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다행스럽게도 결혼과 동시에 아내가 큰 애를 임신했다. 막상 아내가 아이를 임신하고 나니 한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기쁨과 함께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걱정이 되었다. 이런 걱정을 떨치기 위해 나는 지인들의 육아법을 벤치마킹하면서 육아 관련 책과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달한 내 첫 번째 결론은 '부모로서 나는 내 아이를 어떤 아이로 키울지 그 방향성을 우선 수립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방향성이라고 하니 너무 거창하고 막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하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어떤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는지’가 바로 아이를 키우는 방향성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어떤 생각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고 또 어떤 아이로 키우고 있는지. 하지만 많은 대답들이 나를 실망시켰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남들 하는 대로 키우는 사람들도 있었고 있더라도 “의사가 됐으면 좋겠다.”거나 “교사가 됐으면 좋겠다.” 등 특정 직업으로 대답하는 부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욱 실망스러웠던 것은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현재 경기 상황이 어려우니 돈 잘 버는 직업이나 정년까지 일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을 택했다는 것이다.
아이의 적성이나 관심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부모 생각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공감을 못 얻은 것을 차치하더라도 직업을 아이 키우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렇다.
직업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 새로 생겨나기도 하고 또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유망 직업이 앞으로도 계속 유망할지는 알 수 없다. 이 말은 현재 유망 직업을 아이 키우는 방향으로 설정해서 아이를 열심히 키운다 하더라도 그 직업으로 아이가 평생 잘 살 수 있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 인기 직업으로 한때 이공계에서 공부를 잘하면 의대를 보내고, 인문계에서 공부를 잘하면 대학 입학과 동시에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 있을 만큼 유망했던, 물론 현재에도 유망한 직업이며 아직도 선망의 직업인 의사와 변호사도 과거에 비해 확실히 그 위상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의사와 변호사라는 직업은 괜찮다. 과거 유망 직업이었던 영문 타이피스트나 전차 운전사, 전화교환원 등은 직업 자체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직업으로 대답한 이유가 직업 자체의 유망 여부와 상관없이 선택한 것이라 하더라도 직업 자체가 아이 키우는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설사 그 직업이 유망해 자격증만 취득하면 평생 남 부럽지 않게 잘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직업 자체가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직업을 갖는다는 건 단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출발선에 선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출발선에 서기 위해 왔던 길보다 출발선에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이 훨씬 더 길고 험하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론 직업마다 출발선은 다르다. 또 어디서 어떻게 출발선을 긋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평탄할지 굴곡질지 예측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 출발선을 남들보다 유리한 곳에 긋기 위해 학창 시절 밤낮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이처럼 직업을 선택해서 갖는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터닝포인트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직업 선택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직업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니,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에 안 된다는 것이다. 목표라는 것은, 더욱이 인생 목표라는 것은 쉽게 달성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목표 그다음까지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목표를 이루고 나서 갑자기 허탈감이나 공허함,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더 이상 명확한 목표가 사라졌기에 길 잃은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방황하는 이른바 플래토 신드롬(Plateau syndrome)을 겪는 것이다. 플래토는 높은 곳에 위치한 평지인 고원(高原)을 뜻하는 프랑스 말이다. 플래토 신드롬에 대해 아주대 김현정 교수가 쓴 칼럼을 소개한다.
플라토 신드롬은 개인이나 단체가 그 고원까지 올라가는 동안에는 목표가 있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지만 원하는 것을 달성한 이후에는 위기를 겪게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즉 명확한 목표가 있을 때는 그것이 본인이 진정 원하는 것이든 아니든 최선을 다해 달려가지만 막상 본인이 정한 목표를 이룬 다음에는 더 이상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한다. 그저 오르는 것밖에 몰랐던 그들이기에 막상 높은 평지에 이르러선 당황해 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가 오른 곳이 어떨 것이라고 상세히 그려본 적이 없거나 자신이 생각한 바와 다를 때 종종 발생한다.
<DBR 2016년 11월 Issue 1 “성공 후 찾아오는 공허함. 가슴 뛰는 비전으로 극복하라” 중>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직업 자체를 목표로 잡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직업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를 목표로 잡는 것이다. 즉 직업은 인생 목표가 아닌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나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 키우는 목표나 방향성은 아이에게 꼭 심어주고 싶은 자질이나 특성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질이나 특성은 자연스럽게 몇몇 직업을 떠올리게 한다.
예를 들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이란 자질이나 특성은 ‘의사’나 ‘간호사’ 같은 직업이 떠오른다. 그래서 만약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아이 키우는 목표(방향성)로 잡았다면 의사라는 직업이 아니어도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즉 시대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의사가 되더라도 공허감에 빠져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더욱더 매진할 것이다. 어쩌면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직업과 같은 명사는 달성 여부가 명확하지만 자질이나 특성은 그 달성 여부가 주관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1997년 IMF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많은 사람들은 본인의 적성과 상관없이 무조건 안정적인 직업, 돈 잘 버는 직업, 직장을 선호했다. 하지만 어렵게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갖거나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평생 다니는 비중 또한 매우 낮아졌다. 더욱이 융합과 연결이 강조되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서 직업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게 생겨나고 또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서 부모로서 내 아이를 키우는 방향성을 설정할 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