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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월동 준비

다시 겨울

by 이명선

올 겨울은 최강, 혹한 이런 자극적인 단어가 없을 거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크게 춥지 않고 일시적 한파가 있던 지난겨울과 비슷하거나 덜 추울 거라는 예상이다.

많이 춥든 덜 춥든 소한 대한 동장군의 계절 겨울은 그래도 '겨울'인지라 월동 준비를 해야 한다.


발코니의 식물들을 거실로 들였다. 열 손가락 깨물어 똑같이 아프다지만 저장가치와 몸값이 우리 집 화분 군단에서 vip 축에 드는 분들은 따로 모아 식물용 LED 조명기구를 설치해 일조량을 확보했다. 추위만 피하면 잘 자라주는 생명력 강한 애들은 햇빛이 스치는 창가로 옮겨 주었다.

식구별 옷정리와 이불정리도 일이다. 간절기가 짧아진 탓에 반짝 지나가는 가을을 위한 어떤 옷들은 한 번도 못 입어보았다. 벌써 거리에는 두툼한 패딩이 보인다.

직장 근처에서 둘이 사는 딸들은 작은 방 하나를 옷방으로 쓰지만 부피가 큰 겨울옷들과 계절 침구는 우리 집에다 보관한다. 그래서 때마다 교체해 주러 가는데 퇴직 부부는 늘상 뭔가 할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상태라서 그런 업무가 내심 반갑다. 지난 주말에 온열매트와 겨울 이부자리를 갖다 주러 갔을 때 딸과 함께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셔서 재미있었다.


오늘은 우리 집 이불 교체를 했다. 일 년에 몇 번만 와서 자는 아이들 방 침대에도 얇은 패드와 차렵이불을 빼고 극세사 패드를 깔고 솜이불을 올려두었다.

나는 겨울에는 두툼한 솜 속통에 면 커버를 씌운 이불이 좋다. 겨울 솜이불은 커버를 벗겨 빨고, 속통은 건조기에서 이불 털기를 하거나 햇빛이 좋은 날 널어서 관리한다.

요즘에 일반적으로 쓰는 이불솜은 옛날 목화솜처럼 뭉치고 무겁지 않고 (국산 목화솜은 값도 비싸고 관리가 힘들어서 거의 쓰지 않는 추세) 폴리에스테르나 마이크로화이버 같은 소재를 쓴다. 신소재는 보온성과 항균 기능은 높지만 환경 이슈가 따른다.

지난번에 겨울 이불을 치울 때 커버를 벗겨 세탁한 뒤 솜과 커버를 분리해 보관했다. 아이들 방에 둘 이불솜에 커버를 씌우는데 문득 애들 이불 커버가 참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부터 쓰던 분홍 빨강 이불 커버다. 겨울 한철만 쓰는 데다 원단이 좋아서 아직도 쓸 만하다. 다만, 패턴이 초등학교 여자아이용이라는 게 아쉽지만 몇 번 안 덮고 잘 테니 괜찮다.


이불커버와 이불솜에는 보통 서로 묶어 고정하는 끈이 달려 있다. 침구 사이즈가 규격이라 끈이 달린 위치도 비슷하다. 아이들 이불은 슈퍼싱글 사이즈인데 커버와 솜 모두 세 군데(위쪽 면의 양끝과 가운데)에 끈이 달려 있다.

솜의 세로 부분 꼭짓점 하나를 잡아 이불 커버의 꼭짓점 쪽으로 집어넣어 첫 번째 끈을 묶는다. 그리고 솜과 커버의 모서리 부분을 같이 잡고 맞춰가다 가운데에서 한번 더 고정하고 나머지 끝부분도 묶는다.

그렇게 세 군데를 고정한 이불 끝을 잡아 전체를 들어 올리면 커버 안에 솜이 딱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아랫단의 지퍼를 잠그면 이불솜 넣기는 끝난다. 퀸사이즈 이불솜과 커버의 결합에 비하면 슈퍼싱글 이불 작업은 일도 아니다.

이불끈, 그리고 오래 돼서 지워져버린 케어라벨


초등학생 때부터 쓴 겨울 패드를 깔고 솜이불을 올려 두니 갑자기 딸들이 어렸던 때의 방으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졌다.

겨울을 기다리며 다시 펼쳐놓은 패드를 쓸어 본다. 동네 엄마들과 백화점 할인행사를 구경하다가 똑같은 제품을 두 개 샀는데 큰애는 강아지를 좋아해서 강아지 무늬가, 작은애는 공주님 스타일을 좋아해서 발레리나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골랐던 기억이 난다. 20대 중반이 되었어도 취향은 그때와 비슷하다.


여전히 강아지와 드레시 스타일을 좋아하는 두 딸


우리 부부의 겨울 이불은 더 추워지면 꺼내 쓰기 좋게 이불장 맨 위에 두었다.

아이들의 솜이불이 빠진 이불장 안이 훤하다.



남편의 제안으로 올해에는 거실 바깥 발코니창 전체에 외풍 차단을 위해 두꺼운 비닐을 붙였다. 구축 아파트에 오래 살지만 이런 작업은 처음이다. 지금까지의 겨울과 달리 남편이 매일 아침 혼자 거실에 있다 보니 집안공기가 썰렁하다고 느꼈나 보다.

가끔 열어서 환기를 시켜야 하니 양면테이프로 완전히 붙이는 대신 벨크로 테이프로 고정했다. 집의 앞쪽 발코니창 전체에 거대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먼저 보슬이 테이프를 붙이고 그 위에 까슬이 테이프를 붙이고 또 비닐을 붙였는데 둘이서 도와가며 한 번 할 만은 했지만 두 번 하기는 싫었다.


붙이고 자르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힘들어서 나는 몇 번 허리를 부여잡았다. 이런 노고의 결과로 얼마나 보온효과가 있을지는 겨울을 나 봐야 알 것이다.


상품명은 김장비닐이었음



반려견 군밤이 방석 위에도 포근한 담요를 한 겹 깔아 주었다. 이중모인 군밤이는 겨울을 대비한 털 코트를 한창 새로 만들며 제 나름의 월동 준비를 한다.

부숭부숭한 속털이 많이 나서인지 얼굴이 좀 두리뭉실해 보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11월은 본격 겨울 전의 단풍과 늦가을의 정취를 누릴 시기다.

먼 데로 여행은 못 가더라도 아직 만만한 나들이 기회를 주는 11월이 지나기 전에 우리 도시 안에서 '상추객'들이 모인다는 명소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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