어느 경우에도 ‘매형’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매형’은 손아래 사람을 말하는 ‘매’와 손위 사람을 말하는 ‘형’이 동시에 들어 있어서 위아래가 한꺼번에 뒤섞여 있는 뭔가 엉망진창 같은 기분이어서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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