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도식 아파트가 좋다

좋은 추억이 남아서 감사한 곳

by 이명선

운동하러 가는 길이었다.

늘 지나는 길가의 아파트 창가에서 자 아기를 안은 두 엄마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들이 있는 곳은 아파트 복도였다. 굳게 닫힌 문들만 쌀쌀맞게 늘어서 있던 그곳이 오늘은 완전히 다른 표정이었다.

낮시간이었는데도 열린 두 집의 현관 안쪽에서 밝은 빛이 퍼지 있었다.


아기를 안고 는 해말간 엄마들은 주변에 있는 어떤 꽃나무보다 예뻤다.



내 26년 간의 아파트 생활 중 19년이 복도식 아파트였다. 나의 두 딸은 계단식 아파트에서 태어나 복도식 아파트에서 성장했다.


결혼하고 잠시 지방 도시에서 살다가 내가 나고 자란 도시로 돌아오면서 우리 가족은 복도식 아파트에 처음 살게 되었다.

큰애 초등학교 입학 전 2년 동안 살던 20평 아파트의 1층에서가 가장 재미있었다.

엄마도 자녀들도 비슷한 또래였던 네 집이 평일엔 거의 매일 함께 지냈는데 아침에 현관문을 활짝 열어 두는 것이 '이제 우리 집에 와도 좋아'하는 싸인이었다.

우리 애들이 다른 집에 가 노는 것은 물론이고 주방에서 뭘 하다 돌아보면 옆집 애가 우리 애들 장난감으로 소꿉놀이를 하고 있기도 했다.


점심시간에는 한 집에서 밥을 해서 니네 아들 우리 딸 구분 없이 함께 먹었다. 애들이 한창 좋아하던 책 시리즈를 몽땅 전집으로 구비해 둔 언니네는 사설 도서관이었다. 우리는 다른 집 애들을 봐주거나 함께 장을 봐서 나누거나 하면서 참 잘 지냈다.


그 아파트 1층은 각 집의 발코니에서 밖으로 출입하는 여닫이문이 있었는데 우리 집 발코니 바로 바깥에는 차장 대신 넓은 화단이 펼쳐져 있었다

딸들이 화단에 돗자리를 깔고 놀면 동네 애들이 하나둘 늘어나 같이 놀았다.

열린 문 앞에서 낯선 애들이 '아줌마, 물 주세요!' 하고 소리쳤다.


싸이월드에서 찾은, 발코니 앞 화단 사진




큰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우리는 길 건너 아파트의 13층으로 사했다. 교를 건너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고 등하교 모습을 집에서 바로 내려다보려고 긴 것이다.

거기는 한 층에 다섯 집이 있는 복도식이었고 우리는 1호였다.

역시나 모두 좋은 분들이었지만 우리 집만큼 어린애들도 없었고 애들 역시 초등학생이 되니 그전처럼 이웃들 너나없이 살지는 못 했다.

나는 거기서도 이웃과 잘 어울렸다.

아침 일찍 집안일을 다 마친 부지런쟁이 4호언니는 매일 아침 우리 집으로 전화를 했다. 언니가 명랑하게 '커피 마시자!' 하면 나는 느릿느릿 복도를 걸어가서 언니가 타 주는 모닝커피를 마셨다.

날이 좋을 때는 둘이서 커피잔을 들고 복도 벽에 기대서 동네의 아침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똑같은 구조와 평수인데 우리 집보다 커 보이는 4호 언니네 집에서 동기부여를 받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오면 정신이 차려져서 열심히 살림을 할 수 있었다.

우리 집 반대의 끝집 5호에는 노부부가 사셨는데 할아버지가 말씀은 잘 없으셨지만 아침에 복도에 나와 계시다가 등교하는 애들을 배웅하시곤 했다.

아이들은 이웃에게 인사하는 법, 공동 공간에서는 뛰거나 공놀이하지 않는 예의 등을 배웠다.

두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이사 가기가 쉽지 않다.

어느덧 우리 딸들은 그 복도 집에서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이 되었다.



4호언니와 오랜만에 만났는데 5호할아버지가 작년 여름에 결국 돌아가셨다고 한다. 병이 있는 고령에 코로나에 감염되어 생긴 비극이었고 아무도 가 볼 수 없는 시기였다고 했다.

5호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자주 놀러 오던 그 집 외동딸과 손녀 아기까지 떠올라 몹시 쓸쓸했다.


나는 신혼 때의 첫 아파트에 이어 두 번째 계단식 아파트살이 중이다.

우리 층의 계단으로 통하는 방화문은 늘 닫혀 있고 앞집과 내가 각자 현관문을 닫고 중문까지 닫고 들어앉아 있으면 완벽한 차단의 세상이 된다.

현관문 외시경에 눈을 대고 보면 낮에도 깜깜하다


복도식 아파트는 각 집의 현관이 노출돼 있고 복도와 승강기를 공유하는 이웃들과 자주 접하게 된다.

집 밖은 곧바로 이웃들과의 공용 공간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이웃으로 함께 사는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장단점이 다 있겠지만 사회생활을 배우는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과 이웃의 배려가 필요한 노인 세대는 폐쇄적인 계단식보다 개방감이 있고 변과 소통하기 쉬운 복도식 아파트가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긴 금의 아파트 문화는 꼭 그렇지도 않겠다.

요즘은 아파트든 빌라든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몇 년 동안 살다 이사하는 일이 흔하니까.


그냥 좋은 이웃들이 함께였던 복도라는 공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딸들은 어렸고 나는 젊었고 심지어 우리 개도 청춘이었던 시절말이다.

젊은 시절의 우리 개가 볕을 쬐며 복도를 내다보는 사진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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