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월동 반달집 비혼 동거 기록
개인적인 불행 하나가 있다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살 맞대고 살면서 행복한 삶을 경영해나가는 좋은 샘플을 못 보고 자랐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가 결혼에 대한 로망이 없는 편이다. 음,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사랑하는 사람과 멀끔히 잘 차려입고 준비된 시간에 좋은 모습만 보며 지내기도 바쁜데, 굳이 치부가 다 드러나는 맨몸을 부대끼며 함께 지내야 하는 이유를. 그런데도 결혼을 하고 싶어지는 때가 온다면 그건 아이를 갖고 싶다거나 집을 사야한다거나 하는 실질적인 이슈가 생겼을 때 아닐까? 막연한 공상만 맴돌았다.
결혼에 대한 철학이 그러하니 연인과의 동거에 대한 입장은 더욱 단호했다. 동거를 연애의 연장선으로 보자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더 오랜 시간 붙어있고 싶어 하는 철부지의 낭만으로만 생각됐고, 동거를 결혼의 전 단계로 보자면, 같이 살기까지 하면서 검열하고 싶은 영역이 있다면 결혼을 진행하기에 너무 기준이 깐깐한 것 아닌가하는 입장이었다. 정리하자면, 낭만적으로 보나 현실적으로 보나 연인과의 동거는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혼자가 편한 나는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종종 외로워진다해도 그건 연인이 전담해서 해결해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독립한지는 꽤 됐지만 생각해보니 혼자 살아본 적은 없었다. 대학 기숙사와 셰어하우스에는 룸메이트가 있었고 자취는 항상 언니와 함께 했다. 월세라는 피치 못할 요소를 n분의 1 해줄 n들이 항상 존재했다는 말이다. 애초에 함께 사는 일에 기대보단 걱정이 앞서는 타입이라 트러블만 없다면 타인과의 동거에 만족하는 편이었고, 적당히 사교적이고 적당히 개인적인 성격 덕에 누군가와 섞여 사는 일 자체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편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빡빡한 바깥세상에서 돌아와 쉴 곳이 있어 다행이었지만, 그곳에서 나를 반길 사람 누군가가 있다고 해서 플러스 알파가 되진 않는 (오히려 아무도 없을 때 왠지 두근두근 더욱 설렜던) 정도랄까.
그래서 더욱더 낯설었다. 어느 순간 설쌤과 함께 살아보면 어떨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 자신이. 사실 조금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어차피 나 혼자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서 동거 메이트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그게 설쌤이어도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고만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다른 과 학생이 아닌, 얼굴만 보면 지지고 볶느라 시간 다 가는 혈연이 아닌, 가끔 거실에서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인사하는 하우스메이트가 아닌,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사는 삶. 성향도 취향도 비슷한 사람과 한 공간에서 만들어나가는 시너지는 어떤 모양일까? 혼자 처박혀 있어야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릴 에너지가 생기는 나지만, 왠지 설쌤이 곁에 있으면 그런 작업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없는 기대감이 솟구쳤다. 연애와 생활은 다르다고, 사랑을 나누기 좋은 사람과 삶을 나누기 좋은 사람은 따로 있다고 자신을 다그쳐도 마음은 자꾸 한 쪽으로 기울고만 있었다.
지지난해 나에게 먼저 같이 살아보면 어떻냐 제안했던 설쌤의 말이 계기였을까? 어쩌면 그때부터 찬찬히 설쌤을 동거 대상으로 적합한 인물인지 내심 계산하고 따져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뿐만 아니라 마침 새로운 직장 근처로 집을 옮기고 싶기도 했고, 언니와의 자취도 끝내고 싶기도 했고, 총체적으로 내 삶에 큰 변화가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아니면 그냥 스물아홉이라는 기묘한 나이에 취해 획 정신이 나가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확실한 건, 설쌤과 24시간 내내 함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설쌤이란 사람은 24시간 내내 함께해도 거슬리지 않기에 동거를 꿈꾸게 됐다는 점이다.
“우리 같이 살아봐도 좋을 것 같은데, 어때?”
몇 달을 벼르고 벼르온 말을 설쌤의 의식 속에 훅 냅다 꽂아버렸다. 대수롭지 않은 일인양 제법 건조하고 조심스럽게. 설쌤은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그건 같이 사는 일에 대한 내 사고의 전환이 너무나 급격했기 때문에 온 당황스러움이었다. 다행히 설쌤 또한 같이 사는 일에 대해선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진지하게 함께 살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집부터 찾아보자고, 우린 설렘 가득한 약속들을 나눴다. 막상 말을 꺼내고 나니 마음에 확신이 솟으며 몽글몽글하게 막연하기만 했던 앞날이 조금은 딱딱하고 구체적인 문제가 되어 손안에 만져지기 시작했다.
1. 둘 다 돈을 버니까 월세 나눠 낼 걱정은 없고
2. 둘 다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방해받을 일 없고
3. 둘 다 보고 배우고 즐기고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니까 함께 시간 보내기 좋고
4. 둘 다 당장 결혼할 생각 없으니 스트레스 받을 일 없고
5.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역시 미친 생각 아닐까?’
그렇게 뻔뻔하게 제안해놓고 밤이 되니 마음이 또 싱숭생숭해져 버렸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대뜸 설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같이 살게 됐을 때 서로 부딪힐 만한 일들을 미리 정리해서 리스트로 만들고, 그럴 때마다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지 규칙부터 정하자.” 진짜로 동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불안감에 심장이 벌렁거려 해결책을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쌤과 울고불고 싸우다가 길거리에 내쳐지는 수백 가지 시나리오가 머리에 펼쳐졌다. 찔끔, 상상만 해도 막막하고 서럽고 무서웠다. 바로 메모장을 켜서 떠오르는 대로 걱정되는 상황들을 적기 시작했다. 1번, 청소를 미루다 싸우게 된 경우엔? 2번, 둘 중 한명이 갑자기 결혼 생각이 생겼을 땐? 3번, 4번, 5번...
“자버야, 이건 직접 살아보고 부딪쳐 봐야 알 수 있는 문제들 아닐까?”
불안감에 계획 세우기 방어기제가 발동한 나를 말린 건 평소에 잘 듣지 못한 설쌤의 단호한 한 마디였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결코 겪고 싶진 않은 일이며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일. 바로 '그때그때 부딪쳐가며 해결하는 일'이다. 난 대비되지 않은 상황을 맞닦트리는 일에 매우 취약하다. 출근길에도 1박 2일 외박 가능할 정도의 짐을 가방에 챙겨 가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 동거라는 이렇게 큰 결정을 아무런 대책 없이 덜컥 행할 수 있을까? 한껏 들떴던 기대감과 대비되는 어둡고 무거운 그림자가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설쌤, 그럼 우리 일단 좋은 집부터 찾아보는 게 어때? 살고 싶은 집을 찾으면 그때 다시 동거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감당 못할 너무 큰 두려움을 감수하지 말 것. 옳은 방향으로 가도 불안한 발걸음으로 내디디면 모래알에도 발이 삘 수 있으니까. 다소 한 발짝 물러서는 나의 태도에 설쌤은 답답하고 실망스러웠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니 어쩔 수 없었다. 역시 낭만은 달콤하지만, 현실의 쓴맛을 덮을 정도는 아니다. 일단 집부터 찾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나저나 이 지옥 같은 서울에서 나의 불안감까지 잠식시킬 정도로 좋은 집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