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유심히 쳐다보던 여섯 살 연하 후배가 말했다. 후배의 이마는 종지를 엎은 듯 톡 튀어나오고 반질반질했는데 단지 여섯 살이라는 나이 갭 때문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맞는 보톡스 덕이라 했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마를 의미 있게 본 후부터는 여자들을 볼 때 시술받은 이마를 구별해 낼 수 있게 됐다.
나는 피부과에 가 본 적이 없다.
건성 피부라 신경 쓰이는 여드름도 없고 원래 뭐가 잘 안 난다. 아무 비누나 화장품 샘플을 얻어 써도 괜찮다. 진료와 처방을 요하는 문제가 없으니 병원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나에겐 젊고 깨끗한 피부를 위한 야심도 없나 보다. 거울을 보며, 이 놈의 눈밑지방, 이 놈의 팔자주름 이렇게 한탄하고 피부미용 관련 유튜브 채널도 보지만 그걸로 그만이다.
가끔 마스크팩 하고 잠 잘 자고 물 마시는 정도의 노력이면 됐다, 나이 들어서 생기는 주름을 어쩌라고 싶었던 것이다.
요즘은 회원권을 끊고 피부과 케어를 받거나 트렌디한 시술을 받는 친구들이 제법 많다. 그녀들이 전문 용어들로 최신 정보를 나누는 대화에는 낄 수가 없다.
내 또래면서 10년은 젊어 보이는 여자 연예인을 보면 감동하다가도 어딘가 참 어색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노화가 온 얼굴이 좋다고 생각한다. 시술을 많이 하면 그 또래에선 분명 젊어 보이지만 두어 살이라도 어린 사람과 같이 있으면 역시 세월은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에 나온 60대 배우 원미경의 주름 지고 부드러운 모습이 참 좋았다. 그래서 인터뷰 기사까지 찾아봤다. 그녀는 '노화에 순응하는 자연스러운 얼굴이 배우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찍이 내게 나이 듦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 영화 <시>의 고 윤정희 배우, 자연치유와 요가에 집중한다는 문숙 배우만큼이나 늙어가는 얼굴이 보기 좋구나 하며 나의 가치관을 지키고 잘 살고 있는데, 자기 나이에 비해 피부도 언행도 깨발랄한 후배의 직언을 기어이 듣고야 말았다.
-정신 차려, 지금 해야 보톡스로 카바되지. 나중에는 시술도 안 먹혀.
나는 표정이 많다. 그래서 별 것 아닌 이야기를 해도 실감이 나고 재미있다고들 한다. 어릴 때는 박진감 넘치게 찡그리는 표정과 다양한 표정 덕에 귀엽고 활기차다는 말도 들었다.
고3 때 담임이 나에게 연극영화과를 가지 않겠냐 했는데 '어머, 나의 숨은 미모가 보이나?' 하며 기분이 좋으려던 찰나, 경상도 사투리의 담임은 '니는 개그맨 하면 딱 좋을 기다'라 말했다.
어릴 때부터 과감하게 얼굴 근육을 키운 탓인가, 이마와 미간에 표정 주름이 파였다. 후배가 딱 짚어 지적한 이마에는 가로 주름이 몇 개 나 있는데 손으로 만져보아도 줄무늬가 느껴진다.
바퀴벌레는 한 마리가 보이면 수 백 마리가 사는 집이 숨어 있다고 하던가. 눈에 보이는 어미 주름은 그 아래 아직은 안 보이지만 곧 활개 칠 수많은 새끼 주름들을 끼고 있을 터였다.
바퀴벌레도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세스코를 부르는 판국에 내 소중한 얼굴도 한번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을 해 봐야겠다.
그러나 생각에 그칠 뿐 실천은 하기 어려웠다. 한 손으로 미간 주름을 펴면서 유튜브를 검색했다.
-강력 추천드리는 가성비 시술이예요. 한번 받으시면 얼굴이 확 달라집니다. 다들 한마디씩 거들 거여요. 그런데 단점은 효과가 서너 달 정도밖에 안 가요.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받으셔야 해요.
-아, 중요한 자리에 탁 임팩트 있게 하면 좋겠네요!
받으면 호구되는 시술을 공개하고 양심적으로 정보를 제공한다는 피부과 의사와 피디와의 대담이었다. 시술을 하고 나가야 하는 중요한 자리는 뭘까? 유퀴즈 출연 같은 거?
내가 피부과에 가지 못 하는 이유는 점집에 가지 못 하는 이유와 똑같다. '나쁜 말을 들을까 봐 겁이 나는 것'이다. 아는 게 병이라고, 모르고 있으면 미리 걱정할 일이 없는데 그곳을 찾아가 굳이 물어보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선생님, 저 이마에 보톡스만 좀 맞으면 되겠죠?
-흐음, 그 정도로는 간에 기별이나 갈까요. 어차피 마음먹으셨을 때 적재적소에 필요한 시술을 싹 하시는 게 도리어 이익입니다. 자, 이쪽에 필러, 저쪽엔 레이저....쓱쓰슥
다행히 모든 게 희미해 보이는 노안 덕에 가만 있으면 내 얼굴의 주름이 선명히 보이진 않는다.
어릴 때 구독하던 월간지 <소년중앙> 특집 기고에 미래 의학 기술에 대한 예견 기사가 있었다. 미래에는 한 방울만 넣으면 며칠씩 근시가 교정돼 시력이 좋아지는 안약이 나올 거라 했다. 계산해 보니 내가 마흔 살 정도 되는 미래에 일어날 일이었다. 그러나 쉰이 더 넘은 지금껏 일어나지 않았다.
세계의 과학자들에게 근시뿐 아니라 노안도 교정하는 안약의 개발과 상용화를 촉구한다.
그리고 한번 얼굴에 펴 바르면 두어 달쯤 주름을 싹 펴 주는 다리미 크림도 아울러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