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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버 Jan 19. 2022

낭만과 금기 사이, 같이 살아보자는 말

갈월동 반달집 비혼 동거 기록

설쌤을 처음 만난 건 펜드로잉 주말반 수업에서 였다. 나는 수강생이었고 설쌤은 그 수업의 강사였다. ('설씨 성을 가진 선생님'을 줄여서 '설쌤'이라고 부르는 거 눈치 채셨나요?) 수업이 끝나고도 그림에 관해 이것저것 질문하다가 종종 대화하는 사이가 되었고 여차저차 하다보니 자주 만나게 되었고 이래저래 남녀 사이 피어나는 감정으로 인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사귀게 됐다. 여섯살이라는 나이 차이와 프리랜서와 직장인이라는 직업적인 차이도 있었지만 취향이 비슷하고 성향도 잘 맞아 몇 년 사이 우린 제법 잘어울리는 커플이 되어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짝짜꿍이 잘맞는고 하니, 우린 서로가 서로를 아무리 좋아해도 결국 마음속 1순위는 자기 자신이라는 걸 이해하고 인정하는 큰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가치관이 그렇다보니 사회가 말하는 결혼적령기가 되었음에도 딱히 결혼이라는 주제가 우리 입에 오를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해서 비혼주의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우리 같이 살아보면 어때? 자버랑 내가 돈을 합치면 가능할 것 같아!


스물여덟 봄, 설쌤과 만난지 3년 차에 접어들던 때였다. 살면서 언젠가는 꼭 듣고 싶은 말이었다. 같이 살자는 말. 설쌤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마자 나는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안타깝게도 기쁨이 아닌 절망의 눈물이었다. 그건 프러포즈 급으로 내 생애 가장 로맨틱하고 감동적인 멘트여야 했다. 하지만 우린 동네 스타벅스에서 추레한 차림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설쌤의 말투는 마치 ‘기프티콘 받은 거 있는데 그걸로 계산할까?’ 라는 제안과 다를 바 없이 무난하고 평범했다. 그다지 특별한 고백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애매하게 다짜고짜 같이 살자니? 나를 진지하게 결혼 상대로 생각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냥 하우스메이트가 필요하다는 뜻인가? 아무래도 돈 얘기를 꺼낸 걸로 봐서 후자가 맞는듯 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로망을 설쌤이 진작 알았을 리 만무하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마음은 이미 불 번진 가을 들판처럼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망가지고 있었다.

“설쌤한텐 내가 그냥 돈 보태는 사람이야?”


버럭. 듣고 싶은 말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맞닥뜨렸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잔뜩 비뚤어져서는 가시 돋친 말을 쏘아붙였다. 당황한 설쌤은 상황을 수습하려 애썼지만 이미 칼부림 태세로 돌입한 내 입을 도무지 제어할 수가 없었다. 언니와의 자취를 포함해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던 나였다. 그래서 함께 살아보지 않겠냐는 말은 내게 너무너무 큰 의미가 담겨있었다. 고통을 나누고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결심 없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함께 살아보자는 제안은 이 세상에서 가장 순도 높고 깊이 있는 사랑 고백과도 같았다. 언젠가 그 말을 소중한 사람에게 정성스러운 고백으로 듣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데 하필, 그날, 그렇게, 예고도 없이 그 말을 들어버렸고! 마침 뒤에 바로 따라붙은 ‘돈’이라는 단어 때문에 내 마음은 처참해졌다.


머리로는 알았다. 설쌤에게 같이 살아보면 어떻냐는 말은 그렇게까지나 중대한 고백이 아니라는 걸. 서울살이 하는 누구나 그렇듯 주거 고민 끝에 떠올린 한 가지 묘안이었을 것이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인 설쌤은 그 당시 따로 거처 없이 작업실 한 켠에 마련된 잠자리에서 하루하루 생활을 때우고 있었다. 작업실 근처에서 꽤 오랫동안 집을 탐색하고 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예산 안에서 마땅한 곳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고, 예산의 파이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나와 함께 사는 방법까지도 떠올린 모양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머리로는 모든 상황을 이해는 하고 있었다. 그저 '아' 다르고 '어' 다른 말하기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한 설쌤의 솔직담백함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지!


“같이 살자는 말은... 그렇게 쉽게 하는 게 아니잖아... 난 일생일대의 프로포즈로 듣고 싶은 말이었어."


온갖 비난으로 설쌤을 조질 대로 조져놓고서야 분이 풀린 나는 그제야 고백했다.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연인에게 내 입으로 어떤 프러포즈 로망을 갖고 있는 지를 직접 설명해야 하는 상황. 그건 나라는 어려운 문제를 두고 긴긴 고생 끝에야 겨우 풀 수 있는 달콤한 비밀 숙제였는데 말이다! 이유도 모른 채 얻어맞은 사람처럼 어안이 벙벙해 하는 설쌤을 방치해둘 수 없어 화를 낸 이유를 설명하는 내 마음은 조각조각 나있었다. 설명을 들은 설쌤의 얼굴에도 아차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조금은 억울한 듯 한숨을 한번 내쉬고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현실적인 이유로 같이 살자고 한 건 맞지만, 누군가와 같이 살아봐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든 건 자버가 처음이었어.”

'콕' 하고 설쌤의 한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같이 살아봐도 좋겠단 생각이 든 건 내가 처음이었다는 설쌤의 말이 콕 박혔다. 어디에 자리잡고 무엇으로 자라날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씨앗처럼. 그 씨앗을 당장에라도 꽃으로 틔워 설쌤에게 꺾어다 바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삑- 지각입니다!" 이미 때는 지나가고 말았다. 저 말을 제일 먼저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각생이 어떻게든 제 시간 안에 출석하려고 담을 넘듯,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설쌤의 따뜻한 해명을 난 흥! 하고 바로 걷어차 버렸다. 변명처럼 제일 마지막에 덧붙일 건 또 뭐람! 왜 쓸데없이 진솔한 거지? 온갖 원망과 함께 그날의 대화는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 고백 아닌 고백을 들은 후로 싱숭생숭해진 마음은 시시각각 나를 옥죄어왔다. 누군가의 한마디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나락과 천당을 오갔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사랑은 참 힘들다. 서로 다른 우리 둘이 섞여 하나가 되고 싶기도 하지만 내가 나만의 색을 잃는 일은 너무나도 두려우니까. 연애를 하루이틀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왜이렇게 단단하지 못할까? 그러고보니 하루이틀이 아니라 이십대 내내 연애중이었다는 사실이 문득 거북해졌다. 인생의 커다란 줄기를 뻗치기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에 항상 내 옆에 연인이라는 큰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그 낯섦의 중심에는 낭창하게 멍만 때리다 중요한 이벤트를 놓치고선 '아차!' 탄성밖에 지를 수 없는 불쾌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난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판단을 내리지도, 감정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있는 건 아닐까하는 불쾌감. 마음 어귀에서 윙- 윙- 맴돌던 목소리 하나가 갑자기 탁! 하고 옳은 주파수를 만나 크고 선명한 소리를 울려 퍼트렸다.


나 어쩌면 지금 당장 연애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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