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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버 Apr 23. 2022

옆집 담 넘어 풍겨오는 된장찌개 냄새가 슬퍼라

갈월동 반달집 비혼 동거 기록 

내가 된장찌개의 평범함을 눈치챈  초등학교에 들어가 급식을 먹으면서 부터다. 애들이 된장찌개 앞에서 코를 막고 먹기 싫어하는 모습 내색은 못했지만 속으로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귀한 음식을! 나도 짐짓 ‘자주 봐서 질리네’ 하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된장찌개를 떠먹었지만, 된장찌개를 퍼먹는 밭은 숟가락질에는 그 반가움이 다 드러났을 것이다. 그건 다 우리집이 된장찌개를 많이 먹지 않았던 탓이다. 엄마가 된장 끓이는 솜씨가 없어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곰국이나 카레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찌개류를 꺼렸던 탓일까? 우리집 밥상엔 된장찌개가 자주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도 종종 백반집에서 된장찌개를 시켜먹던 걸 떠올리면, 엄마가 된장찌개를 영 싫어한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가끔 고깃집에서 곁들여 나온 된장찌개를 한 술, 두 술 떠먹으면 어찌나 감질나고 맛있던지, 워낙 드물게 먹다 보니 된장찌개는 정말이지 귀하고 귀한 음식인줄로만 알았다.


그 시절 나는 늘 느즈막히 하교했는데 맞벌이하는 여느 이 그렇듯, 일찍 기어들어가봤자 반길 사람이 없다는  알았기 때문이다. 도서관 책을 붙잡든, 운동장에서 친구 가랑이를 붙잡든 최대한 늦게까지 시간을 떼우다 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러다보면 저녁 식사가 한창일  골목길을 지나가게 되는데, 하필 그때 집집마다 담을 너머 찌개 냄새가 풍겨오곤 했다. 따뜻하고 노란 남의  조명 빛깔은 고개를 돌려 하면 그만이었지만, 적극적으로 코를 찾아 파고드는 밥 짓는 냄새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된장찌개 냄새 유난했다. 그 꾸릿한 된장찌개 냄새는 허기진 빈 속보다 깜깜하게 비어있을 우리집을 연상시킴으로써 나를 자극했다. 쪼르륵 쪼르륵, 자꾸만 쪼그라드는 건 주린 위장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서러운 냄새가 나의 세포까지 침투해 평생 씻기지 않는 생채기로 남게 되리란  나는 실시간으로 예감하며 그 골목길을 지나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냄새는 남의   넘어 풍겨오는 된장찌개 냄새란  알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아직도 가끔  먹으라고 차린  아닌 된장찌개 냄새를 맡으면 속이 주려오고  끝이 찡하다.


어른이 되어서  번인가 된장찌개를 끓여보려고 시도해본  다. 하지만 매번 실패로 끝났. 우습지만 내가 끓인 된장찌개에선  냄새가 난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그래서 나는 그냥 된장찌개는 레시피로 끓이는 음식이 아니라고 믿게 됐다. 된장찌개는 먹어본 기억으로 끓이는 것이라고, 누군가 정성스레 챙겨준 오래된 장맛으로 끓이는 것이라고 그렇게 이해하게 됐. 물건이든 재능이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에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게 내 태생적인 장점이라면 장점인지라 된장찌개를 끓여보려던 의욕 또한 쉽게 사라져버렸다. 더불어 요리를 해야겠다는 마음까지 싸그리 몽땅 사라진 건 흠이라면 흠이랄까?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가진 다른 것들을 꼭 붙잡고 아껴줄 시간만 해도 부족했으니까.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사랑도 하고, 다행히 내 곁엔 즐겁고 소중한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최근, 야근을 하고 늦은 귀가길에 난 어떤 생경한 풍경을 목격하곤 우두커니 섰다. 갈월집 대문을 세 걸음 정도 남겨놓은 거리였다. 어릴 때 담 넘어 쳐다보던 노랗고 따뜻한 조명이 2층집 창문으로부터 은은히 빛나고 있는 풍경이었다. 사람이 뎁혀놓은 따뜻한 온기가 뿜어져나오는 곳.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 바로 우리집이었다. 내가 감히 저 따뜻함을 몽땅 누려도 되는 것일까. 한번도 내것이라고 생각한 적 없는 과분한 풍경 앞에서 나는 주춤거렸다. 왠지 저 풍경에 뛰어들면 누군가 버럭 화를 내며 나를 나무라고 내쫓을 것 같은 느낌에 뒤돌아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도 평범할 수 있는 걸까. 저기에 내 둥지를 틀어도 되는 걸까. 감상에 젖은 것도 잠시, 나는 그 행복한 풍경에 홀딱 젖고 싶어져서 냉큼 문을 따고 집으로 들어갔다.


하루종일 집에서 일을 한듯 부스스한 행색의 설쌤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달아날 것 같은 아슬아슬한 행복을 꽉 붙잡는 심정으로 설쌤을 끌어안았다. 영문 모른 채 약간은 벙쪄있는 설쌤의 반응이 좋았다. 이 모든 걸 꽉 붙잡고 버틸 수 있게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내 것을 빼앗지 못하게, 누군가 침범해오면 버럭 호통 칠 수 있게,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와 쉴 수 있는 곳이 나의 품이 될 수 있게. 그렇게 맘 속으로 상상만 해도 세포에 새겨진 누린 된장 냄새를 싹 씻겨나가는 듯 했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된장찌개를 끓여봐야겠다. 어쩌면 나도 된장찌개를 끓이며 사는 삶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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