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을 얻다

모두에게 나눠주고 싶을 만큼 많이

by 이명선

나는 우리 애들이 일곱 살이 되어 병설유치원에 입학할 때까지 집에서 데리고 있었다. 딱히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다. 어차피 내가 전업주부였고 두 살 터울 자매는 친구처럼 잘 지내서 취학 전까지 아이들과 항상 함께 하던 세월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작은아이까지 유치원에 보낸 어느 낮에 혼자 택시를 탄 적이 있다. 기분이 어찌나 이상했는지 지금도 그 택시의 뒷자리가 기억난다. 마치 굉장히 중요한 뭔가를 잃어버리고 다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자라면 엄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아이들이 갑자기 크는 게 아니니까 엄마도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훈련을 긴 세월에 걸쳐 받는다. 아이가 오전 수업만 마치고 집에 오다가, 좀 더 크면 급식을 먹고 오후 수업까지 하고 오고, 방과 후에 학원에 갔다 올 만큼 자라고, 마침내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밤늦게 혼자 돌아올 만큼 큰다.

아이가 따로 사는 경우에는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심리적으로도 아이의 부재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다. 그러나 그 면역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고 아이가 자라는 만큼 엄마도 심신이 성장해야만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


지금 아이와 매 순간 함께 있는 게 버거운 엄마라 할지라도 곧 아이와 매일 함께 있지 못해 그리워지는 날이 온다.





지금 우리 가족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남편과 큰딸은 각자의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을 하겠고 작은딸은 나름대로 대학생 고학년의 오후를 잘 보내고 있겠지.

하루를 밖에서 보내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은 남편뿐이다. 딸들은 회사와 학교 근처에서 살다가 일정 없는 주말에 손님처럼 놀러 온다.


따로 사는 아이들이 때때로 그립다.

성인이 된 자녀들이 독립할 생각이 없다며 굳이 집에 붙어있어서 귀찮다면서도 은근히 좋아하는 지인들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건 나의 욕심이라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양육의 목표는 자녀의 완전한 심신의 독립이다.

나는 애들을 잘 키우고 있는 것이다. 딸들은 남부럽지 않은 직장과 학교를 다니며 성실하게 살고 있고 어쩌면 모녀란 가끔 만나기 때문에 더 좋은 사이가 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다 컸으니 엄마아빠만의 오롯한 시간을 보내시라고 해 주는 효녀들인 것이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오늘 스타벅스에서 이상한 사람을 봤다.
테이블에 노트북도, 휴대폰도 없이 단지 혼자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창밖을 보고 있는 남자였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


카페에서는 다들 바쁘게 일을 하거나 폰을 보거나 아니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오히려 눈에 띈다.

혼자 밥을 먹을 때는 먹으면서 볼 영상이라도 틀어야 한다. 혼밥을 할 때 밥만 열심히 먹으면 왠지 비장미가 흐른다고 할까.

시간이나 공간뿐 아니라 마음에도 여백이 남는 것을 견디기 힘든 세상이다. 나 역시 혼자 있을 때조차 밖에 있는 가족들이 궁금하니 말이다.


늦겨울 오후의 주택가는 더욱 고요하다. 나는 출출해져서 쿠키를 꺼내고 커피 원두를 간다. 음악이나 티브이 소리 없이 커피 머신 작동 하는 소음도 듣기 좋다.

두 아이가 동시에 낮잠을 자는 기적에 기뻐하던 내가 지금 누리는 시간도 한시적이다. 여태 쉼 없이 일한 남편이 퇴직을 하면 새로 얻은 남편의 공백을 환영하느라 분주해질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기꺼이, 공백을 공백답게 사용하자.



지난 휴가기간에 머물던 작은 호텔의 더 작은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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