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자버 Sep 05. 2021

100년 된 적산가옥과의 밀당

갈월동 반달집 비혼 동거 기록

갈월동, 서울 살면서도 처음 가보는 동네였다. 이름 조차 몰랐다는  민망할만큼 설쌤 작업실과  붙어있는 동네였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숙대입구역 간판에도 ‘갈월이라 떡하니 적혀 있었다. 이거 어제 급하게 덧댄 간판 아냐? 하며 나의 무심함을 애써 의심으로 감춘 채 지상으로 올라갔다. 서울역 방향으로 크고 낡은 건물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홍대 근처에서만 살아버릇해서 그런가? 지나가다 심심찮게 들를  있는 만만한  같은  없다는 게 좀 아쉬웠다. 건물 외벽마다 큼직하게 기업명이 새겨져 있었는데  멀리 오백미터 밖에서도 보이고, 빠르게 달리는 운전자의 무신경한 눈에도 들게끔 만들어진  같았다. 사람 보라고 만들어놓은 사이즈가 아닌 간판들 아래에서 우리는 의도치 않은 소외감에 젖어  보러 가는 걸음을 바쁘게 재촉했다.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한번 꺾어 오르막길을 오르니 곧바로 주택가가 나왔다. 조금 아까 걸어오던 큰길과는 다르게 소박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동네는 2층짜리 주택들과 높아봤자 아담한 빌라들이 모여있어 시야가  트여있었다. 덕분에 오르막길 끝으로 남산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간에 서있는 남산타워는 마치 나만 아는 친밀한 사이 같아 오래도록 눈을 떼기 어려웠다. 다시 시야를 좁혀 주변을 둘러보니 주택 제각기 뽐내는 개성들이 대단하는  느껴졌다. 담장 너머 남의 집이라고만 생각했던  주택   곳에 살게  수도 있다니,  발칙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가 둘러볼 집이  집일까,  집일까 설렌 마음으로 골목을 걷다 보니 우릴 향해 인사 하는 부동산 중개인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파란 대문이 있었고 그 뒤로는 하얀 벽과 빨간 지붕이 빼꼼 내다보였다.


바로 여기구나!


덜컹, 대문이 열리자 새하얀 2층집 떡하니 서있었다. 대문 밖에서 바라본 마당은 무척 크게 느껴졌다. 하얀 벽에 반사된 빛에 반짝거리 정원은 눈이 부셨다. 내가 여길 들어가도 되나? 대사 한 문장도 외우지 못한 채 무대에 오를 사람처럼 난 우물쭈물 쭈뼛대고만 있었다. 그런 마음을 모르는지 중개인은 성큼 마당으로 들어섰고 나도 냉큼 그 뒤를 따랐다. 세를 놓은  2층이었고 1층에는 주인 할머니가 홀로 살고 계셨다. 무려 31년 생의 주인 할머니는 나이에 비해 정정하고 에너지 넘치는 분이라며 중개인은 마치 집에 달린 좋은 옵션을 이야기 하듯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아직 주인 할머니를 뵌 적은 없지만 잡초 없이 깔끔하게 관리된 정원에서 할머니의 넘치는 기강을 살짝 엿볼 수는 있었다.


 


작은 몸으로 부지런히 꽃을 가꾸는 90대 노인을 상상하며 정원 반대편으로 돌아서자, 2층으로 이어지는 철제 계단이 아슬아슬한 각도로 서있었다. 아무렴 그럼 그렇지, 이 정도 위험 감수는 세 들어 사는 사람의 클리셰 이고말고. 우린 가파른 철제 계단을 삐걱삐걱 오르며 집 내부 사정만큼만은 좋기를 바랐다. 아니나다를까 일체형이었던 주택을 다세대로 분리하기 위해 억지로 만들었단 사실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빈약한 미닫이 문이 계단 끝에서 우릴 맞이하고 있었다. 또 한번 아무렴 그럼 그렇지하며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너덜너덜한 문과는 비교도 안 되게 견고하고 중후한 나무 프레임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요즘 유행하는 나무 패널이나 나뭇결 시트지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나무 틀이었다. 한 세기를 겪어낸 나무가 주는 진중한 무게감이 빈 집의 쓸쓸함을 압도했다. 주제 넘게도 이 집이 겪은 세월에 내 어수룩한 손길을 더해 광내고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구쳤다.


중개인은 이 집이 지어진 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 적산가옥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틀과 창문의 가로세로 길이며, 천장의 높이 등 모든 요소가 최신의 표준규격 따위를 따를까 보냐 하고 뻔뻔하게 주장하는 듯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문이란 문은 죄다 가로 길이가 필요 이상으로 길고 세로로는 짧아서 딱 보기에 뚱뚱 납작했는데, 이는 지금보다 평균신장이 훨씬 작았을 100년 전 거주자의 생김새를 짐작케 했다.  그리고 층고가 높은 복도에 서 있을 때의 느낌과 천장이 가장 낮은 작은 방에 서 있을 때의 느낌이 너무 달라서 이게 정말 한 집에서 다 볼 수 있는 풍경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창문 유리에 금이라도 가면 부품 구하는 데 제법 고생하겠다 싶어 골치가 조금 아프려는 순간, 거실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부동산 앱에서 나를 사로잡은 썸네일 속 바로 그 창문이었다.


남산 타워가 보이는 방향에서의 거실 창가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상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오르막에서 얼핏 보이던 남산타워가 뻥 뚫린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창문 프레임 안에 안정감 있게 들어앉아 있었다. 그 아래로는 해방촌 언덕이 오돌토돌 선을 만들며 창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바로 코앞에는 갈월동 동네 전경이 펼쳐졌다. 밖에서 볼 땐 으리으리하던 주택들도 2층에서 내려다보니 정겨웠다. 전에 가져보지 못한 '이웃'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곳. 꿈에 그리던 창문 뷰가 내 눈 바로 앞에 당도한 순간이었다. 야경은 또 얼마나 예쁠 것이며, 아침 볕은 얼마나 따뜻할까. 나는 이 창문이 이 집에서 살 것이나 말 것이냐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거란 걸 단박에 알았다. 중개인이 재촉하는 눈치에 못이겨 겨우 창가를 벗어나 복도를 따라 집의 안쪽으로 발걸음으로 옮겼다.


그리고 집의 끄트머리에 이르른 순간 나의 기대감은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고풍스러운 나무 프레임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허술한 플라스틱 문짝 하나가 덜렁거리고 있었는데, 중개인이 그쪽을 가리키며 화장실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좀전에 봤던 거실 창문이 기대감을 잔뜩 부풀려놓은 탓에 초라한 문짝에서 오는 실망감은 배로 큰 충격을 선사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문을 밀자 딸칵하고 경박한 자석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플라스틱 문짝이 힘없이 열렸다. 제대로 된 잠금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을뿐더러 소리, 냄새, 습기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막지 못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 문 뒤에 가려진 협소한 화장실의 상태는 말할 것도 없이 별로였다. 특히 변기와 샤워기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게 최악이었다. 매일 아침 이곳에서 샤워하고 출근하는 내 모습을 상상만 해도 눈물이 핑 돌 것 같이 서러워졌다. 아니지, 이건 아니지! 나는 꿈의 창문 뷰 같은 건 깡그리 잊은 채 중개인에게 생각을 좀 더 해보고 연락해주겠다고 말한 뒤 성큼성큼 집에서 빠져나왔다.





“설쌤, 오늘 좀 더 생각해보고 내일 답해줄게요.”

복잡한 머리를 이고 숙대입구역에서 전철을 탔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화장실이 떠올라 얼굴을 잔뜩 찌푸리게 됐다. 아무리 거실 창문이 예쁘면 뭐하나, 그 화장실에서 하루를 시작하면 매일매일이 괴로울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 집에 도착해서도, 자려고 침대에 누워도 화장실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남산이 보이는 창가에서 행복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그림 위로 그 너덜너덜한 화장실 문 잠금장치가 힘없이 '딸칵'하고 열리는 소리가 오버랩되면서 기분이 한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놈의 화장실 때문에 그 집에서 사는 건 무리라는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이 낭만만 쫓으며 살 순 없지 않은가! 예쁜 창문 뷰와 나무 프레임에 현혹돼선 안 될 일이었다. 내일 일어나자마자 설쌤에게 나의 결정을 알려야겠다고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웬걸, 다짐과는 다르게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거실 창가에 앉아 밖을 감상하며 설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내 모습이 떠오르는 게 아니겠는가. 야경은 또 얼마나 예쁠까, 아침 볕은 얼마나 따뜻할까…. 낮에 하던 상상 속 풍경이 자동으로 펼쳐졌고 난 속도 없이 배시시 웃으며 기분 좋게 잠들었다.


그렇게 전날 밤 창문을 떠올리며 두근거렸던 기억이 민망할 만큼 선명해서 차마 화장실 때문에 집을 포기하겠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 집을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강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정말 단순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내놓은 타협안은 바로 이것이었다. ‘코딱지만 한 화장실 크기는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놈의 덜렁거리는 화장실 문짝 정도는 교체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걱정과 로망을 적절히 짬뽕해서 내린 결심, 화장실 문만 교체해주면 당장 계약을 진행하겠다는 의견을 냉큼 설쌤에게 전달했다. 그 커다란 2층 집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부속품 중에 겨우 문짝 하난데, 그 정도도 못 바꿔주겠어? 하는 무대뽀 심보도 좀 섞여 있었다. 아직 집주인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나 홀로 제대로 된 문이 달린 화장실을 상상하며 또 기분 좋은 상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설쌤으로부터 답변이 왔다.


자버야, 화장실 문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계약 안 해도 상관없대….

뭐라고? 예상치 못한 쿨한 거절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문 하나 때문에 계약을 안 해도 상관없다고? 알고 보니 전에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이 화장실에 물난리를 일으킨 적이 있었고, 그래 봬도 그 허름한 문짝이 물난리를 막기 위해 세심히 디자인을 고안해낸 거라 다른 문짝으로 교체할 수가 없다는 게 주인 할머니의 의견이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가 졌다는 걸 깨달았다. 주인 할머니와의 밀고 당기기에서 나는 완전히 패배했다.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답을 줄 정도면 당장 한 두 푼이 아쉬워서 집을 내놓으신 게 아니겠단 생각도 들었다. 사람 마음이란 참 이상하고 기묘하다. 머리가 헤까닥 뒤집히는 느낌이 들더니만 그게 딱 180도였을까? 오히려 주인 할머니와 집에 대한 신뢰도가 확 올라가면서 더더욱 이 집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직 다 알아보진 못했지만, 분명히 내가 발견하지 못한 매력이 많은 집일 거라는 확신이 섰달까. 설쌤에게 바로 답했다.


설쌤, 우리 당장 그 집 계약하자.

그리고 그날은 몰랐다. 내가 맛본 건 할머니의 카리스마의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