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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섭 Nov 09. 2019

근데 넌 나한테 왜 이렇게 막 대해?

최가진-광주중앙고-blog.naver.com/gajin91

2학기에 들어 선우는 다른 반 아이들과 밖에서 놀다가 종이 치고 한참 만에 수업에 들어오곤 했다. 수업 지각이 잦아지자 안건으로 올려 학급회의를 했다. 아이들은 자꾸 수업에 늦게 들어오는 사람이 생기니까 수업의 흐름이 끊기고 선생님들이 잔소리를 하게 되어 분위기도 안 좋아져서 문제가 있다고 했고, 토의 끝에 벌칙을 정했는데 지각한 그 과목 선생님께 반성문을 쓰되 A4 꽉 채워서 쓰기로 했다. 모두가 벌칙에 이의 없다고 해서 시행하기로 했다. 나는 함께 문제점을 공유하고 그 해결책도 함께 의논하는 아이들이 기특했다. 이렇게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니까 스스로 행동을 조절해나가는 계기가 되어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우는 이번에도 규칙을 지키지 못했다. 수업 지각 벌칙을 하러 교무실에 들어온 선우가

“종이요.” “볼펜도 주세요.”

입이 툭 나와서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선우는 큰 덩치 때문에 더 작아 보이는 의자에 걸터 앉아 두툼한 손으로 10초 만에 네 다섯줄 적더니 한손으로 종이를 내 눈앞에 쑥 내밀곤 나가려고 했다.

“학급회의에서 정한대로 종이를 꽉 채워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했다.

“작작 좀 하지~.”

“뭐라고?”

“작작 좀 하라구요.”

“너 나한테 하는 말이야?”

“그럼 누구한테 하는 말이겠어요?”

선우는 내 눈을 보지 않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작작’에 힘을 주어 말했다. 교무실에 있는 내 몸이 땅 속으로 꺼져버렸으면 했다.     

3월 첫 주에 시작해서 1학기 내내 입만 열면 불만이라며 선우 때문에 미치겠다는 반 아이들의 원성, 선우가 뱉은 막말에 상처 입은 선생님들의 하소연, 선우가 자기한테 패드립을 했네, 성드립을 했네 하며 분개해서 교무실로 뛰어오던 아이들, 선우가 버린 껌 종이, 과자껍질들. 이런 것들의 이름을 ‘작작’이라 해야 한다고 나는 속으로만 말했다. 속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았지만 정말 꾹꾹 참았다. 이렇게 참다가 암이라도 걸리면 네가 보상해 줄 거냐? 속이라도 시원하게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었다가 이것밖에 생각이 안 나나? 내가 너무 못나 보여 괴로웠다. 자책하는 게 제일 안 좋다는데...나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구박하는 건 또 나였다. 나는 이러고 있는데 교무실 나가자마자 친구들이랑 히히덕 거리는 선우를 보면 울화가 치밀었다.

선생님들의 민원이 잦아들자 선우는 아이들과 자주 싸웠다. 우리 반 여자애랑 싸워서 중재를 하고 마무리로 사과를 권하면,

“잘못은 인정하지만 저는 쟤한테 미안하지가 않은데 사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저는 사과 안 할래요.”하고 버텨서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엔 다른 반 여자애랑 싸웠다. 싸울 때마다 문제해결 서클을 열었다. 문제해결 서클은 문제의 당사자나 연관자가 만나 서로의 입장을 얘기함으로써 이해하게 하고, 사과할 것과 책임질 것을 정하며, 최종적으로는 대화를 통한 관계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모임인데 한번 하면 최소 1시간은 걸렸다. 선우는 3월에만 6건의 서클을 했다. 취지가 좋은 대화모임이지만 자주 하다 보니 지쳤다. 저도 지겨웠을 것이다.

한동안 선우의 서클이 없다 싶었던 바로 그날 선우의 소위 성드립으로 민철이는 화가 폭발했다. 복도 유리창을 주먹으로 깬 것이다. 손이 다쳤는데 마침 보건샘은 안 계셔서 부랴부랴 병원에 태워다주고 다시 데려왔던 일이 있었다. 병원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민철이를 진정시키며 무슨 얘기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냐고 물었다. 여자 친구 이슬이 앞에서 “너, 콘돔 사가지고 이슬이랑 모텔 들어가더라.” 하며 있지도 않은 말을 하는 게 화가 났다 했다. “야, 야동 좀 그만 봐.” 하는 말로 웃으며 넘어가려는데 여자 친구 있는 데서 점점 얘기가 노골적으로 심해졌고 그만 하라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저질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했다. 이야기가 ‘모텔에 들어간 후 이슬이가 창 쪽에 나타났는데 둘이 누워서 옷을 찢었다’는 데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는 거다. 학교에 돌아가서 선우를 교무실로 불렀다. 이번에는 저도 좀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사과를 했고 민철이가 사과를 받아주어 넘어갔다. 이 일을 계기로 성교육을 좀 해야겠다 싶어서 <사춘기 아들에게>라는 얇은 책을 골라 챕터별로 읽고 소감 말하기를 3번에 걸쳐서 했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느꼈다면 벌칙을 수행하는 태도가 공손해야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선우는 그렇지 않았다. 교무실에 와서는 함께 온 친구랑 장난을 치거나 ‘이거 꼭 해야 하느냐’며 얘기한 걸 원점으로 돌려놓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럴 때마다 얘는 지도를 하면 바뀔 수는 있는 앤가? 괜히 내 에너지만 헛 쓰는 게 아닌가 고민이 됐다.

선우는 늘 아슬아슬하게 등교하여 지각을 종종 했으며 우리반 지각벌칙을 유일하게 하지 않고 그냥 집에 가 버렸다. 다음날 남으라고 하면 또 그냥 갔다. 다음날은 교무실에서 벌칙을 수행하려고 탁자에 앉았다. 벌칙으로 미덕 카드를 뽑아 종이에 옮겨 적으려는데 반 아이들이 들어왔다. 선우가 핸드폰을 제출하지 않은 것을 이르러 온 것이다. 애들 말을 듣다가 선우는 화를 내며 불쑥 일어나 교무실에서 나가버렸다. 청소 당번일 때도 자주 그렇게 가 버렸다. 어느 날은 할 수 없이 남아서 청소를 하면서 “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청소야.”했다. 나는 듣고도 모르는 척 했다.

나의 말이나 의도가 선우한테 무시 받고 짓밟히는 느낌이 드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던 1학기 중반 우리 반 교실에서였다. 청소하는 아이 둘만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나와 선우는 교탁 옆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얘기 중이었다.

“내가 너한테 잘못한 거 있니?”

“아니요.”

“근데 넌 나한테 왜 이렇게 막 대해?”

“......”



나는 내가 이 아이한테 교사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고 한 인간으로 말을 시작했던 것 같다. 어릴 때 친구랑 싸울 때 하던 말을 했던 것이다. 말끝에 힘을 주며 또박또박 말을 뱉어내려고 했지만 목소리는 떨렸다. 나는 그때 차마 선우 눈을 바라보며 얘기하지는 못했다. 그날따라 햇살은 눈이 부시게 교실로 쏟아져 들어와 내 눈은 더욱 흐렸다. 선우는 앞을 보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놀란 눈으로 내 표정을 살피는 듯싶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우리 엄마, 아빠한테, 귀한, 딸,이야.”

“우리 남편한테, 귀한 아내야. 내, 아들, 너랑 동갑인 그 아들한테는, 귀한 엄마,라고. 네가 이렇게! 함부로! 막 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

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애 앞에서 울컥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창피하고 어디로 숨고 싶었다. ‘자존심 상한다’고 내가 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자존심 상했다. 내가 아들 또래의 애한테 무시당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모멸감과 치욕스러움이 몰려 왔다. 그걸 느끼게 된 내 자신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은 척 강한 척 하며 선우가 던지는 말 쓰레기를 받아내기 어려웠다. 그렇다. 확실히 쓰레기 같은 걸로 내가 더럽혀지는 느낌이었다. 교사 대 학생으로 버티지 말고 내가 나를 아껴주고 싶었다. 그래서 맘먹고 했던 말이다. 그냥 욱하고 나도 모르게 한 말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선우는 행동은 그대로였지만 눈빛이 좀 순해졌다. 말해놓고 너무 창피했던 나는 이 변화를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나는 왜 교사를 하고 있지? 내가 애한테 이런 무시나 받으려고 내 돈 들여 휴일에도 더 좋은 수업 방법을 공부하고, 상담을 공부하고 나를 단련하고 그랬던 건가? 기운이 뚝 떨어지고 아무 것도 하기 싫어졌다. 맘 같아서는 한 며칠 어디 조용한 절에라도 들어가 쉬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당장 내일 학교에 가야하고 어제 상한 맘을 추스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시 수업을 해야 한다. 비참하고 서글펐다. 머릿속으로는 ‘학교에는 선우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 예쁜 아이들을 보자. 눈망울 반짝이며 수업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고 토론하면서 나날이 성장해가는 애들이 있잖아.’ 하고 다독여보지만 이미 상할 대로 상한 마음이 쉽게 싱싱해지지는 않았다. 저 아이는 왜 저럴까? 이해해 보려 해도 좁아진 내 마음엔 바늘 하나 꽂을 곳이 없었다. 나에게서 원인을 찾아보려다 나랑 잘 지내는 다른 애들을 방패로 그 생각을 막았다.

대신 책을 읽었다. 잘 가르쳐보겠다는 마음을 잃은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면서도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책. 몇 번을 읽어서 색색으로 줄이 쳐진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집어 들었다.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후루룩 훑어보다가 ‘교사가 가르치려는 마음을 잃는 때’라는 소제목에 눈이 멈췄다.

‘교직은 매일 마음의 상처를 주는 직업이기 때문에 우리는 용기를 잃는다’, ‘그리고 반드시 교실에서 알몸으로 서 있는 기분을 느껴야만 용기를 잃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내가 용기를 잃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교직이란 게 이런 거지 원래. 아주 커다랗고 강렬한 감정을 느껴야 힘이 드는 게 아니고 매일, 매시간 스치듯 지나는 한 마디에도 마음에 스크래치가 그어지는 거잖아. 열심히 준비해 간 수업에서 엎드려 자는 아이를 볼 때, 활동을 제시하면 ‘그거 안 하면 어떻게 돼요?’를 먼저 묻는 질문을 들을 때 내 심장이 스윽 베어진다. 큰 타격은 없지만 조금씩 가슴이 졸아드는 느낌이지.

‘다른 직업들과는 달리, 교직은 개인 생활과 공적 생활이 교차하는 지역에서 이루어지는데 그러므로 교사들은 늘 마음의 상처를 받는 자리에 있고, 그걸 줄이기 위한 자기 보호 행동이 자아를 소외시켜 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

‘자기 보호 행동이 자아를 소외시켜 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는 구절을 여러 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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