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학부모 모임 후에

고딩들이 어느새 사회 초년생이 되고

by 이명선

어제오늘 오랜만에 큰애의 고등 동창 엄마들을 만났다.

17학번인 아이들은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남자애들도 사회초년생이 되었고 의대에 간 애들도 6년 과정을 통과하고 막 수련의가 되었다.

친했던 엄마들끼리는 애들 고등 졸업 이후에도 가끔 만났었는데 다른 지역으로 이사도 하고 코로나 기간이 겹쳐 한 3년 여 만에 본 것 같다.

우리는 마치 지난주에 보고 다시 본 것처럼 어색함이 없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애들이나 엄마들이니 오로지 대학입시가 전부인 것처럼 살았다.

그나마 나는 몇 살 많은 언니들과의 모임도 따로 있어서 '지금은 대학이 제일 중요한 것 같지?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얼마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선배들이 들려 준 인생의 중요도 순은, 대학<<취업<<<연애<<<<결혼이었다.

다들 50이 넘은 우리는 누가 어디에 취업했는지, 나는 요즘 어떤 약을 먹는지, 애들의 연애 기상 상황은 어떠한지, 남편들의 은퇴 계획이 어떠한지, 어느 집 부모님이 요양원에 계신지 등등의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확실히 아이들 고등학생 때보다는 얘깃거리의 장르가 풍성했다.

그러다가 어느 집 남편의 전립선 장애로 인한 웃을 수 없는 일화와 우리들 자신의 피할 수 없는 갱년기 증상에 대한 이야기가 좀 서글퍼서 그런 건 고만 말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는 받아쓰기 몇 점, 월말고사 몇 점을 맞았는지가 중차대한 일이었다.

중학교 때는 누가 특목고 준비를 하는지, 일반고 진학을 하면 어느 학교로 배정이 되는지가 중요했다.

고등학교에서는 당연히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갈 것인지가 전부였다.

한 동네 아이들이 각자의 길로 흩어진 대학교 이후 지금은 과연 선배들 말대로 어느 대학을 다녔는지는 다 잊어버리고 어디에 취업했는지가 엄마들의 인구에 회자되었다.

애들이 이제 스물네다섯 살이니 결혼은 아직 안중에 없고, 목하 열애 중인지 아닌지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아들이 연애 중이어서 이제 고민이 없다는 엄마는 무척 뿌듯하게 '우리 아들도 여친 있어요'라 말했다.

그 말에 다른 엄마가, 자기는 며느리 줄 아파트도 사놓았고 인사하러 오면 디올레이디를 선물할 거라고 말해 다들 엄지척을 했는데 막상 그 집 아들이 25년 모쏠이라 해서 반전이었다.


나는 우리 딸은 남친이 없다고 대답하고 그렇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연애든 결혼이든 본인이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는 거 아니냐 했더니 능력 있는 딸 가진 엄마는 다르다며 듣기 좋은 소리들을 했다.

그 힘들다는 취업을 하고 더 힘들다는 연애를 하는 아이들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회 초년생인 아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바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막 수련의가 되거나 간호사가 된 아이들의 경우는 예상대로 즐거움보다는 힘듦이 더 큰 것 같았다.

애들에게,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있냐, 남의 돈 벌기가 쉽냐, 라떼는 이랬다 하는 말은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저 우리 아이들이 고생은 조금 덜 하고 좀더 행복한 어른(이란 게 뭔지 나도 모르지만)이 되도록 열심히 응원하자는 데 공감했다.

우리는, '취업을 잘하는 애들은 학교 때부터 엄마 말을 잘 듣는 애들이었다'고 서로의 자녀를 칭찬하며 회합을 마무리했다.


학부모 모임에서 슬픈 일이나 걱정거리를 말할 사람은 없다. 그 자리에서 그런 걸 듣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슬픔을 나눌 친구도 필요하지만, 인생 난치병인 고민거리를 쏙 빼고 자랑거리를 실컷 늘어놓을 상대도 필요하다.

학부모 모임은 오프라인에서의 카톡 프로필 사진과 다를 바 없다. 여기에 우리 애의 좋은 얘기를 슬쩍 내려놓으면 거기 부재중이었던 다른 엄마들에게도 슬그머니 퍼진다.

오늘 나도 다른 아이의 대견한 취업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진심으로 축하했다.


어제오늘의 모임을 복기하면서 우리가 남의 집의 안 좋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젊었을 때는 엄마들끼리 모여 폭포처럼 쏟아내는 수다의 위력에 무심할 때가 있었다. 글쎄 이렇대, 저렇대 하는 말들을 조심 없이 공유하기도 했다.

그동안 몇 년 험한 세상을 더 살아내서일까? 슬프고 기쁘고를 교차하고 오면서 새옹지마의 진리를 터득해서 일까? 아니면 우리들 자신 역시 무심한 언어의 가시에 찔려서 타인이 쉽게 던지는 말의 날이 두렵다는 것을 알아서일까?


어쨌든, 글쎄 그렇대, 저렇대라는 남들의 이야기가 빠진 오랜만의 수다는 참 좋았다.

그리고 이건 사실이다. 대체로 엄마 말을 잘 듣던 애들이 반듯하게 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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