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명선 Oct 27. 2024

행복

타인의 행복을 흉내 내지 마세요

타인의 행복을 흉내 내지 마세요. 

주위 사람들이 마냥 행복해 보인다고 해서 그들을 일일이 의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지금 그들보다 좋지 않은 처지에 처해있다고 해서 그런 상황을 초래한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 곰돌이 푸 원작,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정은희 옮김, RHK, 2018, 137쪽 



 우리는 행복을 학문적 대상으로 연구하고 소비재의 광고 수단으로 이용하는 시대에 산다. 자동차도 냉장고도 성능이나 퍼포먼스보다 사용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보여주며 유혹한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OECD 하위권이라거나 초등학생조차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며 심심하면 '행복' 이슈가 언론의 소재가 된다.   

 "넌 지금 행복하니?"라는 질문은 "앞으로 어떻게 살 거야?" 하는 질문만큼 난감하고 답하기 싫다.

 

 행복은 무엇인가? 이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므로 크게 간단치가 않다.   

 쾌락주의라 알려졌으나 사실은 그 쾌락이 고차원의 행복 개념이었던 에프쿠로스 학파는 '인간은 고통이 없는 한 언제나 행복하다'라고 주장했다. 인간이 살면서 의식주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만큼의 물질적 여유는 꼭 필요하다. 그러나 명품 백이 없어서 불행하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다녀야 할 물건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담을 적당한 가방만 있으면 불행하지 않은 것이 된다. 

 현대 심리학에서 그려낸 행복의 크기 그래프는 우정, 자유, 사색 같은 비물질적인 요소를 얼마나 충족하느냐에 따라 높이가 좌우된다. 비물질적 요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물질적 요소가 차고 넘친다 해도 그 반대 상황보다 그래프의 높이가 낮은 것이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일까? 인생은 행복해야만 가치 있는 것일까? 내가 행복한지 아닌지를 누가 결정할까? 

 페이스북,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이어 스레드까지 SNS 세상은 그야말로 행복 배틀, 행복 쟁탈전이 벌어지는 행복 각축장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는 일가친척이나 지인들 좀 넓게는 지역 사회 사람들 정도가 행복의 비교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얼굴을 모르는 남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행복한 모습에 잠식될 지경이다.  

 명품관의 가방이 그림의 떡이라는 것을 모를 때나 내 인친의 인친이 유럽 여행 중인 사진을 보기 전까지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인스타그램에 불행한 순간은 올리지 않는다. 쇼윈도에 낡고 해진 물건을 전시하지 않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남의 사진과(그것도 최첨단 기술로 보정하고 또 리터치한) 남의 일과에 나를 비교하며 어제까지도 큰 불만이 없던 내 모습이 꼬락서니로 보이는 것이다. 

  

 자기 비하는 전혀 쓸모없고 불필요한 감정의 낭비이자 시간의 낭비다. 당장 내가 행복한 기분을 느끼기 위한 일들을 자꾸 만들어야 한다. 아주 조그만 것이라도 찾아보려고 하면 발견할 수 있다.  

 남의 인스타 피드에서 보여주는 그림 속의 행복이 아니라 내 곁에서 바로 만질 수 있는 행복한 장면들이다. 라면에 달걀을 넣어 꼬들하게 끓이고 예쁜 그릇에 담아서 좋아하는 영상을 보며 먹는 것, 우리 집 근처에 맛집 프랜차이즈가 오픈 준비를 한다는 신나는 사건, 사내에서 관심 있는 사람이 나를 보고 웃은 순간 같은 작고 작은 행복들을 주워내 뭉쳐서 크게 만들면서 사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인 것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 슬프거나 기쁜 소식이 있는데, 행복을 잘 느끼는 유전자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행복을 느끼는 기술도 갖고 태어나는 데 따라 다르다니 실망이다. 그러나 그 사실은 유전자 검사로도 알 수 없으니 멋대로 나에게도 행복 유전자가 있다고 믿자. 

  

 기분이 다운되었어도 바로 돌아오는 회복력을 기르자. 강한 회복력은 신체적인 측면뿐 아니라 심리적인 면에서도 필요하다. 

 성직자가 아닌 이상 남의 행복함에 상처를 입지 않을 길은 없지만 빠르게 회복하고 넌 너니까 그렇게 사는구나, 난 나대로 이렇게 살게, 그런데 나의 행복도 만만찮을 거야,라고 응수하는 대범한 어른이 되자. 

 회복력은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면서 키워지므로 행복에 대한 회복력은 나의 불행에 절망하다가 다시 극복하면서 키워진다. 점차 회복의 시간이 짧아지고 쉽게 상처받지 않는 힘이 생긴다. 

 우선 나 자신을 멋진 사람으로 인식해야 한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타인에게 말없이 전하는 느낌이 다르다. 우리 주변을 돌아봤을 때 자기 자신을 좋아하고 자존감이 높은 친구들은 남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다. 누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지나치면 오만이 될 수 있지만 그 선은 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내 것인 것은 내 몸과 내 생각뿐이다. 완전히 내 것인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다.

      

 근거 없는 자존감이 행복에 도움이 된다 

 자존감은 모든 것이 좋은 상황에서는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지금 내가 부족하고 살짝 불행하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해야 자존감이 발휘된다.    

 현대사의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서머싯 몸은 '영혼을 위해 하루에 두 가지 정도는 하기 싫은 일을 하라'라고 말했다. 하기 싫은 일이 겨우 두 가지만 되는 하루가 있나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나는 저절로 영혼을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득이다.   


 그리고 이다음에, 내년에, 10년 후에 행복하기 위해 오늘을 담보로 참고 살지는 말자. 행복한 순간이 불행한 순간보다 많으면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도 내년도 10년 후에도 행복한 순간이 불행한 순간보다 많은 사람이 될 수 있다.  


  *현직자의 말

 1년 차 - 출근해 보니 팀장님 휴가신데 사수님도 휴가라고 안 나왔다. 이게 행복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