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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버 Jan 29. 2022

연애디톡스: 혼자가 싫어서 하는 연애는 하지 않겠어

갈월동 반달집 비혼 동거 기록

#첫 번째 디톡스 _ 스물여덟, 2019년 여름


우리나라만큼 모두가 합심해서 연애를 권장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곳이 또 있을까? 좋은 말로 권장이지 사실 강요에 가깝다. 멀쩡한 젊음이 연애가 아닌 다른 곳에 쓰이고 있는 꼴을 견디질 못한다. 다행스럽게도 20대 내내 연애 중이던 나는 그런 압박감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모태솔로 친구가 온갖 모임에서 뜯기고 털릴 때, 나는 그 포지션의 완벽한 대척점임을 과시하며 그 친구를 상대적으로 더 비참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더 나아가 연애를 망설이는 친구에겐 일단 아무나 만나나 보라고 등 떠밀고, 혼자가 편하다는 친구에겐 허튼소리 말라며 면박까지 주는 오지랖을 부리며 살아왔다. 멀리 가지 않고도 한 사람이라는 우주를 탐험할 수 있고, 신세가 가난해도 마음 한가득 충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게 연애니까. 나 또한 이 젊은 날 딱 한 군데 시간을 쓸 수 있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연애를 선택할 테니까.


그래서 더욱더 충격이었다. 나의 세계를 넓혀준다고만 생각했던 연애가 나의 세상을 오히려 제한하는 울타리였을지도 모른다는 사고의 전환이. 연인의 말 한 마디에 오락가락하는 나를 보며 내 마음이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아득한 두려움을 맛봤다. 모든 순간을 연인과 함께 나누는 것에만 익숙해져 어느샌가 내 마음은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는 홀로 설 수 없는 게 되어버린 건 아닐까? 나라는 존재의 순수한 색은 무엇일까? 어떤 차림새로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는 모든 요소에 알게 모르게 스며있는 연인의 취향을 걷어내고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만 꽉꽉 채운 시간을 보내면 나는 무엇이 되어있을까? 스물여덟 여름, 설쌤과 연애 3년 차에 접어들던 때, 내 머릿속은 질문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 질문에 이르렀다. ‘…설쌤과 헤어져야 하나?’ 아니, 한낱 궁금증에 밀릴 정도로 사랑이 얕진 않았다. 그럼 설쌤과 헤어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연애하지 않는 상태가 존재할 수 있을까? 질량이 제로이면서 방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물질을 찾기만큼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럼 헤어지는 게 아니라 쉬어간다면 어떨까?’ 이름하여 연애 디톡스 기간을 갖는 거다. 몸의 독소를 빼기 위해 제한된 식사를 하는 사람처럼. 내게 스민 남자친구 의존증을 빼기 위해 잠깐만 헤어짐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정말 탁월하면서도 이기적인 발상이었다. 마치 사이가 틀어진 연인이 잠시 시간을 갖는 것 마냥 준이별에 가까운 이 제안을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니 힘들긴 힘들었다. 이런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사실만으로 설쌤이 서운해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우리 잠깐 연애를 쉬어보는 게 어때? 헤어지자는 게 아니야. 연애도 디톡스 기간을 가져보고 싶은 것뿐이야.”


결국 나는 말을 꺼내는 쪽을 선택하고 말았다. 설쌤이 토라질 수도 있지만, 그러는 편이 연애 디톡스를 겪어보지 않고 답답함 속에 앞으로의 연애를 견뎌내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웬걸, 설쌤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20대 후반을 꽤 오랫동안 솔로로 지냈던 설쌤은 그 시간이 지금 30대인 자신을 이루는 데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며 나에게도 그런 알찬 시간을 가져보길 적극 응원까지 했다. 그 대답에 서운하고 토라진 쪽은 오히려 나였다. 내가 먼저 꺼낸 제안이지만 저렇게까지 쿨할 일인가 싶어 살짝 황당했달까. 물론 티는 내지 않았다. 연애 디톡스라는 이 허무맹랑한 프로젝트를 실제로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두근두근 설렘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우린 두 달 뒤에 교토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해외에서 재회하면 더욱 극적일 것 같다는 약간의 허세였다) 아니, 연애 디톡스를 시작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두 달간 절대 연락하지 않기. 서로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서 SNS 팔로우도 끊기. 주변 사람들에게 헤어진 거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으니 아주 가까운 친구를 제외하곤 연애 디톡스를 알리지 않기로 했다. 시작하고 나서 당장 며칠은 이게 맞나 싶어 어정쩡하게 보냈다. 막상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할 사람이 사라지니 허한 마음이 컸다. 생전 연락도 안 하던 친구에게 대뜸 일상을 공유하는 것도 못 할 짓인 것 같아서 그때그때의 상태를 일기에 남기기 시작했다. 실험 보고서를 쓰듯이 그날 하루 무슨 일을 했는지, 내 마음 상태는 어땠는지 세세히 기록했다. 나중에 설쌤에게 일기를 보여주며, 같은 시기에 설쌤은 뭘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상상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평범하지만 새로운 날들이었다. 무언갈 혼자 하는 것 자체가 어렵진 않았다. 원래도 혼자 밥 잘 먹고, 혼자 쇼핑하고, 혼자 영화도 종종 보는 나였으니까. 다만, 날 따라다니며 바라보는 고정된 시선에서 벗어난 느낌이 어색할 따름이었다. 아무도 목격하지 않은 나의 행위는 저장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실시간 스트리밍만 되는 휘발성 콘텐츠 같았다. 누군가의 의견을 물어볼 수도, 들어볼 새도 없이 나의 순간들은 공기 중으로 흩어 사라지기만 했다. ‘맛있었다, 즐거웠다, 뜻깊었다’ 하는 나 홀로 감상평은 온전한 내 마음이라 좋았지만, 동시에 누군가와 나눌 수 없어서 씁쓸했다. 그럴수록 나는 기록에 더 매달렸다.


그러다 2주 정도 지났을까, 일기장을 주르륵 훑어봤다가 경악하고 말았다. 일기장엔 죄다 남자친구, 남자친구, 남자친구 얘기만 한가득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연애 디톡스를 하지 않을 때보다 설쌤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었잖아?’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설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추리로 시작해서 설쌤이 나를 많이 떠올리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마지막은 설쌤을 만나면 내가 얼마나 힘들고 보고 싶었는지를 말해줘야겠다는 몽글몽글한 다짐으로 끝나있었다. 제기랄, 내가 생각했던 연애로부터의 독립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나에게 집중하기는커녕 옆에 없는 설쌤 생각만 하고 있으니, 함께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완전 망한 것이다.


아직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지 않았지만, 규칙을 깨고 먼저 연락을 해볼까 하는 충동에 시달렸다. 주어진 시간 동안 나 스스로 집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속상하기도 했지만, 남자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한번 인지하고 나자 기다림의 시간을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번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이만큼 보고 싶은데, 남자친구는 오죽할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길로 당장 버스를 타고 남자친구의 작업실로 향했다. 규칙을 어기면 벌금을 내기로 한 사실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무슨 상관이랴, 지금 내가 당장 만나야겠는데! 나는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로 버스에 올랐다. 늦은 시간, 막차였다.


그리고 내가 마주한 것은 창밖으로 보이는 깜깜한 작업실이었다. 분명 남자친구가 있을 시간이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동태가 없었다. 그날 만나기로 한 것도 아니고 남자친구가 거기 꼭 있으란 법도 없었는데도 나는 마치 바람맞은 사람처럼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 그러다 불쑥 화가 났다. 나는 이렇게 보고 싶어서 이 늦은 시간에 달려 나왔는데, 남자친구는 왜 지금까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을까? 나만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는 말인가? 속상하긴 한데 그냥 가기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작업실 문틈으로 ‘다녀가요.’라는 쪽지를 남겼다. 차도 다 끊겨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마음 한 켠에서 무언가 푹 꺼져서 와르르 무너지는 걸 느꼈다. 자존심이었다.


“혹시 작업실에 왔었어요? 나 그때 저녁 약속 중이어서…”


다음날, 남자친구가 남긴 문자 메시지를 보고 엉엉 울고 말았다. 남자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에 헐떡대며 달려가던 그때 남자친구는 다른 친구를 만나 맘 편히 하하 호호 떠들어댔을 상상을 하니 너무 속상했다. 청승맞게 사랑 고백에 가까운 일기는 왜 썼는지, 이럴 거면 연애 디톡스 따위를 왜 하자고 했는지, 스스로 느끼기에도 참 지랄맞다 느끼며 펑펑 울었다. 그렇게 어이없게 연애 디톡스는 완전히 실패로 끝나버렸다. 약속한 시각보다 훠얼씬 일찍. 나의 일방적인 약속 파기로 인해.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계획보다 훨씬 빨리 나를 마주한 남자친구는 황당한 기색이 역력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면서 파격적인 제안을 할 때는 언제고 보고 싶다며 불쑥 일방적으로 찾아와놓고 못 본 게 서운해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운 나의 행태가 어이없었을 것이다. 그랬거나 말거나 나는 남자친구를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지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따질 건더기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어떻게 나보다 나를 안 보고 싶어 할 수 있어?” 아니다, 그건 좀 이상한데…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마음보다 나를 덜 좋아할 수 있어?” 음, 그게 따질 거리가 되나? 그렇게 그날은 왠지 잔뜩 화가 난 채로 씩씩거리기만 하다가 끝나버렸다.


연애 중에 싱글의 자아를 찾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스물여덟, 내 생애 첫 연애 디톡스 끝에 발견한 건 자립심이 아니라 남자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남자친구가 곁에 있건 말건 내 마음에서 생생히 살아서 무럭무럭 자라는 사랑.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랑은 온전히 나의 것이기만 해서 남자친구가 그 사랑의 크기에 맞먹는 사랑을 돌려줄 의무도, 그에 따른 감사를 표시할 필요도 없다는 걸 알았다. 내게 순수한 사랑의 마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었지만 대가를 바랄 수 없다는 사실이 왜 이리 절망적이고 자존심 상하던지. 아직은 그랬다. 사랑이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르길 바랐다. 나는 내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해 결심했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만큼만 나도 딱 그만큼만 사랑을 보여주겠다고. 나 자신을 위해 결심했지만, 왠지 뒷맛이 씁쓸했다. 아직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디톡스 _ 스물아홉, 2020년 봄


사람이 사람에게 권태를 느낄 수 있다는 잔인한 사실. 그 사실을 뼈 아프게 체감한 적 있다. 권태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이별까지 간 경험이 있어어일까?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와중에도 언제 올지 모르는 권태기에 대한 두려움이 늘 함께 했다. 지난 연애를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 한 쪽이 찌르르 미안함으로 쪼그라드는 걸 느낀다. 나와 달리 시사에 관심이 많던 친구였다. 내 앞에서 신나게 뉴스 토픽을 이야기하던 그 친구에게 재미없으니 그런 얘기는 그만 하라며 타박을 줬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 친구는 지금 훌륭한 시사교양 PD가 되었다고 한다, 쩝. 한 사람의 빛나는 장점마저 눈엣가시처럼 느끼게 하는 그놈의 권태로움, 내 생애 다시는 찾아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다행히 설쌤과 연애 4년 차에 접어들도록 권태기는 없었다. 다만 우린 각자 커리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던 터라 연락을 주고받을 틈도 없이 바빴을 뿐이다. 첫 연애디톡스를 끝낸 지 반년 정도 흐른 뒤였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이 주는 만큼의 사랑만 표현하리란 다짐을 강하게 한 상태였다. 설쌤이 먼저 연락 올 때까지 나도 연락을 취하지 않는 둥 의도적으로 관계에 연연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실은 설쌤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말이다. 우린 서로 깨어있는 시간도 맞지 않아서 내가 잠자리에 들 때쯤 그제야 잠에서 깬 설쌤과 한 두 마디 안부 인사를 나누는 게 그 날 하루 연락의 전부인 날도 종종 있었다. 그러려니 했다. 자존심은 자존심이고 너무 바빠 연애가 어찌 흘러가고 있는지 살펴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프로젝트가 겨우 끝나고 숨을 돌리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건조해질 대로 건조해진 우리의 관계였다. 서로가 어떤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모른 채, 아니,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수없이 많은 나날을 흘려보내고만 있었다. 우린 이제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는 걸까? 철렁- 마음이 내려앉았다. 어쩌면 우린 서로가 서로 없이도 살 수 있게 된 거 아닐까? 이대로 헤어져도 아무 상관 없는 거 아닐까? 이런 상황엔 어떻게 해야 가장 현명한 길로 나갈 수 있는 걸까? 누군가 시범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확실한 건 이런 연애, 이런 상황, 이런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 뿐. 닥쳐버린 연애의 향방은 어쨌거나 내 손에 달린 일이라는 엄정한 사실까지. 


설쌤이 바쁜 일에서 겨우 해방 돼 한숨 돌리자마자 난 그를 소환해 내 앞에 앉혀놨다. 말을 꺼내기 전, 혼자서 상상해봤다. 이 사람은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그런데 너무 야속하게도 나 없이 일도 열심히 하고 사람도 즐겁게 만나고 취미 생활도 알차게 하는, 그러니까 너무 잘 사는 설쌤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래도 물어보기로 했다. “설쌤은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갑작스러운 질문에 설쌤은 '갑자기 만나서는 얘가 왜 또 이러지?'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막상 질문을 하고보니 대답을 듣기가 싫어져 급하게 말의 순서를 채어갔다. “난 사실 설쌤이 나 없이 잘사는 모습이 너무 상상이 잘 돼. 요즘 우리 모습을 보면 더더욱. 그래서 말이야, 우리 연애디톡스 딱 한 달만 더 해볼래?"


그렇게 갑작스럽게 우리의 두 번째 연애디톡스가 시작됐다. 이번 디톡스의 다른 점은 내가 설쌤에게 숙제를 내줬다는 점이다. 나는 설쌤에게 내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을지 체험해 보고, 그 결론이 내가 없어도 괜찮다는 쪽으로 난다면 진지하게 이별을 고려해보자는 말을 더했다. 상당히 비관적이고 냉혹한 요청이었지만 설쌤도 우리 둘의 관계가 전과 같지 않게 무미건조해졌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며 숙제를 가미한 두 번째 연애디톡스의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답했다. 가만히 놔두면 아무 일 없을 관계를 자꾸만 의심하고 들쑤셔보는 나 자신이 고약하다 느껴졌지만, 결국 이 관계를 건강하게 이끌어가기 위한 불가피한 노력이었다. 혼자이기 싫어서 하는 연애는 싫었다. 계속하던 거라 하는 연애는 더욱더 싫었다. 우리 관계엔 분명히 변화가 필요했다.


남자친구, 남자친구, 남자친구 생각만 가득하던 첫 연애디톡스 때와는 다르게 이상하리만치 설쌤 생각이 나지 않는 나날을 보냈다.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쓰고 생각도 많이 했다. 하루하루가 너무 알차서 이대로만 시간을 보내면 더 괜찮은 내가 되어있을 거란 기대감까지 차올랐다. 첫 연애디톡스 때 경험해보고 싶은 게 바로 이런 기분 아니었을까. ‘그 책에 그 문장 괜찮았지? 오늘 하늘 참 예뻤지? 그때 그 말은 참 잘했어.’ 나는 나를 향해 질문 했다. 자연스럽게 내 생각과 기분에 민감해졌다. 사랑하는 이건 존경하는 이건 그 누구의 이해와 인정도 필요 없는 상태가 편하고 좋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내 안에 내 것이 있다는 사실이. 나 혼자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튼튼하게 맘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 어떤 바람이 불어도 전처럼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섰다. 그런 동시에 어쩌면 나 스스로가 남자친구 없이 잘 살 수 있기에 우린 헤어지는 결론에 이르를 수도 있다는 슬픈 생각도 내 뒤꽁무니를 졸졸 좇아오고 있었다.


“아니, 왜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지!?”


하필 연락하지 않기로 약속한 한달 중 열흘 정도가 남은 시점에서 나는 설쌤의 친구의 SNS를 통해 우연히 다리를 다친 채 절뚝이는 설쌤을 보고 말았다. 이미 다친 지 시간이 꽤 흐른 모양이었다. ‘설쌤에겐 내가 필요해.’ 영상을 보자마자 맥락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친 다리를 낫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너무 안쓰러웠다. 아플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게 미안했다. 황당함에 벙쪄 있기를 아주 잠깐, 이내 마음속에 단단한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설쌤은 내가 제일 아껴줄 수 있어. 그리고 그는 이 마음을 누릴 자격이 있어.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야. 이건 내 마음이고 이 마음을 표현하는 건 내 자유야.’ 그러곤 바로 설쌤에게 연락했다. “무슨 일이야? 괜찮아?” 그렇게 두 번째 연애디톡스도 약속 기간 훨씬 전에 끝나고 말았다. 이번에도 어이없지만, 나의 일방적인 연락으로 인해 말이다.


멀리서 절뚝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설쌤이 보였다. 다쳐서 그런지 몰라도 간만에 본 설쌤은 조금 주눅이 든 것 같기도 하고 억울해 보이기도 하고 아무튼 뭔가 총체적으로 안쓰러움을 자아내는 인상이 되어 있었다. 본래 성격답지 않게 설쌤은 내 앞에 자리를 잡자마자 그간 정리한 생각을 조곤조곤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성실하게 숙제를 해온 학생이 발표하듯. 하루이틀 고민한 것 같지 않은 진지한 태도에 맘이 울렁거렸다. 아주 약한 불에 물이 끓듯이 잔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설쌤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결국 실제 마음의 크기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의 크기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 본인도 표현의 빈도와 강도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나 또한 애정의 크기를 의심하지 않는 노력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내 생각도 같았다. 그런 이야기를 직접 해준 설쌤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제법 행복한 재회였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게 다시 시작된 기분이었다. 처음 연애하는 것처럼 설레고 신났는데, 따지고 보면 처음이 맞았다. 그렇게 주체적으로 사랑을 할 수 있게 된 건 처음이었으니까. 연인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서 하는 연애가 아니라, 내가 줄 사랑이 있어서 그 사랑을 표현하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운 연애는 처음이었으니까. 내 머릿속에 상주하던 마음의 계산기는 어느새 폭파되어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누가 더 주고 누가 덜 줬나 계산하지 않고 그냥 함께 하는 연애. 생각이 줄고 마음은 늘어났다. 그때부터였다.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해도 권태롭지 않을 자신감이 생긴 건. 만남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일지 몰라도 관계는 끊임없이 만들어나가는 작업물이다. 우린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이런 과정으로 태어나게 된 거다. 설쌤이 나에게 먼저 말했다가 둘 사이의 금기어가 됐고, 그 사이 두 번의 연애디톡스를 거쳐 이젠 내가 직접 설쌤에게 하고 싶은 그 말. 함께 살아보지 않겠냐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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