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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버 May 28. 2022

맥시멀리스트 두 사람이 살면 거실은 이런 모양이 된다.

갈월동 반달집 비혼 동거 기록


거실 모서리에 앉아서 글을 쓸 때면 울창한 사물의 정글에 포근히 둘러싸인 기분이 든다.

이곳은 정글, 두 마리의 짐승이 살고있다. 한 마리는 의미가 담긴 것들에 집착한다. 그것이 낙서든, 메모든, 로고 박힌 봉투든, 빈티지 그릇이든 무엇이든 본인의 마음을 후드려 치고 지나간 것이라면 따지지 않고 죄다 모은다. 그것들 중에서도 특히 더 의미있는 것들은 자주 볼 수 있도록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하는 습성이 있다. 또 다른 한 마리는 감탄사가 나오는 비주얼에 쉽게 혹한다. 그 대상은 귀여움, 엉뚱함, 유쾌함, 따뜻함 등 넓은 감각의 스펙트럼에 걸쳐 분포한다. 이 짐승의 능력은 ‘배치’에서 빛을 발한다. 새로운 물건을 스리슬쩍,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마냥 자연스럽게 들여놓는 재주가 엄청나다. 이 두 마리의 짐승은 각자 따로의 보금자리만 해도 미어터지게 꾸릴 수 있지만은 굳이 같이 살아버린 바람에 의미와 볼거리로 빽빽한 정글을 만들어냈다. 그래도 그들이 같이 살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같은 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을 ‘맥시멀리스트’라 부른다.


초여름 아침 거실 전경, 천장 빼고 빈 곳이 없다
물건을 배치하기 전의 거실 전경, 텅 빈 모습이 이젠 어색하다

그렇다. 그 맥시멀리스트가 바로 나와 설쌤이다. 사귀기 전부터 서로가 맥시멀리스트라는 걸 알고있었고 어쩌면 그런 특징이 매력으로 다가와 서로에게 끌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용도와 상관없이 사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눈은 특별하다. 그리고 마음을 쏟은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습성에는 다정함이 묻어있다. 특별한 눈과 다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 나누는 사랑은 또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겠는가. 너무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반달집이라는 터를 찾아 그 소중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물건 더미의 방을 만들자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방 꾸미기 계획서를 설쌤에게 들이밀었을 때, “히에에엑”하며 놀라던 설쌤의 반응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집을 꾸미는 일은 재밌는 놀이가 되어야하는데 이렇게 숙제처럼 하고 싶지 않아.”라는 설쌤의 말이 나를 열어놓았다. 계획은 접어두고 재밌게 집을 꾸미기로 마음먹었다. 마음 이끄는 대로 벽지를 채우고 소품을 쌓고 가구를 들이다보니 어느새 우리의 얼굴보다도 더 선명하게 우릴 보여주고 있는 거실의 면면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1. 벽을 도배한 찌라시들

우리집 시그니처 찌라시는 157만원 치 이케아 영수증이다(좌)

액자와 그림만 벽에 붙이란 법은 없다. 스티커, 사진, 엽서, 마른 꽃, 전시티켓, 책 표지, 영수증까지 벽에 붙을 정도로 가볍기만 하다면 벽에 붙어있을 자격은 충분하다. 우린 그렇게 생각한다. 귀엽고 예쁜 것은 드러내놓고 자주 보아야 한다고. 서랍이나 파일 속에 고이 모셔두다 잊혀지기엔 찌라시들이 담고있는 아름다움이 너무 아깝다. 보아야 잊혀지지 않는다. 집에 사는 한 사람은 끊임없이 글을 메모하고, 다른 한 사람은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니 거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공간은 만들면 생긴다. 그것을 옹기종기의 마법이라 부르겠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면 간간이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설쌤의 그림 선물은 어딘가 전시해두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설쌤의 손에서 검정 라인으로 다시 태어난 내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빛을 발했으면 좋겠다.




#2. 230만원 짜리 한스 웨그너 책상

어쩌면 반달집에서 가장 사랑하는 공간, 내 책상

같이 살게 되면서 설쌤의 허락이 필요했던 유일한 가구가 바로 이 책상이었다. 작업실이 있는 설쌤과는 다르게 나는 집이 곧 작업 공간이었으므로 거실 한 켠을 내 책상 자리로 쓰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소중한 공간인 만큼 정말 마음에 드는 책상을 들이고 싶었다. 그러다 한스 웨그너라는 디자이너가 만든 빈티지 책상이 내 눈에 들어오고 만 것이다. 층층이 쌓인 책장과 용도별로 아롱다롱 모양 다른 수납함이 빈틈없이 들어찬 이 나무 책상을 보자마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230만원이라는 가격을 듣고 빼앗겼던 마음이 도로 제자리로 돌아오나싶더니, 이내 나는 “6개월 할부요” 라는 멘트와 함께 카드를 내밀고 있었다. 이 책상의 값어치보다 더 가치있는 일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그렇다면 책상과 나의 가치의 수지타산이 알맞게 떨어지는 때는 대체 언제일 것인가? 아마 그런 때라는 건 없을 것이란 걸 알았기에, 그냥 ‘지금’ 저질러버리기로 마음먹었던 거다. 반달집에 놀러와 책상 가격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 (백) ..삼십만원 정도 해.”라며 말을 흐리곤 하지만. 적어도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내 마음에 부채감은 없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원목 책상에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릴 수 있어서 행복할 따름이지. 수납공간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저도 모자라 책상 여기저기 덕지덕지 메모를 붙여놓은 모양새가 딱 내 책상같다. 참고로, 이 책상을 사는 데 있어 마음 기댈 곳이 되어준 광고 카피 하나가 있어서 기록해둔다.

매일 쓰는 것들은 제일 좋은 걸로
좋은 건 나중에 사겠다는 생각 버리기
-일룸-




#3. 술장이 되어버린 자개장

우린 술을 좋아한다. 곤란하게도 반달집에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술을 더 좋아하게 됐다. 우연히 접한 위스키 소개 영상에 둘이 동시에 푹 빠진 탓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곤란한 일이었다. 위스키의 비싼 가격도 가격이지만, 무엇보다 부엌 한 켠에, 테이블 귀퉁이에, 복도 바닥에 쌓여가는 위스키 병들이 처치곤란이다. 도대체 위스키 병들은 왜 그렇게 쓸데없이 곱디 고운 것인지. 아니지, 고운 것이 쓸모없는 일이 되어서는 안되지. 우린 한 마음 한 뜻으로 위스키 병들을 전시하기로 했다. 마침 버릴까 말까 고민하던 할머니의 자개장을 주워와 엄중한 역할을 부여했다. 우리집 분위기를 선도하는 반장, ‘술장’이라는 역할을. 술장 위에 늘어선 위스키들은 바라만 봐도 흡족하다. 물론 맛까지 보면 황홀경이 따로 없지만! 그렇게 거실 벽면 한 쪽에 신선 노름할 수 있는 플레이그라운드가 탄생했다. 남산타워가 유난히 이쁘게 반짝이는 밤이면 설쌤과 나의 눈은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향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주다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복이다, 복!




#4. 반달집의 아이콘 반달 테이블

반달 테이블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다보면 심심할 새가 없다
아침 볕을 벗 삼아 그림도 그리고, 반짝이는 야경을 뒤로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곳

앞서 살짝 이야기했지만 나는 의미충이다. 집의 애칭인 ‘반달집’의 의미를 살려 거실 창가에 놓을 테이블 만큼은 꼭 반달 모양으로 통일감을 살리고 싶었다. 반달 테이블에 앉아 창 밖으로 보이는 반달을 감상해보고 싶다는 좀더 디테일한 희망사항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연유로 테이블 만큼은 충동이 아닌 내 머릿속에 그려진 계획 그대로를 끌어내 현실에서 구현하고 싶었다. 반달 모양의 테이블을 얼마나 찾고, 찾고, 또 찾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래도 실용성이 떨어지는 모양이라 그런 걸까, 시중에는 그런 모양의 테이블이 없었다. 이삿날은 임박해오는데 테이블을 고르지 못하고 - 정확하게는 반달 디자인을 포기하지 못하고 - 전전긍긍 하며 다른 가구라도 얼른 고르자는 심정으로 이케아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지도 못한 ‘사무 가구’ 카테고리에서 반달 테이블을 만났다. 3미터에 육박하는 대형 모듈형 회의실 테이블의 가장자리 한 조각이 꼭 마치 하얀 보름달을 반으로 뚝 갈라 떼다 놓은 것 같은 반달 모양이었던 것이다. 어쩜 높이도 너비도 내가 찾던 딱 그 사이즈였을까. 반달 테이블을 발견하기까지 과정을 ‘운명적 만남’이 아니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5. 이름하여 음악 선반

맥시멀리스트란 결국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 아닐까? 물건의 용도를 넘어 그 뒤로 펼쳐지는 에피소드와 물건이 자아내는 분위기를 상상하다보면 도무지 버릴 수 없는 물건과 사지 않을 수 없는 물건들이 차고 넘쳐 나게 되는 법이니까. 제주도까지 가서 음악선반을 구해다 온 경위도 그런 논리에 위배되지 않는다. 여행 중 우연히 들른 빈티지 가게에서 설쌤이 요상하게 생긴 나무 판자를 위로 아래로 몇번을 뒤집어보며 의아해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까지 거들어 헷갈려 하고 있자, 가게 주인이 다가와 판자의 올바른 모양새와 용도를 알려주었다. 나무 판자 아래에 달린 철제 받침이 살짝 사선으로 올라간 빈티지 벽걸이 선반이었다. 설쌤과 나는 선반을 함께 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술상 위에 이걸 거는 거야, 거기에 스피커랑 음악 추천 서적들을 얹는거지, 모닝 커피를 마실 때 여기서 노래가 흘러나온다고 상상해봐, 아니지 밤에 술 마시다가 여기서 음악을 선별해서 bgm을 트는 거지. 우린 그대로 눈이 맞아버렸고 제주도에서부터 4키로는 족히 넘는 선반을 이고지고 상경했다. 훗날 가게 주인 분이 우리에게 보낸 메시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집과 잘 어울려요. 눈이 보배이십니다.”




#6. 살아있는 생명까지

우린 맥시멀리스트라는 같은 종이지만, 사실 한 가지 영역에서만큼은 발을 빼고싶다. 그건 바로 살아있는 식물들이다. 거실 벽면 곳곳에 파릇파릇한 초록이 빠지지 않지만 죄다 설쌤이 기르고 관리하는 것들이다. 나의 지분은 0이다. 집에서 화초를 기르는 게 로망이라던 설쌤이 하나 둘, 식물을 집에 들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저 많은 걸 다 살릴 수 있겠어?’하고 의심했는데, 설쌤은 바쁜 날에도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용케 식물들을 잘 관리해냈다. 안 그래도 나무 프레임으로 중후한 느낌의 집인데 새파란 초록까지 더해지면 너무 올드한 느낌이 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나의 걱정과 별개로 우리집 거실은 하루가 다르게 울창해져만 간다. 괜히 정글이 아니다. 설쌤 나름의 애지중지하는 초록이가 있고 아픈 손가락인 초록이가 있는 것 같은데, 내 눈엔 그냥 다 똑같은 ‘초록것들’이다. 미안하다, 하지만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런데 벌레 생기기만 해봐, 너희 다 OUT이야.



#7. 위시리스트

거실은 아니지만 우리집 복도 끝 천장에 그림 하나가 걸려있다. 설쌤이 그린 한 디자이너의 의자 그림이다. 복도를 지나며 그림을 볼 때마다 ‘갖고싶습니다. 언제쯤 갖게 될까요?’하고 소원을 빈다. 우린 그 자리를 위시리스트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렇게 물건이 많은데도 우린 또 새로운 물건을 갖기를 늘 소망한다. 언젠가 그림 속 의자를 갖게 되면 또 다른 그림이 저 자리를 차지하겠지. 하, 그 그림은 또 무엇으로 채워넣을까? 이런 류의 상상은 해도 해도 늘 즐겁다. 맥시멀리스트로 살고 있어서,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


얼마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회에 가서 아주 마음에 드는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어냅니다. 물건을 모은다는 것은,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모으는 것입니다.’ 어떻게 내 마음을 쏙 빼다가 잘 해석해놓았나 싶은 문구였다. 그래, 물건이 어떻게 물건이기만 하겠어. 이렇게 긴 글을 쓰고도 다 못 담을 이야기가 거실 벽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수납함 안에 꽉꽉 채워져 있고, 창 턱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 매력있는 이야기들을 이렇게라도 털어놓을 수 있어 마음이 후련하다. 우리집 거실을 보고 지저분하니 좀 치우라고 타박을 주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왠지 우리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는다. 이 거실의 주인은 우리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을 발견할 줄 아는 눈으로 서로를 보는 우리니까. 어쩌면 아롱다롱 전시된 저 귀여운 것들처럼 나의 내면 또한 상대방에 의해 매일매일 끌어올려지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설렘이 있으니까. 우린 다행히 잘 만난 맥시멀리스트 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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